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공직일기 2

by 아윤

임용된 이후, 내가 갓 임용된 신규 공무원이며 그 이름도 낯선 <시보> 상태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는 정말 황금기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아 그 기간은 매우 짧을 가능성이 높아서 정말 잘 활용해야 한다.

이 즈음 운이 좋은 혹자는 좋은 사수님을 만나 업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아마 극소수일 거고 팀원들과 팀장님 그리고 과장님 등 낯선 언어들에 적응하고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소리에 적응하며 내가 담당자라는 이름 아래 있어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무엇이든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는 시기다.


물론 이 시기에 당연히 아무것도 모를 수 있으니 배워야지,라고 생각하며 조금 여유 있게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성향의 분들이라면 정말 다행이고.

나 자신은 그런 성향이 되지 못해 이 시기가 정말 괴로웠는데 무엇보다 내가 힘들었던 건, 이 신규 시기를 함께 나눌 동료가 없었다는 점이 되겠다.

일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사수님,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했던 단 한 명의 소위말하는 빌런 없는 팀에 소속되어 업무를 익혀나가던 나는 이제 점점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담당자>

라는 이름에 새겨진 묵직한 무게를 말이다.


처음에는 업무를 모르니 공무원 공부하던 시절 기본서와 비슷하게 생긴 두툼한 지침만 들여다보게 되는데 아쉽게도 이 시기에 지침을 봐도 뭘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내 경우엔 업무의 대 원칙이나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이후에 지침을 찾았을 때에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지침은 그야말로 흰 건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일 뿐.


지방사회복지공무원들은 업무수행을 위해 행복e음이라는 시스템을 활용한다.

차라리 이 시기에 이 시스템 실무 수행 강의나 혹은 각 메뉴 설명이 들어간 강의를 듣는 게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언젠가 내게 누군가 신규 시기에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요 물어보는 이가 있다면 이 교육이 필수로 선행되지 않음을 말할 만큼 뼛속깊이 새겨진 속상함 포인트 중 하나.


언젠가 내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꼭.

<직렬별> 실무 시스템 활용교육이 신규 임용자 교육과정에 필수로 포함되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해보고 싶다.


그리고는 이제 업무 센스의 문제로 이어진다.


태어나 처음 겪는 사회생활이 이 조직이 많을 대다수의 신규 공무원들.

처음 겪는 일들에 혼란스러울 때, 꼭 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이거다.


그냥 너무 많은 걸 이해하고 알려고 애쓰다가 지치지 말고.


1. 기본적인 전화기 사용법(왜냐면 업무를 모르니 담당자분께 전화를 넘길 일이 많으므로.)

2. 사무실 자리와 성함 및 직급 외우기(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3. 업무분장표 암기(물론 업무분장표는 외계어처럼 어렵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어떤 업무가 어떤 분의 업무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니까.)

4. 복사기, 스캐너 사용법 한 번에 익히기(어렵지 않지만 알려줄 때 다시 물어보지 않게 잘 기억해 두거나 본인을 믿지 못하면 기록하자.)

5. 인사 잘하고 근태 성실히 하기(성실한 건 무기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 아주 크게 작용할.)


요 정도만 하자.

아직은 이 무게 정도만 견뎌도 아주 괜찮다.


그리고, 어려워말고 본인이 신규임을.

임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티 많이 내자.


어설프게 잘못 안내하거나 나서려다 실수하는 것보단, 담백한 인정이 훨씬 낫다.


어차피 몇 달 지나면 적응 후 담당자역할을 해 낼 테니.

스스로를 믿지 못하겠으면 잘도 흘러가는 시간을 믿고 우린 성실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업무를 배울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꼭 그 기록을 정리해두길 바란다. 필자의 경우엔 당일에 배운 내용을 혼자 복기하며 아주 사소한 내용까지 어떻게 처리한다고 하셨었는지 방법을 기록해 두고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었다.

모두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본인의 담당 업무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신규 직원이 옆에 오게 돼서 업무를 가르쳐주고 함께해주고 있는 사수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없이

스스로 냉정한 이 사회에서 성장해야 하는 신규공무원이 있다면 꼭 그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털어놓을 본인만의 안전한 언덕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일 뿐, 이 혼란은 누구나 겪는 것이니까.

부족하거나 모자라서 힘든 게 아니니까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 말기를.

작가의 이전글안녕하세요. 신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