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Nov 22. 2018

뉴욕; 사직서

새 출발을 앞둔 나를 위해 유종의 미를 이루고자 노력했다

현 회사에서 나가야 함을 엄숙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자료 분석 업무나 상품 개발에 들어가는 초기 자료 조사업무는 인재개발 명목하게 신입사원들이나 주니어 애널리스트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고.  자기 계발 아이템으로 생각하고 있던 코딩을 통한 프로그램 개발과 IT 관련 업무는 인도에 세운 뉴델리 지사로 아웃소스 되는 상황이었다.


나와 같이 6년 넘게 일한 프로젝트 매니저나 경력자들은 매일 비슷한 업무를 진행하며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져 가고 있었다. 회사 내에서 성장해 가는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연초에 있었던 비공식 인사평가에서도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한 혁신이나 도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후, 출근 때마다 'You are Fired!!' 어디선가 경고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You are fired" by Donald Trump in Realty Show





'인생을 다시 재정비할 시기가 왔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3개월이라는 Deadline을 주고 이직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배우자는 총체적인 목표로 잡았다. 지인들에게 이력서도 뿌리고 회사 웹사이트에 지원서도 넣고 헤드헌터를 통해 인터뷰도 보았다. 예상했던 만큼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3개월이 훌쩍 지나 5개월째 자신감이 바닥으로 칠 무렵 4차 인터뷰까지 봤던 뉴욕 씨티은행 본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배우게 되는 기회였기 때문에 오퍼를 받은 후 24시간 안에 승낙했다.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조용히 사직서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사직을 진행하는 방법은 회사 사이즈나 관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보수적인 현 회사 분위기, 금융계의 관례, 회사 매니저/임원들이 50-60대라는 것을 감안해서 전통되로 회사 로고가 찍힌 편지지에 사직한다는 의사와 그동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성장했다는 감사의 글을 담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 하자마자,



1. 직속 매니저를 찾아가 사직 의사를 밝혔다.

- 이어서 2주 Notice를 드리는 것이며, 마지막 출근일은 오늘로부터 10 Business Days 후인 00월 00일로 동의하는지 매니저 의사를 물었다. 매니저는 날짜에 동의했고 나는 곧바로,

2. 인사 부원을 만나 사직 의사를 밝히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 다음날에 인사 부원과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EXIT Interview 가 진행되었다.


 EXIT Interview에서 오가는 대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How can the company improve on serving employees better in the future?

- 회사원들을 위해 회사측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고쳐야 할 점이 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다양한 경험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회사에 감사 표현으로 답을 대신했다. 인사 부원에게도 그동안 비자서류 챙겨줘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유종의 미를 원한다는 내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싶었다.


2) Administrative items

- 회사를 통해 붙던 적금, 은퇴자금, 보험, 임금 계산 등을 어떻게 정산하고, 새 회사로 이체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었다.


매니저나 인사부 등 회사 내부인이 새 직장이 어딘지 물어보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왜 회사를 관두냐는 질문에 감정적인 발언보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학교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 라는 두 문장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형식적인 발언이다.




이 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두 번의 H1B 비자와 영주권을 해결해 준 회사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마지막 날, 회사 사장을 비롯해 동료들 매니저들과 그동안 고마웠다는 악수와 포옹을 한 뒤 회사 건물을 나왔다. 우당탕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거세게 쏟아지던 맨해튼 다운타운 하늘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 뉴욕의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