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는 비행기로 5-6시간.
뉴욕만큼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일 년에 한 번 꼭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생각할 시간
재충전할 시간을 주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대 초반에는 술맛을 몰랐다.
과학실 실험실용 에탄올을 옮겨 놓은 듯한 소주
먹기 싫은 밥 억지로 먹은 듯한 포만감을 주는 맥주
아빠가 열정적으로 담그시던 정체모를 과일주가 내포하는 깊은 의미와 풍미도...
몰랐었다.
독립을 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성인으로써 책임져야 할 일들에 짓눌릴 때마다
1) 소주+맥주=폭탄주는 인간 창의력의 극치며
2) 인생의 술친구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복이며
3)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늘수록 내 인생도 무르익어 간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뉴욕에서 소주는 15-20불에 팔리는 고가품이다.
평범한 월급쟁이 인생엔 사치라서 현지에서 저렴한 와인을 배웠다.
그렇게 인연이 돼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미국의 와인 산지 나파밸리(Napa Valley)로 나를 위한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나파밸리는 연중 어느 때나 방문해도 좋다.
화사한 자연경관을 원하면 만물이 회생하는 봄과 여름에
와인 제조과정을 보고 싶다면 수확기인 가을에
요양하듯 조용히 즐기다 가고 싶다면 겨울에 방문하면 된다.
수백 개가 넘는 와이너리(winery)에서 일 년 내내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니
"꼭 이때 가야 한다"라는 목표는 내가 정하면 된다.
또한 수백 개나 되는 와이너리를 몇 주 여행을 통해 둘러보는 것도 불가능하니
"보이는 데로 보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의외로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게 된다.
뉴욕에서 만난 서부 출신 친구들은 밝고 자연스럽게 태닝 된 건강미를 발산한다.
신기하게도 뉴욕은 그들에게도 로망의 대상이다.
뉴욕에서 비행기로 5:30시간 걸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차를 렌트해 나파밸리로 들어갔다.
호텔에 짐을 풀고 최대한 간단히 (핸드폰, 신분증, 신용카드, 소정의 현금) 챙겨 나와 테이스팅(tasting) 할 곳을 찾았다. 숙소 근처에 일렬로 늘어선 와인 테이스팅 룸만 4개, 참 편리했다.
기억에 남는 2곳은 바로:
Trahan과 PureCru Winery
1. Trahan Handcrafted Winery
샵에 들어서서 테이스팅을 하러 왔다고 하니,
중년의 소믈리에 한분이 내게 다가와 작년에 재배한 포도로 제조한 와인 3잔을 한꺼번에 따라 준다. 브랜드 배경 설명과 포도가 재배되는 지역도 지도를 펼쳐 보여주었다. 흥미진진했다.
2. PureCru Napa Valley
젊은 소믈리에 분이 추천해 주신 와인 3잔. 소금으로 간을 해서 로스팅한 견과류와 함께 먹으라고 했다. 잘 어울렸다. 예전에 비해 지역 수확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설명과 나파밸리의 근황도 설명해 주셨다.
맘에 드는 와인이 있었는데 뉴욕에 보급되지 않는다고 해 몇 병 사서 왔다. 바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내 얘기도 하고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나파밸리에는 여러 도시에 공급할 만큼 대량 생산하는 에스테이트(Estate)급 와이너리가 있고 캘리포니아 지역에만 공급하는 부티크 와이너리가 있다.
걷다가 지치면 나파밸리를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차 안에서 펼쳐지는 나파밸리 전경을 바라보며 점심도 주문해서 먹고, 디저트는 물론, 나파에서 제조된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나파에서 출발해서 세인트 헬렌(St.Helen) 지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와인 기차는 왕복 3시간이 걸린다. 가는 길에 몇몇 와이너리에 잠깐 정차하기도 하는데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무료로 테이스팅도 할 수 있고 와이너리를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와인 생산 과정 투어를 해 준다는 ZD Winery 앞에서 내렸다.
1969년 미국 나파 지역이 와인 산지로 개발되던 초창기, 항공 엔지니어였던 노만 디 루주(Norman Deleuze)가 시작했다. 프랑스산 샤도네(Chardonnay)와 피노 노아(Pinot Noir) 같은 고급 와인을 미국 땅에서 생산해 보자는 야심 찬 꿈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후 3대에 걸친 그의 후손들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확한 포도를 깨끗이 씻고, 으깨고, 압축시켜, 발효시키는 모든 공정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곳의 테이스팅 실에서 보이는 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광합성을 하며 포도밭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를 위해 시간이 잠시 멈춰 준거 같았다.
누군가 행복이란 몇 달 몇 년 지속되는 게 아니라 순간(moment)의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내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P.S
나파밸리에는 음주운전 단속이 엄격하다.
경찰이 항상 대기 중이니 음주운전은 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