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변: 나는 그의 페이스 메이커다.

직장 생활이 힘들 때,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 암시

by 뉴욕박변


동경 올림픽을 하나도 시청하지 않았다.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서로가 조심해야 할 시기에 국위 선양이라는 명분으로 선수들을 목숨 걸고 일본으로 보내게 한 결정에 나만의 소심한 복수였다고나 할까.


올림픽이 끝나고 여러 한국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선수들을 보기는 했다. 나라와 관계없이,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국대가 되기까지, 되고 나서, 메달을 따기 위해 몇 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탈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고강도 훈련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점은 볼 때마다 감동이다. 실제로, 14살에 국대로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했던 친한 언니와 25년 지기가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선수들은 보면 짠하다. 선수촌의 뻔한 생활, 반복되는 훈련, 지나가버리는 꽃다운 시절, 시도 때도 없는 부상과 투혼.


지난달, 기록한 일한 시간만 300시간. 주말 빼고 하루 15시간 이상씩 일한 셈이다. 새로 직장을 옮기고 두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지친 기분이다. 예전 직장에서 번아웃으로 나오고 주어진 한 달의 휴가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강도가 높아하기 싫어진 건지, 둘 다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월급도 많아지고, 아직까지는 재택근무라 집에서 일할 수 있는데, 점점 unhappy 해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짜증이 늘고, 가슴이 답답하고, 하루 종일 피곤하다. 아침마다 오늘은 잘해 봐야지 다짐을 하는데 , 마음처럼 잘 되지 않고, 사실 주말에 좀 더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낮에 근무 시간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저녁 시간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새벽 2시까지 일을 했다. 1분에 20개씩 날아오는 보스의 이메일이 없는 시간이긴 하지만, Microsoft Team이라는 채팅 기능이 깔려 있어서, 내 보스도 나도 그 시간에 안 자고 일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알고 있다. ADHD와 OCD가 함께 있는 보스와 일하던 전 어쏘 변호사는 결국 번아웃으로 3개월간 병가 신청을 내고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스태프들 중에서도 그와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넘버 원이 현재 그와 일하고 있는 스태프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와 나는 100% 모든 케이스의 일을 한다. 그와 일하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낮동안에는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그의 이메일에 답변을 하다 보면, 정작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도 못하는 날이 많고, 그가 보내는 질문 중 대부분은 이 서류 좀 보내줘라는 식인데, 아직 파일에 익숙하지 않고, 파일 정리를 칼같이 해 놓지 않았고, 어떤 사건들은 10년 동안의 같은 제목으로 계속 저장해 놓은 이메일을 일일이 뒤져야 하는 비효율적인 이 상황에 정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날이 많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훤칠한 키에 너무 머리가 좋은 내 보스는 친철하기도 한데, 같이 일하기는 정말 힘든 사람이다. 그래서 자꾸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되는데, 어제 처음으로 나의 역할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페이스 메이커다.'


언젠가 나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기회가 오기를 바라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역할을 하는 그가 잘할 수 있도록, 재판이나 중재에서 압도적으로 잘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최고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페이스 메이커 같은 나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겼다.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코로나 이후 처음 집 밖으로 나간 5일간의 휴가 동안에도 계속 중간중간 이메일을 체크하며, 지시를 내리고, 저녁 시간에 일을 하고, 결국 휴가 마지막 날부터는 아예 일을 하기 시작했던 그는, 하루에 7시간 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나 나나 서로의 루틴이 뻔히 보이는 생활 패턴을 알고 있기에 얼마나 피곤할지 짐작이 간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함께 일했던 상사들 중에는, 나 몰라라 맡기고 놀러 나가는 보스도 있었고, 맡겨 놓고 나중에 자기 마음대로 일처리 안 했다고 성질내던 보스도 있었고, 아예 일을 안 주는 보스도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잘 가르쳐주는 보스가 있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같이 일한 지 두 달만에 이렇게 벌써 애증관계가 생기는 걸까? 다른 곳에 어플라이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네, 고민이야.


그래도 또 하루가 시작된다. 일단 오늘 하루만 잘 버텨보자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운가? 일단은 남은 학자금 갚아야 하니까, 더 많이 돈 주고 오라고 하는 곳이 생기기 전에는 옵션이 없으니까 라면서 다독여도 본다. 그런데, 솔직한 마음은, 당장 1년을 버틸 수 있을까에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직장 생활하면서 사이드 허슬을 하시는 분이나, 그게 더 잘 돼서 퇴사하신 분들, 사업하시는 분들이 심히 부럽다. 예전 로펌을 퇴사하기로 한 나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계속 곱씹게 된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했던 건데.


그 친구 말대로 내가 애가 있었다면 다 참고 견뎠을지도 모르겠다. 아~, 피곤한 금요일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해야 할 일들도 기다리고 있다. 일하러 가자.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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