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세(Passé): 통과하는 고요
뉴욕의 오후는 종종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내 업무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매니저가 연루된 사건을 수습하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쌓여가는 이메일 함을 보며 야근의 그림자가 엄습할 때쯤, 기적처럼 매니저가 먼저 퇴근을 선언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고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발레 스튜디오로 향했다.
언제나 처럼 30분의 준비 운동.
준비운동의 마지막 단계로 자신 있게 옆으로 다리를 찢으며 몸을 풀고 있는데, 선생님이 "이번엔 앞뒤 찢기를 해볼까요? 제가 좀 눌러드릴까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니요!" 하고 비명을 지르듯 호소했다. 평소 내 이미지와 반대 모습에 선생님도 살짞 당황하신 것 같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였다.
'파세'는 불어로 '통과하다' 라는 뜻을 지녔다. 이 동작은 사실 가장 안정된 집중을 요구한다. 발 동작 1번 자세(turn out) 에서 한쪽 다리를 천천히 끌어올려 반대쪽 무릎 옆에 살짝 얻이든 고정하고 중심을 잡는다. 들어 올린 무릎은 앞이 아닌 옆을 향해야 한다. 무릎을 열어낼수록 중심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하는데도 균형이 잘 잡혔다. 스스로 대견해 하며 미소 짓던 착나 선생님이 고개를 저으셨다.
"방금 한 건 요가의 나무 자세 (tree pose) 죠. 요가는 지탱하는 다리에 슬쩍 기대어 쉴 수 있지만, 발레는 달라요. 기대지 말고 스스로 서야 합니다."
네????
무릎 옆에 발 끝을 살짝 '터치'할 뿐, 절대 지탱하는 다리에 체중을 얹어서는 안 된다. 오직 자신의 코어와 내 몸의 만들어내는 수직과 균형의 힘으로 서 내야 한다. 뉴욕의 내 삶과 닮아 있다.
바(Bar)를 잡지 않고 버틸 때, 바닥을 지탱하는 발가락들은 미세하게 떨린다. 열 개의 발가락이 마치 갈퀴처럼 스튜디오 나무바닥을 부여 잡으려고 한다.
선생님이 웃으시며 발가락이 손가락이 된 것 같다고 편편하게 피고 발가락 모두에게 힘을 주셔 균형의 바닥을 만들라고 하셨다. 선생님도 나도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나는 동작에서 무너져 내리고 한참 웃었다.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지하철을 보며 나는 뒤에 벽이 있는지 확인한 뒤 슬그머니 다시 한 발을 들어 올려본다. 모두가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이 도시에서, 파세를 통해 나는 나만의 작은 경계를 만든다.
성취감일까,
혹은 운동이 주는 도파민일까.
확실한 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그 집중 속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