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규입니다.

공직일기 1

by 아윤

모두가 그렇듯이 신규 공무원 발령은 아주 빠르고 정신없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내가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안내 없이 그저 임용장을 받게 될 장소와 일시 시간이 정해지면 <자유로운 복장>으로 참여가 가능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세미정장을 차려입고 임용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몇몇 경우에는 임용 전에 미리 연락을 받고 인수인계를 하는 경우도 있고, 임용식을 첫 출근일 전에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미리 인사 겸 출근지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내 경우에는 아주 정석적인 방식으로 임용장을 받는 그날 바로 업무가 시작됐다.


간단하게 임용장을 받고, 자리를 안내받자마자 각종 권한신청의 늪에 빠진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되는 만큼 이를 위해 해야 하는 밑작업이 아주 많기 때문.


이렇게 첫날은 하루 종일 각종 권한 신청, 결재, 처음 보는 시스템에 어리바리하게 눈치만 보다가 업무용 메신저의 아이디조차 받지 못해 핸드폰 배터리가 80% 이상 남은 채로 눈을 댕글댕글 굴리다가 퇴근하게 된다. 자리에 인수인계서가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내 전임자가 100% 작성한 것이 아니라 부서 어딘가에서 떠돌던 전송에 전송에 전송을 거친 어떤 문서일 것이다. 앞으로 그 종이가 닳을 때까지 들여다보게 될 목숨줄 같은 종이지만 그마저도 처음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직도.., 생각할수록 참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거의 대부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모이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여기저기에 악명 높은 밈으로까지 심심찮게 등장하는 인수인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대면민원에게 바로 노출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를 배울 시간이나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내가 내린 어떤 결과에 따르는 책임감이 진득이 따라붙어 짓누르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옆자리 직원분이 너무 소중해진다.

마치 미운오리새끼에서 오리가 태어나 처음 본 백조를 엄마라 믿고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처럼 사수와 함께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분의 성향, 그분의 업무스타일에 따라 공직생활이 나아갈 방향성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 자리라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자리.

애써 떠놓은 물이 무색하게도 줄어들지 않는 텀블러 속의 물.

누군가가 사 주신 건데 결국 다 마시지 못해 거의 그대로 남아버린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임용 전 신나게 노느라 매일 닳기 바쁘던 휴대폰 배터리가 도통 줄어들지 않고 그저 시계로 전락해 버린 채.

모두가 바삐 업무를 처리하는 가운데 전화가 울려도 받을 수 없고, 누군가 내방하여 도움을 청해도 혼자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난감해하며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만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신규공무원이 된다.

정확히는 시보(굳이 따지자면 인턴..?) 임용된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근데 이제 문제는, 그 사실을 우리 자신만 아는 것처럼 되어버린다는 거다.

외롭고도 긴 싸움의 시작이다.


지치지 말자 신규들.

어깨 쭈그러들지 맙시다.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시기인데..., 그게 당연한 건데도

주변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고

외롭고, 지치는 순간이 너무 많겠지만.

그 순간에 진짜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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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짙어지면 스스로를 동굴 속에 가두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직종에는 특히나 순한 기질을 가져 고민에 대해 인내하거나 참거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그저 관망하거나 회피해 버리는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외로움이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이들의 소식이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나 역시 이 시절, 정말 매일이 마음이 괴로운 날을 보냈었는데.

혹시라도 이런 어려움을 지금 겪고 있는 신규공무원들이 있다면..., 꼭 어려움과 힘듦을 누군가에게 꺼내놓고 마음을 나누어 풀어내고 있기를.

혼자 이겨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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