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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Mar 26. 2023

나는 힘들 때, 힘뺄 때, 힘날 때 삼천사를 간다.

힘들 때마다, 힘 빼기 위해서, 힘이 생길 때면 집 근처 삼각산에 있는 삼천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오늘도 산책하다가 문득 '삼천사에 가볼까? 응, 그래!' 자문자답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런 마음이 생긴 건 날씨가 풀리고 봄내음이 맡아져오고 거리 곳곳에 맺힌 꽃망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경우는 '힘이 생길 때'의 방문이겠다.


삼천사를 향하며 막간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에고는 에고고, 참나는 참나다'. 에고는 "에고, 힘들고 슬프다" 하고 참나는 "참나.. 힘들고 슬프냐?" 하는 언어유희가 떠올랐다. 에고는 한치 앞도 모르기에 그 순간에 매몰되어서 진심으로 힘들고 슬프며, 참나는 전지전능하기에 이렇게 또 다시 진정으로 힘들어하는 에고를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게,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바라보는듯 여겨진다. 이거야말로 에고의 맛이고, 이거야말로 에고와 참나의 영원한 관계성이리라. 에고는 참나를 의심하고 원망하며, 참나는 에고가 가엽고 귀엽다. 마치 노련한 아버지와 철부지 자식처럼.. 


참나는 "이쯤되면 믿어볼 만하지 않니?" 말하듯 명백한 신호를 에고가 잊을 만하면 보여준다. 에고는 그제서야 "그래! 아버지는 역시 나를 버리지 않았어!" 확신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망각하고 다시 풀이 죽는 것이다. '언제쯤 온전하게 안착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지금으로서는 죽기 직전까지도 계속 살벌하게 흔들리다가 죽을 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게 에고의 맛이지'라고 체념하고 위안하며.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역경을 겪으며 사경을 헤매고 임사체험을 하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역경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니체의 초인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본다. 불굴의 의지가 (갑인 일주인) 내 기질 중 하나이기에 하늘이 더 엄격하게 시험하는 게 아닐까?라는 망상도 가져본다. 하늘은 내가 정신차리도록 겁을 줄지언정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 오버하며 거만할 때는 '하늘이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맹목적 호연지기가 있었지만 이제 바람이 좀 빠졌다.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다시 바람이 채워지고 있다는 증거겠지만 그 또한 음양 작용이리라.


에고는 단 하나의 계기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계기로 희망을 맛보기도 한다. (나의) 에고는 원체 호들갑이라 자주 롤러코스터를 탄다. 겨울에서 봄으로 자연스럽게 계절이 변화하듯, 잠시 살아오던 흑백의 세계에 다시 총천연색의 색채가 부여됨을 느꼈다. 길가에 맺힌 꽃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여서 마음속으로 '사랑해'라고 읖조렸고, 그게 꼭 하늘이 나를 통해 자연에 내뱉은 말 같기도 했고, 역으로 꽃망울이 내게 산뜻한 봄인사를 건내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감사한 인연과 사람, 기막힌 타이밍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경이를 느낀다. 신은 과연 완벽한 예술가이자 연출가라고 생각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때그때의 희노애락에 탐착하지만, 플롯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전지적 3인칭 작가 시점에서는 롤러코스터가 그리는 역동적인 곡선을 그때그때의 영감으로 신명나게 설계-제작하고 지휘한다. 1인칭 주인공이 문득 3인칭 작가가 되어보는 순간 가까운 비극의 인생이 한 걸음 떨어진 희극으로 변모한다. 


삼천사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그동안 쌓여온 고민, 부풀어터진 번뇌망상이 물렁물렁해지고 차츰 씻겨져 내려감을 느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답이 나오지 않던 문제의 잠정 결론이 자명하게 맺혀진다. 왼쪽 눈가에 나도 모르게 맺힌 한 방울 눈물처럼. 이제 더는 같은 문제의 덫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리라. 단단하게 굳어져 지독하게 끈질긴 업장이 하나 털어져 나갔기를 바라본다. 


오늘 나는 다시 하늘을, 부처님을 조금 더 믿어보려고 한다. 마치 처음 그러는 것처럼, 매번 처음처럼. 이게 얼마나 갈지는 역시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은 지금의 자명함으로 다시 한 번 발심해보는 것이다. 조금, 아니 많이 엉성하고 어설프지만, 그래서 적잖이 위태롭고 우려스럽겠지만, 최대한 맑고 투명하고 담백한 하늘의, 부처님의 도구가 되어보고 싶어요. 인간사에는 오해와 의심과 실수가 많지만 그게 다 에고의 필연적인 한계이고 나아가 필수적인 밑거름이고 재료라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책을 덜어내고 포용해도 되겠죠?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게 해주세요. 희망과 기대를 놓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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