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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생일자

by 은한

오늘은 나와 똑같은 생일에 태어난 사람을 두번째로 만났다. 첫번째로 만난 분은 남자분이었고 오늘 상담한 분은 여자분이었다. 태어난 시간은 조금 다른데 남자분은 아침 7시 반, 나는 오전 10시 반, 여자 분은 22시쯤이다.


나랑 사주가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신기한 건 오늘 일진이 딱 甲寅日 나와 내담자분 태어난 일주가 그대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신기한 우연의 일치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걸 보면 인연줄이라는 게 정말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중학생쯤 했던 공상 중에 '이 세상이 만약 전부 나로 가득 차있다면 어땠을까?'가 있다. 그때 공상을 진행해본 결과 '진짜 재미 없는 세상이 될 것, 나는 나와 깊이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내가 친해지기 전까지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음陰적인 인간이고, 나의 마음을 열어줄 상대는 나와 달리 양陽적인 인간으로 먼저 다가와주고 관계를 끌어주어야 한다는 자의식이 있었나보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대체로 그러한 성향이었으니깐.


나와 생일이 같은 남자분을 만났을 때, 나의 학창시절 공상의 결론이 역시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이 같은 나로서는 반갑긴 했지만 그뿐이었고, 그 분의 왠지 모를 경계심에 나는 익숙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선뜻 다가서기 쉽지 않겠다는 실감이 들었으니깐. 키도 나랑 비슷한 것 같았고 겉으로 느껴지는 일차원적인 첫인상의 분위기도 어느정도 비슷해보였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많았다. 나는 20대부터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분은 책이랑 거리가 멀고 게임을 즐겨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길거리 장사도 하고, 나름의 길을 개척하려고 애쓰는데 그 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는 걸까? 사주적으로 보자면 시간이 역시 중요한 요소이긴 한 것이다. 나한테는 태어난 시간에 火의 기운이 있어서 기본적인 변화량이 커질 수 있고, 추진력과 에너지가 실천으로 잘 이어질 수 있는 힘이 있다. 반면 그분은 태어난 시간에 중화력에 해당하는 土의 기운이 있고 팔자에 火가 빠져있으니 보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대운이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그래서 나는 현재 겨울 대운인데, 오늘 만나신 분은 여름 대운이었다. 시간에는 水의 기운이 채워져있어 마찬가지로 팔자에 火의 기운이 빠져있다. 처음 상담 시작할 때부터 '저와 생일이 같으시군요'하고 밝히지 않고, 끝까지 상담을 진행하고 나서 말미에 '사주대로 사는 사람이 많나요? 똑같은 사주를 타고나면 정말 비슷하게 살아가나요?'라고 묻기에 바로 눈앞의 예시를 보여드린 것이다. 팔자는 정해져있다 해도 무조건 하나의 길로 쭉 가는 숙명이 아니라 삶의 범위, 分, 선택의 폭이 정해져있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정도라고. 하지만 그 범위를 아예 벗어나기는 어렵고, 만약 벗어나면 더욱 어려운 삶이 될 것이라고.

오늘 상담하신 분은 많은 방황을 겪고 오셨다. 학교 생활, 시험 준비-불합격, 다시 학교 생활, 대학원 준비. 현재 대운이 未 대운, 정확히 결말을 맺기 어려운 아닐 미, 미정될 수밖에 없는 시기라 겪는 시행착오로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未 대운 말미에 있고, 현재 준비하는 쪽도 팔자와 잘 부합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운이 3년간 공부하는 운으로 흐르기에 대학원 생활이 긍정적으로 보였고, 이번에는 잘 결말을 지으리라는 예측을 했다.

사주적으로 보자면 생일은 같지만 성별,태어난 시간,대운이 달라서 많은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陽, 여자는 陰을 타고난다고 보는데 태어난 시간에서도 나는 陽의 시간, 내담자분은 陰의 시간에 태어나서 나는 운에서 조금만 신호를 줘도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고, 내담자분은 좀 더 신중하게 도전을 하더라도 제도권 내에서 하는 모습이었다. 대운은 반대로 여자분은 양陽대운, 나는 음陰대운인데 그만큼 대운보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음양陰陽의 기운이 훨씬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리라.

재미난 건 도전을 한 시기 자체는 같다. 나는 2014년 甲午년에 휴학하고 길거리 장사를 했고, 그 분은 시험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둘 다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사주 외에도 기본적으로 정해진 초기 조건 중에 조상과 부모님의 인연,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환경적 요인, 외형(관상), 성명 이런 것들도 복합적으로 다르게 작용한다. 또 삶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선택, 의지, 노력이 하나 둘씩 쌓이면서 차이와 왜곡이 누적된다. 그 결과 겉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하더라도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작동 원리 자체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상담을 하면서 내 팔자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첫번째 팔자로 항상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학습할 때도 언제나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적용하는 팔자이건만. 그래서 쉽지 않은 삶들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사주상담하는 입장에서 동일 생일자를 만나는 건 평행세계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듯해서 묘하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도 살고 있구나. 스스로를 더 알아가길 기대했지만 외려 더 복잡해진 기분이니 인생이, 사주가 역시 만만하지 않다.

언젠가 내 사주를 남의 사주 보듯 객관적으로 풀이 해서 블로그에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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