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이란 말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게 쉬워졌다
회사를 몇 번 이직해 본 또래 직장인 친구들은 첫 직장 경험에 대해 '저주'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한다.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준 첫 상사, 첫 직장, 첫 동료들을 왜 아직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 졸업 후 영국계 금융기업에서 3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회사가 시키는 데로 일만 했다던 트레이더(trader) Jackie는 첫 직장을 뛰쳐나와 요가 선생님이 되었고, 남은 일생은 마음의평화(Zen)을 유지하며 살겠다고 했다. 뉴욕에 위치한 일본 중앙은행 감사부에 취직한 Carole은 부서에 문제가 생기면 신입인 자기 탓으로 돌리는 부서 사람들을 저주한다며 몇 번 이직 후 대학원으로 피난 갔다. 뉴욕 컨선털트 회사에서 풍요로운 대우를 받으며 일하던 Paul은 2년 후 시시각각 변하는 매니저들의 기분에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해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다.
직장생활에서 힘든 점은 업무가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만 떠나면 달라질 것 같다고 푸념하는 친구들에게 뉴욕도 그 점에서만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말하게 된다.
업무 C를 완수하고 보고하라고 해서 보고를 하면 업무 D는 왜 못 끝냈냐고 신경질 내는 상사?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일부러 협조하지 않는 시니어 에널리스 겸 중견급 상사? 업무 역량에 상관없이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들(Favoritism)만 챙기는 상사?
처음에는 모든 게 상사들의 잘못 이를 간과하는 회사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연차/직분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 한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일꾼'인데 지시도 제대로 못 내려 아랫사람을 탓하는 상사, 습관처럼 협조하지 않는 상사, 업무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상사가 업무 차질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럴까?
10년 차들에게 대항하는 3년 차 애널리스트는 고목나무에 머리를 치며 자폭하는 참새일 뿐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도 회사 기밀을 많이 알고 있는 중견급 매니저들을 상대할 때는 신중을 가했고, 매니저들도 회사 기밀 외 10년 넘도록 한 회사만을 일한 'Loyal'이라는 카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하다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변하는 게 사태 해결에 효율적이였다.
직장 3.5년 동안 내가 보고해야 하는 상사는 3명이었다. 일단 개개인의 성향과 기질을 면밀히 관찰한 뒤 대응하는 전략을 짰다.
1. 러시아계 유대인 (Russian Jewish Manager) - 12년 차 중견 매니저. 유가증권 트레이딩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7명의 부하 애널리스트를 이끄는 프로젝 매니저. 30대 중반으로 아직 미혼. 초콜릿 같은 단 스낵 종류 좋아함. 유가증권 분석과 빠른 일 처리를 인정받아 고속 승진한 케이스. 업무 처리 하나는 정말 총알이다. 내 직속 상사는 아니지만 그가 이끄는 팀의 업무 보조를 하고 있어 그의 몇 마디는 매년 직무평가에 15% 정도 영향력을 행사함.
매일 보고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경우는 적다. 간혹 그가 직접 지시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간보고를 올릴 때면 내 자료조사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충 보고 받았다. 자료 출처가 확실하다고 강조해도 "아닌 거 같다"라며 보고서를 책상에 두고 가라고 할 때가 있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어느 날 하루는 집에서 TV를 보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미국 하원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약함에 반응하지 않는다. (Russians do not respond to weakness). 그러고 보니 내가 친절하게, 부드럽게, 다정다감하게 얘기할수록 그는 더욱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례해졌다!! 하루는 업무 보고를 하는데 또 한번 "아닌 거 같다"라고 하길래
'아니긴 뭐가 아니해요? 미 연방정부가 맞다는데, 자꾸 아니라고 하시면 어쩌자는 거예요 도대체'
라고 으르렁 되며 말씨름을 벌였다. 그 후로도 애국가가 아닌 군가를 부르는 박력으로, 시시콜콜한 언쟁이 섞인 업무보고가 계속되었다. 이런 스타일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강하게 받아칠수록 업무에 상관없이 회사 내의 내 존재감을 인정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통념이 효과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정기적으로 초코파이를 사서 그와 나눠 먹는다.
2. 미국인 매니저 (New Yorker Manager) - 뉴욕지사 총괄을 맡고 있는 매니저.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산악 바이크 등 신체활동을 즐기는 활동적인 사람. 매사 작은 것들도 보고 받기를 원함. 예를 들어 고객들에게 문의 전화가 오면 전화 라인 몇 번으로 몇 시에 전화가 왔는데 질의 종류와 고객의 어투(가 격양되게 들렸다) 등... 세심한 보고를 좋아한다. 정리 정돈을 잘 하는 부하 직원을 선호해 그녀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때는 최근 보고서를 가장 위에 올리고 날짜별로 정돈해 제출했다.
