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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싫은 사람은 안 만나도 된다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by Jaden

20대 마지막 날 내 인생을 돌아봤다. 뉴욕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첫 인터뷰, 첫 인턴십, 첫 직장에 나가던 날 --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많은 이들이 내 결정에 비웃었고 수군거렸지만 10대에 한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운 나로서 망설일 여유가 없었던 날들이었다.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이 길을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갈등과 고뇌로 가득 찼던 내 20대가 뉴욕 타임스퀘어 카운트 다운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10, 9, 8, 7, 6, 5............


지나고 보니 20대에는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믿었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매년 세웠던 신년 목표 중 이룬 게 없더라도 그 나이에 꼭 이루고 싶었던 것 한 가지를 생각해 두었다가 이루고자 노력했었다. 20대와 30대의 교차로에 선 29살 나에게 물어봤었다. 29살 너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 답은 '인간관계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싶다'였다. 길다면 7-8년간의 뉴욕에서 사회생활을 한 후였고 왠지 모르게 30대에는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유치한 투정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취미를 기반으로 하는 동호회가 수천 개가 넘고 소셜 미디어에 가입하면 뉴욕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사 정보를 공짜로 신속하게 받아 볼 수 있어 이벤트 참석자들과 어렵지 않게 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 뉴요커, 재미교포, 재일교포,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 할리우드 영화배우 등.. 주중에는 회사를 마치고 주말에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 나갔다. 만난 지 3개월도 안된 사람들과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 보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300명은 족히 만난 것 같다.


그중 두 명이 생각난다.


27살의 친구:

그녀와 나는 지하철 안에서 만났다. 그녀가 먼저 타고 있었고 막 출발하려는 지하철에 내가 헐레벌떡 올라탔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나와 그녀 중간지점에 서 있는 인도인 남녀 커플이 인도어로 격렬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 깔깔 웃었다. 생소한 인도어 그리고 숨도 고르지 않고 애기를 쏟아내는 그들의 대화를 은연중에 듣고 있던 나와 그녀는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다소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거짓말처럼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와 가끔씩 산책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내 말 한마디를 진지하게 받아주고 내 걱정거리에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주는 그 친구는 베이징 대학을 나왔고 뉴욕으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려 왔다고 했다. 어떤 꿈을 안고 뉴욕에 온 건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친구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내가 도와줄 수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29살의 친구:

친구의 친구 생일에서 우연히 알게 된 29살 A 양은 첫 만남에 다니는 회사 연봉과 보너스가 얼마인지 물었다. 첫 만남이라 당황했지만 독특한 친구라고 여기고 넘겼었다. 그 후 우리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현금 1억 원 정도는 모아두었는지 물었다.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생일 파티를 마치고 헤어진 후 밥 먹자 커피 마시자는 연락을 받았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지만 그녀는 운동을 가야 한다던가 다른 친구가 만나자고 한다던가 등의 이유로 약속 시간이 변경되기 일쑤였고 만남이 취소되는 것도 빈번했다. 그렇다 보니 그녀가 만나자고 하는 제의를 점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퇴근 후 카페에서 만났지만 커피를 마시는 내내 불편했고 밥을 먹게 되면 자신의 밥 값까지 계산해 달라는 요구에 더 불편해졌다. 미국에서 중고등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는 재미교포 A 양과는 자주 만나긴 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꺼려졌다.



한국이든 뉴욕이든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비슷하다.


돈 빌려달라는 친구

자기 힘들 때만 연락하는 친구

돈이든 물건이든 빌려가서 소식 끓기는 친구

내 남자 친구에게 몰래 연락하는 여자인 친구

내 여자 친구에게 몰래 연락하는 남자인 친구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나를 이용하는 친구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친구 등등



왜 어떤 사람과는 한 번의 눈 마주침으로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또 어떤 사람과는 10번 20번을 만나도 불편할까.


29살에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렀다. 내가 변하지 않듯이 그 사람도 변하지 않는다. 위에서 서술한 종류의 사람들이 나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남을 바꾸려는 나의 행동은 오만방자하며, 남이 내 스타일 데로 바뀐다는 기대는 하늘에 올라가 별을 따서 내려오는 것과 동일하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만나면 재밌고 편한 사람을 만나자.

만나서 불편하면 만나지 말자.

피할 수 없다면 불편한 그들과 짧게 만나되 그 사람을 바꾸려는 언행을 삼간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자.


예를 들면:


하나. 가는 사람은 막지 않고 오는 사람도 막지 않는다.

하나. '네 헌담 했다더라'라는 정보를 들고 오는 바로 그 사람을 경계한다.

하나. 면전에 되고 인격 모독하는 친구에게 우아한 모독을 돌려준다


마지막으로,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20살 때 생각했던 30살의 모습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룬 상상 속의 내 모습은 멋있었다. 30대를 시작하며 상상 속의 그렸던 멋있는 나의 모습은 없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29살에 꼭 이루고 싶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렸고,관계에 대한 나의 원칙을 세우고 나니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고 기대된다는 것 -- 또한 이를 이루고자 감행한 어리석고 멍청하고 비효율적이었던 내 노력들은 20살 청춘이라 가능했던 아름다운 고군분투로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것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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