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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l 16. 2023

상담의 이데아를 찾아서 (3)

일대일 상담 초기에는 플랫폼 앱을 통해 약속을 잡아서 카페에서 만나 진행했다. 초기에는 상담하면 체력과 정신력 소모가 생각보다 너무 심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한 타임만 하다가 조금씩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면서 상담을 늘려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자 매일 한 명 이상 상담해야 할 지경이 되었고, 결국 이대 부근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브랜드로 사주 상담소를 차리게 되었다.


2017년 말에 상담소를 차려서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9년 말까지 정확히 2년간 상담소를 운영했다. 이때의 사주 상담 방식은 정확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듯 상담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안에 내용을 알차게 하고 마음을 채워 넣으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아직 사주 상담의 경험도 부족하거니와 사람을 상대하는 역량도 역부족이었기에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내가 취한 사주 상담의 형식은 1. 상담 신청이 들어오면 생일 정보와 질문 사항을 받고, 2. 내담자가 방문하면 일단 별다른 인생 이야기를 터놓지 않고 사주팔자와 대운을 성향/관계/환경의 관점에 따라 전체적으로 풀어준다. 3. 전반적인 사주팔자 풀이가 끝나면 간략하게 내담자의 인생 이야기를 물으며 명리학 이론과 최대한 접목하고 응용해서 사주와 인생의 일치율을 맞춰보고, 4. 이후 질문 사항에 맞게 세운을 풀어준다. 5. 그리고 사주팔자와 대세운에서 더 이상 궁금한 게 사라질 때까지 최대한 질문을 받아준다. 이렇게 해서 대략 1시간 정도 상담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주 상담 형식이 결코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담자의 인생 이야기를 편한 분위기에서 털어놓게 할 만한 역량과 여유가 당시의 내게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또 간혹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자세하게 털어놓는 내담자를 만나면, 그 사람이 생생히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사주팔자 이론에 접목할 생각에 머리가 바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들어야 할 인생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말보다는 명리학적인 원리 해석으로 꿰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분명 도움을 줬겠지만, 그래서 당시로서는 별다른 개선책을 생각하지 못하고 상담을 진행해 왔지만, 인제 와서 지나고 보니 나에게는 그런 부분이 상담 경험의 아쉬운 지점으로 남게 되었다.


상담소를 차리고 그런 식으로 형식에 치우친 사주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주 상담이 사람을 만나는 설렘과 재미로 느껴지기보다는 풀어야 할 과제나 일처럼 여겨져서 부담스럽고 매너리즘이 찾아오기도 했던 것 같다. 명리학 공부를 끊임없이 병행하며 한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1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이야기 나눈 실전 상담 시간은 분명 의미 있고 보람찬 시간으로 영적인 자양분이 되었을 테지만,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단단한 한계 지점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달까.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만 메타적으로 발견하고 해결해서 개혁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를 맞닥뜨린 것이다.


그래서 2년간의 사주 상담소 운영을 그만둘 때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한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당시의 나로서는 꼭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였다고 생각하며, 그 안에서 해볼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어쨌든 해본 것이다. 사주팔자라는 로고스가 화현하여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화 나눈 시간은 역학-명리학의 원리가 실제로 우주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과 가장 궁극적인 부분에 대한 ‘심화 연구’에 의욕이 절로 샘솟게 할 정도로.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며 의무적으로 형식과 절차에 맞춰 실전 사주 상담을 진행해 본 경험은 본격적인 프로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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