그녀가 요가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다음부턴 회사 문제 거리에 대해 토의할 때면 요즘 '요가 수련은 어떻습니까' 먼저 물은 다음 그녀가 함박꽃 미소를 뛰고 10분-20분 수련 생활 얘기를 들은 후 심각한 문제로 초점을 돌리곤 했다. 안 좋은 소식일수록 가볍게 꺼내라고 하지 않았나? 그녀의 권유로 나도 요가를 시작했다. 여유시간에는 뉴욕 요가 스튜디오에 대해 정보도 나누며 신뢰할 수 있는 상사/부하 관계를 형성했다. 회사 업무 외 뉴욕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돼 그녀와 일하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직장 생활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내가 요가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된 것처럼 공감대를 찾아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 예이다.
3. 콜롬비안 매니저 (Colombian Manager) - 콜롬비아에서 온 히스패닉 매니저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중견급 매니저. 런던지사를 총괄하고 후에 회사가 인도지사를 내면서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게 되면서 내 직속 상사가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매니저다. 매일 출근하며 퇴근을 기다렸다. 업무 보고를 하라는 지시도 없이 왜 업무 보고를 안했냐고 화를 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일쑤였고, 공식적인 미팅에서 사장급이나 회장급이 내 아이디어를 칭찬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발언을 일삼았다.
우선 들릴까 말까 한 톤으로 말을 하는 그는 다른 매니저들에 비해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업무 보고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해 두 번 세 번 설명해야 하는 등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상당히 내향적(Introvert)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차 되던 해 회사 상품 70개를 개발하고도 보너스와 연봉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 해 가장 많은 상품을 개발한 애널리스트로써 당연히 둘 다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매니저에게 찾아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다.
그는: '업무 평이 좋지 않았다'고 모호하게 대답을 했다. 어떤 업무 평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연계된 부서 매니저들에게도 균일하게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반문했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뛰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니어 애널리스트가 하는 질문에 신속하게 답하지 않는 등 모범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이에 대응해 런던에서 일하는 주니어들이 뉴욕에서 일하는 내게 뉴욕시간으로 새벽 3시에 질문을 하면 가장 빨리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출근하는 아침 9시라고 설명했다. 새벽 근무에 대해 미리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니저는 상당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외향적인 사람처럼 박력 있게 사람들을 이끌거나 선동하진 못하지만 야망도 크고 리더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다. 회사 내에 외향적인 남자 동료들과 분쟁이 있었다고 알려진 바 있고 지금 현재 그 밑에서 활발하게 보조하는 주니어들은 모두 여성이다라는 것도 간과할 점이 아니었다. 추진력 있는 직원을 선호하지만 그에게 말할 때는 부드럽고 다정다감해야 했다. 그 해 내 직무평가에 대해 인사부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매니저 편을 들어주었다.
평가가 합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매니저의 성향에 맞춰 부드러운 어투로 미소와 함께 어깨를 굽히고 재심사를 부탁했어야 했다. 뉴욕 업무시간을 고려하지 못한 주니어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니 올해 가장 많은 상품 개발로 회사에 기여한 봐도 없지 않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 내 업무량과 회사 수익률 증가의 직접적인 관계를 엑셀 챠트로 만들어 내밀며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는 정면돌파 방식은 그에게 위기감을 주었고 결국은 둘 사이 대화를 차단시켰다.
그렇게 보너스도 연봉인상도 날아갔다. 편두통이 생겼다. 1년간 계속되는 요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시야도 흐려지고 탈모가 왔다.
내 EGO 때문에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보너스와 연봉협상에서 다시는 제외되고 싶지 않아 변하기로 결심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업무 보고를 할 때면 사근사근하게, 인턴에게나 시키는 복사나 타이핑 업무를 시켜도 미소로 답하고 또 시키실 것이 없냐고 매니저 주위를 맴돌았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면 항상 스마일 이모티콘을 붙여 대화하고 여담으로 콜로비아 커피가 최고라는 말도 덧붙이곤 했다. 이것이 매니저가 원하는 모습이였다. 그러길 1년 반,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한 번 맡아보라고 하기도 하고 공식석상에서 망신 주는 것도 사라졌다.
가끔씩 또래 직장인 친구들과 모여 지난 일들을 회상한다. 그때 일들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좀 더 나은 조직원이 되기 위해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이해할 수 없고 부당하다며 개탄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해 눈물 훔치며 온갖 노력을 했었다. 미숙했던 조직문화 적응기 & 의욕이 앞섰던 사회 초년 시절을 뒤돌아보며 지금은 좀 더 숙련된 사회인이 된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며 추억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