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하나로 일궈낸 어느 개발자의 '거친' 생존기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뭐랄까...대화하기 힘들고 생각이 편협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앞섰다. 나도 모르게 이미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우연히 웹사이트에서 본 미국 구인 공고 하나에 의지해 비행기에 올랐다. 연고도, 대책도 없는 무모한 출발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계약한 집은 문이 닫혀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기로 한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세 시간 뒤에야 나타난 주인은 사과는커녕 다짜고짜 타라며 그를 밴(Van)에 태웠다. 낯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그는 반나절 동안 물류 창고에서 박스를 포장하고 날랐다.
그날 밤, 겨우 들어간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그는 미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갓 제대한 그는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생전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다음 날부터 바로 직장에 나가 일을 배웠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핸드폰을 샀고, 그때부터 독학으로 코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닥치는 대로 일을 배우고, 밤에는 코드를 두드렸던 시간들. 현재 그는 대형 물류회사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개발자(Developer)가 되어 있다.
그와의 인연은 그의 대화력 향상을 돕기 위해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 미국 직장 문화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는 매번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치열하게 정리해와 말하는 연습을 했고, 회사에서 마주하는 복잡한 갈등이나 문제 상황들을 내게 가져와 해결 방안을 묻곤 했다.
결국 그는 회사의 스폰서를 받아 H1B 비자를 획득했고, 수년의 버팀 끝에 영주권까지 거머쥐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생애 첫 집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끔 그의 말은 거칠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스몰토크 주제로는 금기시되는 정치나 종교 같은 예민한 토픽에 요지부동일 만큼 자신의 신념이 강하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경한 그의 태도에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다른 각도로 그를 바라본다. 그의 '거침'은 타국 땅에서 그를 지탱해 온 유일한 추진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방 하나 들고 도착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했던 사람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 도구였을 것이다.
그의 투박한 언어 뒤에는 삶을 정면으로 통과해 온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생존근육'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