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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자극

by 은한

예상외로 8월 庚申月은 별 문제 없이 지나갔는데, 9월 辛酉月이 말썽이다. 현재 대운이 壬子 대운이므로 申 편관은 삼합 인성국으로 별 곤란없이 넘기는데,

酉 정관은 子酉 귀문관살과 원국의 寅酉 원진살로 정신적 갈등이 따르는 모양이다. 십성 그 자체보다 해당 인자의 운동성과 그로인한 원국,대운과의 형충회합적 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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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그러니까 신년 운세를 본다고 프립 손님이 왕창 몰렸을 적에 하루에 쉬는 시간도 없이 9시간씩 상담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야말로 내 스스로도 정신노동에 완전히 지쳐버렸고, 뒤로 갈수록 상담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고 만족도 또한 떨어진다는 걸 느낀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판적인 후기가 많이 달렸었다. 완전한 일대 일 대면의 서비스에서 달린 쓰라린 후기는 생에서 거의 처음 느끼는 맨살의 고통이었다. 멘탈이 많이 흔들렸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으며, 현실적으로도 후기의 대가로 손님줄이 끊길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여 1시간 상담/1시간 휴식 으로 웬만하면 연속해서 2시간 이상 상담하지 않도록 조정했다. 시스템을 수정하기 전에 차있던 예약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예약 변경을 요청했고, 변경을 원치않을 경우 수수료를 감안하고라도 전액 환불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의 여유를 되찾고 공부와 상담 준비 시간도 어느정도 확보하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뿌듯한 상담을 대체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뾰루퉁한 반응으로 별 감흥없이 돌아간 분들도 종종 계셨으나 그저 어쩔 수 없는 비율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역술의 대가라도 단 한 명의 내담자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 있으랴? 오히려 그게 자연의 법칙을 어긋나는 것 아닌가. 상담하는 사람도 엄연히 사주를 가지고 있으며 상담 궁합이 도저히 맞춰질래야 맞춰질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상담 궁합과 별개로 어떤 일진의 어떤 시간대에는 좀처럼 답을 얻어가기 힘든, 미완성될 수밖에 없는, 얘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인연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생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고 대수롭게 넘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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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辛酉月에는 그렇게 넘어가기 어려웠다. 이게 단순히 궁합이나 일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담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 명리 실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상담을 해도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걸 보고 의문이 생겼고, 이것은 결국에 내가 절실하게 해결해야하는 과제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상담을 하면서도 이게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삐걱거리면서 길을 잃었는지 실시간으로 감이 온다. 최근의 삐걱거림에 충격이 컸던 이유는 그런 일이 이틀 연속해서 벌어졌고, 그 직설적인 사람들의 대놓고 불만족하는 상담 태도와 비난에 가까운 날카로운 후기에 혀를 내둘렀기 때문이다. 두어 달에 한 번 있을 법한 사람을 이틀 연속으로 만나고, 그 직접적인 피드백에 이틀 연속 노출되니 되돌아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직 인격 수련이 덜 되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나도 불쾌했다. 나는 사주를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전체적으로 풀이하고, 보다 올바른 전달을 위해 음양을 뒤집어가며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퍼즐을 꿰어맞추는 식으로 진행하고, 그러하다고 소개글에도 적어놓았다. 그런데 대충 후기만 읽고 반응이 좋은 것 같아 상담을 신청했다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1좋은 말만 해주세요나 2다른 건 별로 안 궁금하고 이때 결혼할 수 있을까요?와 같은)이 아니어서 불만을 표하는 건 중국집에 와서 치킨이 없냐고 불만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었던 거다.

그렇게 금이 간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해 방어기제를 내세워 합리화를 해보았지만 그때 뿐이었고, 분노와 찝찝함은 앙금처럼 남아있었다. 나에겐 왜 이토록 꼭 한번씩 출렁거리는 슬럼프가 찾아오는 걸까? 이것에 대한 첫번째 답은 서두에 적어두었듯이 현재 흘러온 운이 그런 모양새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귀문관살,원진살의 장난. 두번째 답, 혹은 의문은 이것이 혹시 어떤 하늘의 뜻이 있어서 주어진 사건이 아닐까 생각했다. 첫번째 답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능청스럽게 넘어가기 좋은 생각이다. 두번째 의문은 나를 조금 더 불편하게 만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전환점을, 그게 아니라도 약간의 발전을 마련해줄지 모른다.
이제껏 대체로 원만하게 상담해오고, 명리 공부도 그저 흥미와 재미 위주로 하고 있는, 어쩌면 명리 상담도 유달리 어려운 게 아니라는 쉬엄쉬엄한 인식, 이대로 가다간 다소 자만에 빠질지도 모르는 그 타이밍에 적절한 자극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명리에는 생극제화라는 게 있다. 보통 명리 초보자는 木生火로 뗄감이 불을 키워주니 무조건 좋다, 金剋木으로 도끼가 나무를 잘랐으니 무조건 안 좋다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불을 지피는 뗄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목다화식이라 나무에 뒤덮인 불길이 사그라든다는 의미가 생긴다. 또 적당한 金剋木은 자칫 방만해질 수 있는 나무를 깔끔하게 가지치기 함으로써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나를 뿌듯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는 칭찬과 인정어린 내담자의 태도와 후기만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불편한 자극과 상처를 주는 후기를 배척하기만 하는 것은 나를 식어버리게 하고, 방만하게 만들 여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논어에서 였나, "군자는 칭찬을 경계하고, 비판을 가까이 한다"라는 늬앙스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수직적 구조에서 아랫 사람이 하는 칭찬은 어느정도 경계해야겠지만, 수평적 구조에서의 칭찬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고 중요한 건 비난에 대해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부당하고 맹목적인 비난은 걸러 들어야겠지만, 그런 비난이 나오게 된 원인을 역으로 추적해서 스스로에 대한 비판 의식을 어느정도 견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의 상담업에 흔치 못한 적절한 자극은 발전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이쯤되면 불쾌함과 원망이 아닌 고마움을 품어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본능적,감정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필요악. 이것은 필요악이 아니다. 선악이라는 프레임이야말로 나의 본능과 감정, 방어기제에서 나온 심술궂고 악한 규정이다. 필요자극 정도로 부르면 될 것이다.

