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많아서 소리가 많아서

- 김수영

by UrsusHomo


462CC70D-6D36-45F1-BF9C-F337E5EA82F8_1_201_a.heic 오래된 책은 제본이 갈라지고 활자도 작아 보기가 불편하다. 어쩌다 다시 읽을 땐 2000년대 들어 새로 발간된 책으로 본다. 나에게는 각별하여 낡은 책도 차마 버리지 못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책 중에 무슨 책을 읽어 보자 할까. 오늘, 블로그 만들어놓고 '첫 책'을 뭐로 하나 둘러보니 아, 그렇지. 김수영만 한 게 없다.


책 한 권이 처음 손에 들어오고, 책상 위에 놓이고, 읽고, 쌓이고, 좀 만지작 거리다, 급기야 서가에 꽂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특별히 정보가 필요하거나 저자와 관련된 어떤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곤 여간해서 다시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시집은 가끔 꺼내보곤 하는데 그 또한 잦은 건 아니다.


어려서 만난 책 중 긴 세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꺼내 본 책은 뭘까. 호사가들이 말하길 명작이라 함은 언제 봐도 어제 만들어진 듯 생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김수영이 그렇다. 언제 읽어도 읽히는 책, 김수영이 그렇다. 어느 상황에서 읽어도 읽는 그 시간에 딱 맞는 문장을 만난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김수영에 관한 평론이나 논문도 되도록이면 놓치지 않고 보려고 했다. 지금에야 그런 쪽에는 아예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런 책도 다 버렸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김수영을 읽을까? 어린 시절 내가 속했던 문화에선 김수영이 모든 책들의 상수였다.


그 시절 마셔댄 술이 장강을 이룰 때 '시여 침을 뱉어라'만큼 질긴 안주도 없었다. 씹고 또 씹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소화했다. '이자벨 비숍 여사와 연애'에 골머리를 앓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며 꾸역꾸역 나이를 먹고 뿔뿔이 흩어져가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에 들어앉을 때까지, 우리 세대의 한 시절이 흘러갔다.


책 하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것은 단지 그이의 작품으로만 만들어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이가 살았던 삶과 살았던 시대가 어느 지점에서 나와 만나 만들어진 독자적인 관계이니 나와 그는 연애를 해온 셈이다.


그대들은 누구와 함께 그 긴 세월을 건너오셨나. 오늘, 김수영을 다시 본다. 오랜만이다. 책을 양 손바닥 사이에 끼고 좌우로 뉘어가며 두 엄지로 책배를 훑어간다. 한 페이지를 연다. 어디여도 좋다. 오늘은 '의자'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미제 자기 스탠드가 울린다


은유가 아니라 상징이 아니라 나에게는 정말 의자가 너무 많아서 근래 들어 내가 하는 일이란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오늘은 또 무엇을 버려볼까'를 생각한다. 비우고 비워도 집은 늘 꽉 차있다. 문장은 숨 넘어가듯 숨 가쁘게 이어지다 결국 그 집에 이른다. 난삽한 집.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난삽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 가고 있다

-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1968)


소리가 너무 많아 소리만 남은 난삽한 세상에서 김수영을 읽는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내 집 앞부터 한번 더 쓸고 깨끗하게 하는 것, 이제야 그것이 세상 사는 지혜라는 걸 안다. 시끄러운 소리들에 소리 하나 더 보태봐야 이미 바닥이 뚫려버린 동굴 속에서 그 소리의 메아리나 가 닿을 곳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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