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여름, 본격적으로 영성 공부를 하기 전에 한창 환상 체험을 할 때가 있었다. 당시 무언가에 고무되어 차크라와 명리학을 결합한 명상법을 고안해냈고, 스스로 실험해보다가 제3의 눈 차크라로 향하는 막혀있던 길이 한 줄기 뚫렸는지, 그 첫 경험의 충격에 요상스러운 빛이 터져나온 것이라 추정한다. 지금까지도 뚜렷이 기억나는 (그래서 살이 조금 덧붙여졌을 지도 모르는) 환상은 대여섯 가지쯤 되는데 그 중에 하나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본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하고 하얀 항성이 환상의 배경이다. 그 안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열댓명의 사람들이 두 열로 줄서서 지극히 아름답고 조화로운 율동을 선보인다. 마치 태극의 음양 작용을 표현하는듯 부드럽고 현란하며 한치의 오차도 없는 엄격한 칼군무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에 한 명(오른쪽 열의 뒤에서 세 번째쯤 되는 위치였다)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보기로 다짐하며 줌(zoom)을 당겨서 자세히 관찰하기로 한다. 실제로 확대해서 보자 해당 저승사자가 단독으로 군무를 멈추며 질서에서 벗어난 채 시선을 의식하고 나의 존재를 눈치챈 듯한 숨막히는 긴장감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가 나의 시점을 정중앙에서 정확하게 응시하자 나는 당황한 채 환상에서 튕겨져 나와버린다.
지금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어떤 신비감을 조성하며 체험담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환상 체험이 뭐 별 꺼인가? 의식적인 상상과 무의식적인 꿈의 중간 경계 지점에서 잠시 각성된 초의식의 지원 하에 의식과 무의식이 협력하여 무의식이 자동으로 배경을 대주고, 의식이 수동으로 의지를 가지고 한 편의 이야기를 형성해가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마치 일종의 자각몽처럼. 무의식적인 꿈과 의식적인 상상이 별 일 아니듯, 환상도 인간의 약간 희소하지만 어쨌든 자연스러운 경험 영역 중 하나라고 말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적은 이유는 그게 아니라 바로 최근에 창작한 모션그래픽과 연관된다. 오늘까지도 전혀 연결지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만든 모션그래픽을 멀뚱히 반복적으로 시청하며 (얼마전에 도반과 이야기 나눈) 문득 그 환상 체험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게(신성기하학의 정적인 표현) 바로 그 항성이고, 이게(역학의 동적인 표현) 바로 그 율동이잖아?' 뜨억하며 발견한 것이다. 타인이 보기에는 지나친 의미 부여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애초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신비로운 일치이자 경이로운 예지처럼 다가온다. 아래는 유튜브 쇼츠로 간단하게 만들어서 게시한 모션그래픽 영상이다.
https://youtube.com/shorts/4Dkh3P15EfU?feature=share
모종의 저승사자에게서 튕겨져 나온 나는 약 1년이 지난 후 '진리회통'이라는 제목으로 집필을 하기 시작하고, 약 2년 반이 지난 후에는 '메타명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제본했으며, 약 3년 반이 지난 후에는 '역학개벽'이라는 제목의 책을 삼부작 중 두 권 제본했다. 그리고 약 4년이 되어갈 무렵인 바로 지금 역학개벽 중편에 들어가는 수많은 디자인 도식을 하나로 꿰어서 얼마 전부터 배우고 있는 모션 그래픽으로 1분 짜리 영상을 제작해본 것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내용이 고작 1분으로 함축된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움직임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는 시간 차원의 압도적인 힘을 의외의 지점에서 실감한다. 또한 한동안 머릿속으로만 열렬히 상상해오던 영상을 모션 그래픽으로 직접 구현해보는 작업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체계를 가진 영상은 상상만으로는 순서나 구현 방식에 미묘한 오류와 오차, 생략이 내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에프터이펙트로 한땀 한땀 모션 그래픽을 짜다보니 구동 방식을 한결 정교하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
사소한 차이로 보이지만 그것이 다시 개념화되고 문장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잘못 설정된 초기값은 나비효과와 같이 결과적으로 커다란 왜곡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모션 그래픽을 직접 제작하여 구현하고 반복 재생하며 검증하는 작업은 일종의 검산처럼 [신성기하학+역학]의 철학 탐구에 있어 개별 개념은 물론 전체적인 체계를 꼼꼼하게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
절벽에서 떠밀리듯 갑작스레 어쩔 수 없이 영상 편집을 배우기 시작한 거긴 하지만, 셀프로 만든 영상을 반복해서 볼 때마다 역시 다 뜻이 있었던 것이고 배우길 잘했다는 충만감이 차오르며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마이웨이로 철학-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만들어볼 셈이다) 구약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고서는 "보기 좋더라"하신 말씀이 와닿고, 예술가가 희열에 차오를 때는 이런 심정이겠구나 공감된달까.
도반들은 이게 과연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될 지, 어떤 식으로 접근하여 의미를 풀어가야할 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준다.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기에 무관심은 물론 심지어 두려움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지한다. 나는 농담 반으로 일종의 '부적'과 같은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행히 무당 친구 한 분께서는 순기능을 바라는 나의 의도에 꼭 맞게 반응해주셨다. "보기만 해도 움직이는 얀트라 명상을 하는 기분이예요"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렇다,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언어적으로 해석하고 파악하기 이전에 그냥 신성한 기하학 문양 속에서 역학적인 빛의 율동을 느낄 수만 있다면 일단은 그것으로 족하다. 마치 티벳의 만다라처럼, 힌두의 얀트라처럼, 무속의 부적처럼, 요즘의 기술과 방식으로 실험적으로 이성 이전의 감성 혹은 직관에 한 번 가볍게 호소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 남은 생을 통해 그 이성적/언어적 의미까지도 능력이 닿는 한 모조리 쉽고 자세하고 재밌고 흥미롭게 자명하게 풀어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사람들이 나처럼 감동적으로 재밌게 모션그래픽 영상을 감상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