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말 1년

by 은한

2015.12.10. 00:37에 쓴 것.


나는 겨울이 좋다. 여름은 날도 끈적거리고 나도 땀이나니 다른 누구 곁에 붙어있기가 싫어지는데, 겨울은 차갑고 건조하니 다른 이의 품이 그리워진다. 당장 안아주고 안길 품이 없어도 그 그리움은 못 가진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닌 가져봤던 것에 대한 향수로 공백을 메운다. 여름의 36.5도씨는 무더운 불쾌지만 겨울의 36.5도씨는 따스한 온기.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 기온을 낮추는 것은 통쾌하지만 서늘하고, 겨울에 보일러를 틀어 바닥을 달구는 것에는 은은한 행복감이 스미며, 거기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대지의 품에 안긴듯한 따뜻한 평화까지 얻을 수 있다. 여름의 찬 물은 여전히 차갑고 두렵지만, 겨울의 따뜻한 물은 얼어붙은 생명까지 녹여줄 것 같다. 여름의 해는 너무 눈부시고 지나치게 길어 많은 것을 무심히 지나치게 만들고, 겨울의 해는 약간 흐릿하고 아쉽게 짧아 거리의 빛은 더욱 화려하며 여러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여름은 어디론가 난폭하게 도망가고 싶고, 겨울은 안온한 집을 향해 쏙 들어가고 싶다. 겨울의 귤은 유독 달고, 겨울의 잠 또한 유독 달며, 겨울의 품 역시 유독 달다. 겨울의 어둠, 건조, 추위는 역설적으로 빛, 달콤함, 따뜻함을 상징한다.


연말의 하루하루는 무겁다. 12월까지 쌓인 삼백일을 넘는 날들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해를 투박하게 밀쳐낸다. 해의 전환. 다가올 해의 기대보다는 지나간 해의 아쉬움이 더 크기에 연말의 하루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무거워지는 건가. 그게 아니면 곧 다가올 특별한 날들, 크리스마스와 신정이라는 멋진 날들이 너무나도 화려하고 웅장하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설렘의 무게가 보태진 건가. 경쾌하고 부드러운 캐롤송이 연말의 무거움을 그나마 상쇄해준다. 캐롤의 음을 타고 이 몸과 함께 경직된 마음과 생각을 유연하게 풀어헤쳐주어야 연말을 가볍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로맨스 영화 한 편도 요즘같은 날에는 훌륭한 친구가 되어준다.


작년의 연말은 시작이었지만, 올해의 연말은 마무리다. "1년" 이 1년은 아주 특별하기에 어디론가 어딘가로 새어나갈 꺼 같아서 굳이 큰 따옴표 안에 가둬놓았다. 1년간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수없이 많이 교차했겠지만 아직은 그것을 숫자로 셈하기 싫고, 언어로 평하기 싫다. 그저 1년이 흐른 내가 1년 전의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조금 더 살아본 내가 지난 날의 나를 보며 마음 다해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으니 그걸로 됐다.


따뜻한 차, 달콤한 귤과 함께 로맨스 영화를 선물해줘야겠다.

물론 바닥은 보일러로 뜨끈하게 달궈놓았고, 나는 푹신한 이불 속에 파묻혀 뷰티 인사이드를 감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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