<甲寅일주인 나에게 辛酉月에 들어온 金剋木 자극에 대한 반응>

1.잠깐 끊었던 오메가-3와 칼슘마그네슘을 다시 구입했다. 군대에서부터 먹어왔는데 최근에 모두 섭취하고 한동안 먹지 않았던 영양제들. 특히 오메가-3는 뇌에 좋은 영양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섭취하지 않으니 머리 회전이 미약하게나마 떨어지고 상담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지 하는 우려에서다.

2.상담 궁합이 잘 안 맞는 사람의 사주 특징, 현실 특징을 리스트화하기 시작했다.

잘 안 맞는 사람은 첫번째로 스스로의 자아와 진로가 어느정도 확립되었고, 지극히 현실세속적 문제에 대한 가까운 미래의 점點을 봐주길 원하는 사람. 두번째로 나이가 30대 중반 이후로 진로 잠재성이 어느 정도 닫혀버린 상태로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막연한 희망을 바라는 사람.

사주 특징은 첫번째로 수용하는 태도와 능력을 만들어내는 인성印星의 부재나 미약함. 두번째로 사회성을 대하는 첫번째 태도인 월지가 상관이거나 편재일 경우. 상관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특징이 있어 나의 정관=기존의 프로세스대로 하려는 고집과 어긋나게 된다. 편재도 비슷한 맥락에서 지배성과 장악력으로 상황을 주도하려는 특징이 있어 삐걱거림이 생긴다. 세번째로 특히 그 상관과 편재가 나의 월지 酉와 충沖하는 卯일 때 더욱 안 맞는 경우로 보인다.
2-2.상담 예약전, 내 사주 상담에 적합한 사람,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정확하게 명시해 1차적으로 필터링을 해야겠다.
2-3.그럼에도 2와 같은 내담자를 맞게 된다면, 혹은 2와 같은 내담자를 포함해서 상담업을 하려면 그에 따른 무기도 갈고 닦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망치 하나만 가지고 일관된 프로세스대로 쿵쿵 찍기만 한 것인데, 뒷주머니에는 만약에 대비해 예리한 칼도 하나 비치해둬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중국집에서 치킨 찾는 사람 탓할 것이 아니라 수영장인줄 알고 찾아온 사람에게 산 얘기만 하지 않고, 같이 물장구를 쳐주는 것.
3.그러기 위해 다시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해야함을 느꼈다. 요즘은 시간 내어 인문학도 읽고, 명리 공부에 모든 걸 쏟지 않았는데 다시금 몰두해서 버전을 빠르게 업그레이드 시켜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구매 예정이던 박청화 선생님의 [사주풀이 Z엔진]을 예정보다 일찍 구매했다. 마침 이 책 서문에 나온 내용을 읽는데 최근의 고민에 더할나위 없는 도움과 공감을 주는 것이다. 덕분에 나만 겪는 곤란이 아니구나 하는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 책을 완독할 때마다 다른 책들도 밀리지 않고 순차적으로 진도를 뗄 생각이다.
이 책 18쪽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동일한 운명이 오더라도 사람이 감동을 받고 받지 못하고가 그 순간에 서로 몰입된 논리가 쓰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수영장에 와서 산 이야기만 하면 재미있습니까? 없습니까? 재미없잖아요! 그 사람이 공감을 해서 가게 하려면 수영장이면 수영장 논리만 가지고 계속 왔다갔다 해주는 거죠. 그 다음에 적는 것은 엉뚱하게 적는 거예요" 위에 적은 수영장과 산의 비유는 이 책에서 따온 것.

지금 그렇게 여유로울 때가 아니다 하고 경각심을 준 그들에게
감정적으로는 용서를 하고, 이성적으로는 고마움을 갖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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