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의 두 갈래 : 주역과 명리학

4장.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② : 사상(四象)·오행(五行)

by 은한

역학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서 발전했습니다. 음양의 2진법으로 효(爻)를 쌓아가는 ‘주역’과 음양에서 중심을 포함한 오행의 논리로 발달한 ‘명리학’으로 나뉘죠. 주역에서도 3효로 구성된 8괘에 삼재의 형식이 내포되긴 하지만, 명리학에서 중심이 있는 오행(土)이 내용에 직접적으로 포함되는 반면 주역에서는 삼재가 구조적으로 간접 포함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역은 고정된 데이터베이스, 즉 중심이 되는 기준을 필요치 않고 그때그때 질문하고 점쳐서 답을 얻습니다. 질문의 상황에 대한 괘를 뽑아서 우주의 로고스와 흐름을 읽어내고 예측하는 시스템인 거죠. 반면 중심(土)이 직접 포함된 명리학은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특정 날짜의 운세를 읽을 수 있고, 하나의 고정된 데이터베이스(생년월일시)를 기준으로 특정인의 기질과 삶의 방향을 읽어내고 예측하는 시스템입니다.


주역은 따로 주어진 상수 없이 변수만 있고, 반대로 명리학은 시간 자체가 정보를 담기에 변수 없이 상수만 있습니다. 주역과 명리학의 기반이 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에 차이가 있기에 용도가 달라지는 것이죠. 프로그래밍 언어도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 것과 같습니다. 동방 고대문화에서는 신을 이해하고 모방하기 위해 신이 우주를 프로그래밍할 때 사용했을 법한 언어를 ‘괘(卦)’와 ‘간지(干支)’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발견하고 개발한 것입니다. ‘사상(四象)’은 괘, ‘오행(五行)’은 간지의 기초가 되는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방 고대문화는 변화를 긍정했을 뿐 아니라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변화의 이치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서 역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역학이 태동하던 초기에는 성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형이상의 이해도 중요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먹고 살아가는 형이하의 문제가 당장 시급했을 것입니다. 1년의 변화를 예측하는 역학의 지혜는 동방 고대문화의 농사 체계를 발전·안정시키는 데 상당 부분 기여했을 테죠.


형이하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익히게 된 자연의 세세한 변화 이치가 거꾸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사에도 적용됨을 깨달으며 역학의 세속적 이론을 덩달아 발전·확장했을 것입니다. 자연의 결을 파악해낸 법칙을 심화·응용하여 복잡한 인간사도 정교하게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역학은 인간의 본성과 마음의 원리를 이해하는 성리학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학의 진가는 눈앞의 사소한 손익을 따지는 세속의 점술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원리를 파악하여 크게는 온 우주를 펼쳐서 굽어보고, 작게는 지금 여기의 현상계를 우주의 결대로 현명하게 판단하는 철학적 사유에 역학의 본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계의 근본원리에 대한 직관과 이해를 통해 현상계 음양의 보편법칙을 명확하게 통찰한다면 중심을 바로 잡아 현상계의 개별사물을 바람직하게 경영하는 힘도 커질 것입니다.


우주의 시공간 언어인 역학은 시스템의 전체상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아 전체 구조와 흐름 안에서 부분적인 역할·위치를 좁혀들어가는 방식으로 파악하는 게 이치에 적절합니다. 반대로 전체적인 시스템에 소홀한 채 하나하나의 개념에 개별적으로 치우치면 역易에 대한 이해가 자칫 왜곡되어 지도도 볼 줄도 모르고 먼 여행을 헤매면서 곳곳의 함정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기하학 도식은 수리와 긴밀하게 엮인 역학의 전체 시스템을 한눈에 시각화해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에 긴밀히 활용하려 합니다. 플라톤이 세운 학당 ‘아카데미아’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라고 적혀 있을 만큼 서양 철학자들은 기하학을 중시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동양철학에 역학이 있다면 서양철학에 기하학이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죠.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수학과 기하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수학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공통된 언어라고 할 수 있지. (…) 기하학은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철학에 관한 정신을 창조하네. 그리하여 실추된 철학적 기능을 회복하네. (…) 기하학을 배운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사물을 이해하는 데 훨씬 빠르고 예민하지.1)



<참고자료>

1)플라톤 지음·이환 편역 『국가론』돋을새김, 2015 p.207,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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