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변: '차' 떼고 '포' 떼고 나라는 알맹이

(feat. 대화의 희열, 박준영 변호사)

by 뉴욕박변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번 시즌 마지막으로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출연했다.


맨 처음 그가 TV에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길거리 토크쑈 형식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보였다. 그 사람의 욕망이 보였다.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여서 그 사람이 가벼워 보였다. 아마 그 즈음, 이국종 교수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었고,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 때는 어려서, 다른 이를 쉽게 'judge'하고, 나 나름의 등수를 매기고 있었던 것 같다.


로스쿨 2학년 여름방학 때는, 검찰청에서 여름 인턴을 했다. 'White Collar Crime'으로 불리는 힘 있는 사람들의 범죄를 조사하는 팀이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한 재소자가 교도소에서 감독관들이 항문에 총알을 박아서 장이 다쳤다고 주장했던 사건이었다. 잠깐 살펴본 그의 범죄 기록은 100 페이지가 넘었다. 한 검사는 그 재소자는 심심하면 그런 주장을 한다고 지나가면서 얘기를 했던 기억이다. 그 후, 그 사건은 어떤 검사에게 넘겨졌는지, 아니면 거기서 끝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로스쿨 3학년 동안에는, 1년 내내 반대편에 서서 국선 변호사와 함께 일을 했었다. 양쪽 일을 다 해 본 후, 그 당시 나는 검찰청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그래도 양쪽을 다 본 사람이, 힘이 있는 쪽에서 재량을 발휘한다면 '억울함'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이번,'대화의 희열'에 나온 박준영 변호사는 달라져 있었다. 다르게 보였다. 그는 무상으로 재심 사건들을 진행하며, 파산 직전까지 갔던 얘기, 사건 공론화를 시키는 데 있어서 '내가 빛나 보이고 싶었다'라는 인간적이며 솔직한 얘기들을 털어 놓았다. 변호사가 아닌, 인간 박준영의 이야기는,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5억이 넘는 돈을 모금하도록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 본다.


특히, 그가 맡았던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에서, 한 명도 아닌 7명의 청소년들이 모두 다 자기가 죽였다는 진술서를 해 놓은 사건을 뒤집은 얘기를 하며, 그는 뉴욕 센트럴 파크 사건이 전례가 되었다고 했다. 1989년에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하던 백인 여성이 강간 후 심한 폭행으로 혼수 상태에 있을 때, 경찰이 센트럴 파크를 배회하던 5명의 10대 흑인 소년들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DNA가 일치하지 않음에도, 이들의 자백서를 받은 후 각각 6년에서 13년을 구형했다. 그러다 복역중이던 수감자가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한 후, 이들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이들의 이야기는 얼마전 넷플렉스에서 드라마로 재구성 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박준영 변호사는 보통 이 아이들은, 가난하고, 체포 당했을때 달려와줄 부모나 가족이 없으며, 조사중에도 다음 단계에 가서 바로 잡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또, 박준영 변호사는 본인이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자, 마을 사람들이 자기에게 보여줬던 '측은지심'의 눈빛이 힘이 되었다는 말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관심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미국에서는 청소년 조사중에, 조사관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사용하는 것 ('deceptive tactics')을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키는 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Equal Justice Initiative (https://eji.org/)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경우, 허위로 범죄를 자백할 확률이 어른들에 비해 2-3배가 높다고 한다. 이미 일리노이 주에서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뉴욕은 아직이다.


내가 다는 로스쿨은 'Innocence project' (https://innocenceproject.org/)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다. DNA라는 과학을 통해, 그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미션이었고, 이 단체는 곧 전국적으로 커지면서 독립해서 중요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물론, 로스쿨 내에서도, 아직 Innocence Project가 클리닉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까운 친구 두 명 역시 그 클리닉에 뽑혀 일 년간 열심히 일한 적이 있다.

로스쿨 재학중에, 거기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Innocence Project에서 실무는 어떤지에 대해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편지들이 도착하고, 그 중에 맡을 수 있는 사건은 매우 소수이며, 사실은 일이 바쁘다 보니, 우리가 기대하듯, 가족이나 수감자를 직접 만나,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했었던 기억이다. 그 일을 처음 시작했던 베리 셱 교수님이 학교를 방문 했을때, 짧게나마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SE-46b2b024-fa91-42a7-8a7c-f930dab65fa1.png?type=w1 Innocence Project를 설립하신 베리 셱 교수님과 함께

사실, 로스쿨 입학 전에는 들어 본 적도 없었는데, 졸업 후에도 열심히 그 단체의 소셜 미디어 페이지를 팔로우 하고 있다. 소개되는 포스팅에는 25년-30년 동안 복역하다가, 다시 재심을 통해 그들의 무고함이 드러나는 케이스들이 많다. 그 억울함과 세월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또, 그랬던 그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가?


몇 년 전, 한 친구를 통해 알게된 분은, 오랫동안 무죄를 주장해 오며 20년을 넘게 옥살이를 하다가, 감옥에서 AIDS가 걸렸고 결국은, 그냥 자기가 저질렀다고 하고 나왔다. 그 사람이 나오는 날, 입을 속옷과 옷가지를 사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나중에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빨리 결혼하고 없어진 시간을 꽉 꽉 눌러 살고 싶다고 했다. 어디 이런 경우가 한 두 케이스이겠는가? 내가 만일 검사가 되었다면, 그리고 20년 전 내가 맡았서 이겼던 재판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들이 20년 동안 억울함을 가슴에 눌러 담고 살았더라면,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버렸을 것 같다.


얼마전, 인스타로 알게된 @im_tutoo 이성진님의 포스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유용한 말들은 곧잘 관형어의 기능을 한다. '토익 점수가 900점인' 사람, '대기업에 한 번에 들어간 사람,' '좋은 아파트 사는,' '시험에 최연소 합격한,'
'자식 농사 잘 지은,' '어디서나 말 잘하는' 그런 사람.
우린 어쩌면 자신의 값어치를 높여줄 관형어 뒤에 몸을 감춤으로써 존재의 의미마저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는지
이성진 작가의 인스타그램, @im_tutoo

'차'떼고 '포' 떼고 나면, 나에게는 어떤 알맹이가 남아 있을까? '뉴욕' '변호사'를 떼고 나면, 뭐가 남지? 남긴 남나? 며칠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직도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내가 사는 하루 하루가 쌓여 관형어가 아닌, '나'라는 알멩이를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알멩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수식어를 떼어 버려도 남을 수 있는...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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