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한 Oct 11. 2017

만남과 대화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한다는 게 갈수록 재밌고 뜻깊다. 가장 가볍고 천박한 나를 꺼집어내주는 채훈이는 참으로 일관적인 아이다. 그를 알게된 중학교 2학년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채훈이는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는 것 같고, sns를 보아하면 주변 친구들 모두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놀랄 정도로 일관적인 것이다. 모두가 그를 만나면 가벼워지고, 어느 때든 그를 만나면 가벼워진다. 그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일관된 모습을 고정하고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로 대단한 놈이라고 나는 칭찬 같은 욕, 욕 같은 칭찬을 해줬다. 반면에 나는 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정체성이 그때 그때 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런 나를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신기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조차 나를 규정 짓지 않으니 아무도 나를 파악할 수 없는 셈이다.


나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 여럿있지만 주로 일대일로 돌아가며 만나는 형식을 선호한다. 아주 친한 관계라도, 그러니깐 둘다 비슷한 수준으로, 더 이상 친해질 수 없는 A와 B를 만나더라도 A를 만날 때의 나와 B를 만날 때의 나는 어떤 결정적인 차이점을 지닌 인물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 화법 스타일,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두 다르고 이런 차이점들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재밌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며 내 안의 어떤 조형을 만나고, 조각하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만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옛 친구라도 우리가 서로 변한 만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 또 그만큼의 새로운 나를 만나고 조각하게 된다. 종종, 자주 만나는 친구와는 장기 프로젝트로 형성해가는 어떤 작품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는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게 슬프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차라리 새로운 나를 발굴하고, 새로워질 나를 향해 조각하는 그 과정이 퍽 유쾌하고 가치있다고 답하고 싶다.


인류의 보편성을 공유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공통점에 공감한다. 이것은 한없이 가볍고 유쾌하며 해맑아질 수 있는 요소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요소다. 개인의 특수성에서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가진다.(완전히 똑같고, 완전히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공통점에서 우리끼리만 공유하는 특별한 의식-관계는 그 우연성과 희소성에 우월감을 누리며, 우리를 제외한 모든 세상을 고립시키면서까지 즐거움을 나눈다. 차이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유함, 특별함을 안도하며 한편으론 우쭐히 바라보고, 상대의 그것도 찬양해주며 그런 상대가 나의 친구인 걸 기꺼이 자랑스러워 한다. 모든 만남에는 각자의 미로가 있고, 각각의 미로에는 거기서만 만날 수 있는 나의 조형이 있는 것이다. 공통점과 차이점의 축제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공통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차이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한걸음 더 뒤에서 바라보는 것. 만남과 대화를 통해 나를 조립하고 조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지적인 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10년 동안의 짝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