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는 진짜 역사.
한 해가 끝나가고, 올해가 끝나면 없어져버리는 연차가 8일이나 남았는데, 아마 이 중 하루도 안 쓰고 넘기게 될 것 같다. 월말마다 빌러블 아워 (변호사가 고객에게 청구할 수 있는 시간으로, 6분 단위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때문에 자정까지 피 말리는 패턴을 반복한다. 아마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일 거라 했다. 내 경험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병.
그나마 이번 달 초, 2일을 휴가 내고 앨라배마에 다녀왔다.
앨라배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연설을 한 곳이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백인 전용 자리에 앉았던 흑인 여성인 로사 파크스가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거부하면서 미국 전역에 평화 시위가 퍼지게 된 사건이 있었던 곳도 몽고메리다. 사실, 이 번 여행은 동생에게 헤드 셰프로 일해 달라는 제안 때문에 살펴보러 그 옆 동네에 가기 위한 길이었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Legacy Museum에 들르기 위해 일부러 몽고메리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영화 <Just Mercy>의 실제 주인공인 Equal Justice Initiative의 사무국장인 브라이언 스티븐슨 변호사가 이끈 프로젝트 중 하나가 이 박물관 설립이다.
역사 시간에 배우지 않은 미국 역사의 어두운 면, 납치당해 노예로 끌려와, 갖은 핍박과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3살짜리, 5살짜리, 신생아를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나무에 매달아 죽인지는 몰랐다. 한 엄마의 세 아이를 각각 다른 집으로 팔아서, 그 엄마가 반쯤 정신이 나간 얘기를 알지 못했다. 노예에 대한 형벌이 너무 잔인해져, 혀를 자르는 건 금지시켰는지 알지 못했다. 미국 내전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그 후에도 가장 많은 노예들을 불법으로 제일 많이 거래한 곳이 몽고메리인지 몰랐다. 미국인들이 최애로 뽑는 휴양지인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 다음으로, 노예들이 제일 많이 거래된 곳이 뉴욕인지 몰랐고, 브로드웨이 길에 깔린 예쁜 벽돌들과 내가 일하는 월스트리트의 벽이 노예들에 의해 지어진지 몰랐다. 난 심지어 미국 고등학교에서 미국 역사 수업을 들었는데 이런 얘기는 역사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서둘러 도착한 메모리얼에는 수많은 쇠기둥이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이에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각 주의 카운티마다 린치 (목을 메달아 죽임)을 당한 사람들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니, 본보기로 반항하는 흑인들을 린칭할때 이를 지켜본 사람들의 눈높이가 이랬겠구나 싶어 소름이 끼쳤다.
몇 시간 안에 다 담아내기에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노예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노예제도는 현대판 감옥행으로 형태만 변했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것에 대해서는 너무 할 말이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 방문객은 흑인들이었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 박물관에 갔을 때, 하도 들으면서 자라서, 그 잔인함에 충격적이기는 하나 새로울 게 없는 것과 비슷한 걸까 궁금했다. 메모리얼을 지나오며, 흑인 여성 2명과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이 박물관은 "affirmation (확언)"이라고 했다. 이런 역사가 있었음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는 것이라고.
앨라배마주는 텍사스 주와 함께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주이기도 하고, 영화 <Just Mercy> 플롯의 바탕이 된 실제 사건들처럼, 지적 장애인도, 13살 아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도 재수 없으면 잡혀 감옥살이를 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공통점은 이들의 대부분은 흑인이라는 점이다. 우연일까? 특히, 얼마 전 앨라배마주는 사형을 집행하는 독약의 유통기한이 만기 되기 때문에 그전에 서둘러 사형을 집행하려고 했고, 그중에는 처음부터 범인이 아니라고 줄기차게 얘기했고,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사형 집행 날짜가 잡힌 경우가 있어,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트럼프 정권하에서도 우리는 다 보지 않았는가? 처음엔 모슬람, 그다음엔 이민자, 그다음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로 대상만 바뀔 뿐. 그래서 이 역사가 흑인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된 자료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만으로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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