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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 오행과 후천 오행 ①

4장. 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② : 사상(四象)·오행(五行)

by 은한

동양철학에서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은 하늘이 생기기 이전의 절대계와 하늘이 생긴 이후의 현상계를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나중에 그 개념이 변용되어 현상계 안에서 특정 분기점 이전의 세상(선천)과 이후의 세상(후천)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죠. 일반적으로는 타고난 성질을 선천, 주변 환경을 후천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선천·후천을 절대계와 현상계를 구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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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土가 중심이 되는 왼쪽 그림은 태극에 내재한 <선천 오행의 원형>을 나타낸 것입니다. 토土도 예외 없이 나열·순환하는 오른쪽 그림은 현상계에 펼쳐지는 후천 오행의 작용(상생·상극)을 나타낸 것입니다.1) 선천 오행의 원형(인의예지신·원형리정성)은 앞서 살펴본 사상의 변화원리(희노애락·생장수장)의 근거가 되어줍니다. 후천 오행에서도 토土가 본체가 양을 뜻하는 목화木火와 음을 뜻하는 금수金水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봐야 하긴 하지만2) 내부 중심을 잃어버리고 다른 오행과 동등한 외부 경계에 위치해 그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화 운동하고 조절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황극은 본래 의미대로 통으로 보면 절대계의 초월적인 작용이지만, 온 존재에 스며들어 현상계에서 분열된 개체로 작용하는 순간 절대성과 초월성을 잃어버리고 음양(시공·주객·인과)의 제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제약이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게 가로막는 이유이죠. 황극이 제약된 후천 오행에서는 토土가 온전한 중심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토土는 선천 오행에서 진화의 주체였지만 후천 오행에서는 분화의 참여자로 밀려난(?) 것입니다.


온전한 중심에 있는 선천 오행의 토土(참나)와 달리 중심을 벗어난 후천 오행의 토土(에고)는 나머지 사행과 동등한 비중으로 기를 뺏기기도 하고, 밀리기도 하고, 치이기도 하는 것이죠.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 경영하지 못하고 주변 환경에 끌려다닐 가능성도 생깁니다. 음양의 이원성으로 굴러가는 현상계에서는 누구나 한계 속에서 살아가므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삶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역량껏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능한 것이죠. 중심과의 연결고리를 회복해 양심을 각성해야만 진정한 최선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후천 오행의 토土(개체적 황극인 에고)는 동질의 성질을 가진 선천 오행의 토土(절대계 무극)와 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을 가졌다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정신만 차리면 ‘참나(하늘·태극·양심)’와의 연결고리를 회복하여 중심을 잡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음양에 치우쳐 살아가는 ‘에고’의 중심을 파고들면 음양이 통합된 ‘태극’을 만나게 되어 나와 남의 구별 없이 일체가 하나로 통하게 됩니다.


하나의 태극에서 온 우주가 펼쳐져 나왔기에 만물이 모두 하느님의 신성한 작용입니다. 황극의 하느님은 무한히 다양한 차원에서 우주를 총체적으로 경영하는데, 그중 개별 영혼의 차원(인황의 작용)에서도 현상계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우리는 모두 각자가 자기 삶을 경영하는 하느님의 분신이라는 것이죠. 온 우주의 뿌리가 되는 태극이 만유에 자기조직 능력을 부여해 황극으로 작용합니다.


다만 각자에게 주어진 개체적 황극은 용감하게도 계급장을 떼고 음양 분화의 이원성에 동등한 일원으로 아무런 차별 없이 동참했습니다. 문제는 몰입감이 최고인 ‘인생 게임’은 너무나도 실감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에고와의 동일시에 완전히 빠져들었기에 정작 본인의 진짜 신분인 ‘참나’를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밤 꿈에서 아무리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꿈에서 겪을 당시의 시점에서는 리얼하고 절박한 한 생의 현실로 일단 받아들이고 스며들 듯이, 우리의 삶도 참나가 에고라는 주인공을 입고 등장하는 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꾸고 있는 꿈이 꿈인 줄 알아차리면 ‘자각몽’이 시작되어 꿈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꿈을 꿈인 줄 알아차리는 존재는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Neo와 같이 깨달은 중생, ‘보살(군자)’이 되어 인생의 참된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세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갑니다. 물론 ‘잠에서 꾸는 꿈’보다 시공간과 인과성이 촘촘하게 짜여서 엄격하게 굴러가는 ‘현실이라는 꿈’이 경영하기 훨씬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요.



<참고자료>

1)기존 명리학에서는 선천 오행·후천 오행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지만, 기하학적·역학적 이치에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며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뚜렷하므로 임의로 선천 오행과 후천 오행을 따로 구분하겠습니다.

2)오각형의 기하로 오행을 표현할 때, 오행의 기하학적 특징에 따라 土가 중간의 꼭대기를 차지하도록 약속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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