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장한 인턴십 2

정당한 요구하기

by Jaden

인턴십을 통해 미국 회사 조직 내의 행동 코드, 드레스 코드, 프로패셔널리즘(professionalism)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대부분 금융 회사는 광고회사나 디자인 회사보다 보수적이고 그 분위기는 사원들의 옷차림에 반영되어 있다. 회사의 전체적인 성향 파악을 위해서는 사원들의 옷차림을 주위깊게 살펴보면 된다.


인턴이라 할지라도 정직원과 같은 자세로 임하되 실수를 하더라도 연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특히 나처럼 학교 공부는 잘 따라가지만 처세술이 약해 현장에서 고전하는 유형은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여러번 부딪쳐 연습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을학기에 지원한 인턴십은 자산관리사였다. 뉴욕 다운타운 금융지구(Financial District)에는 월드 파이낸셜센터(World Financial Center)라는 곳이 있다. 세계 금융 대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구역으로 매년 여름방학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상시 모집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큰 회사는 전문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회사 전용망을 이용해 자료 검색도 쉽게 할 수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잘 구축되어 있어 전 세계 지점 담당자들에게 필요시 쉽게 연락이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포지션에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내 책임은 펀드 상품 리서치와, 회사 신용도 조사 그리고 포트폴리오 재편성과 거래주문 담당이었다. 당시 친환경(socially responsible funds:SRF)에 관련된 펀드가 뜨는 시기여서 이와 관련된 리서치를 많이 했었다. 뉴욕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지불 시스템 (fed fund wire) 구조도 속속들이 배우게 되었고 이 지식은 지금도 금융회사에 일하면서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


의외로 고군분투했던 것은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전화. 전화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 목적을 확인해서 담당자에게 연결해 주는 간단한 일인데 매니저들의 기분이나 부서 분위기에 맞게 눈치껏 행동할 필요가 있었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전화 거는 사람의 이름 확인이 더딘 것이었다.


Betty Vandroogenbroeck...??

Peter VanvanOirscotten ....??


무슨 성이 이렇게 길어?


고객들에게 '미안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연거푸 질문을 하면 내 이름도 모르냐고 화를 냈다.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신경 쓰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고객들 언성이 더 높아졌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은 태연하게 '죄송합니다. 저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홍길동 인턴입니다. 번거롭지만 이름 철자를 정확하게 불려 주시면 담당자에게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했더니 화를 내는 고객들이 없었다. 어떤 분은 Welcome Aboard!!(환영한다!!)라며 축하한다는 말도 했다.


두 번째, 상대하기 힘든 상사가 한 명 있었다. 당시 15년 차 시니어 어시스턴트(senior vice-assistant)는 내가 보고해야 하는 상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기분은 하루에 몇 번이고 롤러코스터를 탔고 매사 신경질 적이었다. 어느 날 회사 감사부에서 연락이 와 우리 부서가 제출한 거래주문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나는 그녀에게 보고를 올려야 했고 그날 아침 10시경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랬더니 "아직 내가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 말 시키는 거니? 커피 마시지 전까지 말 시키지 마"라고 하셨다.


지금 바쁘다는 말을 빗대어서 하는 걸로 이해했고 알았다고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몇 주 후 회사 구조조정으로 부서 내 책상 등 모든 가구들이 재배열된다는 애기가 돌았다. 그녀는 나에게:


"어떡하니? 네가 앉을 책상이 없어질 것 같다. 내가 감자 자루 하나 가져와서 내 책상 뒤에 둘 테니 다음 주부터 거기 앉아." 그녀를 바라보는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하면서도 '상사잖아.... 뭐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말씀 가려서 해달라고 해도 되는 건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인턴을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회사 내에서 상사가 발길질을 한다고 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인격적 모독은 FM,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면 허공에 던지는 것도 허다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녀의 모욕적인 발언들을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무조건 견뎌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



2달이 넘도록 비슷한 사건이 계속되었고, 답답한 나머지 인사부에게 직무 관련상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고 미팅을 잡았다.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고 이런 이런 경험을 했는데 아직 충분한 경험이 없어서 그러니 멘토링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때 인사부 매니저는 "신입 사원이 회사 중견 인물을 상대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며 말을 꺼냈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같은 사람을 얘기하고 있었다. 인사부 매니저의 충고는 이랬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되면 의사를 객관적으로/분명하게/예의 바르게 전달하라"였다. 조언을 실행에 옮기는 연습을 했고 그 인턴십은 끝이 났다. 뒤에 알았지만 미국 회사에서 그녀의 행동은 '학대'(harassment)에 해당한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증거 자료를 모아 인사부에 제출할 수 있고 소송을 걸 수도 있다.


곧이어 시작한 월가에 위치한 파생상품 회사에서 3개월 동계 인턴십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전번 회사에서 똑같은 성격의 상사를 만났다. 어느 날 아침 회사 동료 가족이 전화해 가족 한 명이 위급하니 동료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동료는 아직 출근 전이였고, 이를 전해 들은 상사는 내게 빨리 동료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알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을 시작한 지 3주째인 나는 회사 시스템 비상 연락망을 물어 물어 알아내 동료 연락처를 찾았냈다.


'왜 이렇게 업무 처리가 느리냐고??' 상사는 소리를 질렀됐고 긴급상황이니 일단 일을 처리했다.


이번 인턴싶을 시작하기 앞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회사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 할 것이다. 단, 같은 실수는 두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내 인격적인 모독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반드시 지켜 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으로 찾아가 물었다.


나: Can you tell me why you raised your voice at me earlier? (좀 전에 저에게 소리 지른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매니저: I was agitated at the moment (내가 잠시 동요했다.)


나: I understand the situation but I am an employee here as you are. Can you talk to me in a respecful manner from now on? (위급한 상황이었던 걸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도 매니저님과 같은 회사 직원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매너를 갖춰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


그리고 돌아서서 내 책상에 가서 앉았다. 이 사건 이후 그 매니저와 사이는 더 단단해졌을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그녀의 라인을 타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정직원으로 고용하자고 추천을 한 것도 그 상사였고, 정직원이 된 후 6개월 만에 10% 연봉 인상을 제안한 것도 그 분이었다고 시간이 지나서 들었다.


어떤 조직에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가급적 분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때로는 최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를 가던 '상사에게 이유없이 대들면 안 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 듯 하다. 하지만 업무에 충실하고 회사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상사 개인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인격적인 모독이나 부당한 대우를 일삼는다면 프로패셔널한 범위안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맨토나 커리어 상담사를 찾아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대처방안을 세우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중요한 것은 침묵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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