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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민주주의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by UrsusHomo


20201213_230919.png?type=w800 위기의 민주주의 The Edge of Democracy, 페트라 코스타, 121min, 브라질, 2019

The Edge of Democracy

크게 화제가 됐던 영화다. 지난 선거 때 정치인 몇이 입에 올리며 대중적으로도 꽤 알려졌는데 그만큼 다큐의 의미는 정파적으로 소비됐다. 요는 그렇다. 보수의 준동이 시작됐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 감독이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시각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포착한 '위기의 순간'은 훨씬 더 폭넓고 복잡하다.


다큐는 2018년 4월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룰라 전 대통령은 구속되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된 상태. 혼란의 정점이다. 군부독재를 경험한 나라에서 정치적 혼란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시기의 혼란이 이전 시대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이라는 데 있다.


감독이 '브라질 사회 구조의 어떤 부분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한 시점은 2013년. 그해 6월,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시위는 SNS를 통해 큰 시위로 번져가기 시작한다. 시위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지우마 대통령의 인기는 최정점이었다. 그러나 3주간의 시위 결과 65%에 달하던 지지율은 30% 대까지 떨어진다. 정치인들의 부패 스캔들이 이어진다. 룰라가 건축업자로부터 아파트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지우마 대통령은 룰라를 정무장관에 임명한다. 야당은 행정부 각료의 불체포권을 주려는 증거라며 반발한다. 급기야 대통령의 탄핵이 추진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국민은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로 딱 갈라졌다.


영화 중반,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이라고 봤던 장면이 등장한다.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의회 앞 잔디마당. 시위를 앞두고 경찰들이 잔디마당의 중앙에 가림막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저쪽은 탄핵 찬성 집회, 이쪽은 탄핵반대 집회. 우파는 오른쪽, 좌파는 왼쪽. 시위가 시작된다. 양립할 수 없는 두 편의 싸움. 감독은 이 풍경을 두고 '그 밤에 브라질의 얼굴이 바뀌었다'고 표현한다.


지극히 익숙한 상황. 저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내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가 모두 마찬가지다. 확실히 세상은 뭔가 변했다. 정치가 작동되는 과정과 방식에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진영에 갇힌 쪽은 이 변화를 무시하고 진영을 벗어난 이들은 이 변화를 보지만 힘이 없다. 힘은 이제 도덕이나 정의나 진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힘은 내 편, 혹은 네 편에서만 나온다. 정치는 스포츠가 됐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힘이 센 쪽이 이긴다.


만인이 정치적 의견을 말하고, 만인이 만인에게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시대. 조회수 장사꾼들은 음모론을 팔고 네 편 혹은 내 편의 쌈짓돈들이 그들을 먹여 살린다. 정치인들은 그 장사꾼들 앞에 가 머리를 조아린다. 인기 많은 정치인에 줄을 서고 팬덤이 공고하면 그는 옳다. 수많은 내 편의 커뮤니티가 흘러 다닌다. 커뮤니티 안에서시민들은 전사가 된다. 내 편이 보내는 응원과 분노의 확인, 철 지난 이념으로 먹고사는 수많은 광대들, 그 거대한 도가니 속에서 내 편 혹은 네 편은 오늘도 자가발전 중이다. 아둔한 정치는 그 힘에 볼모 잡히고 사악한 정치는 그 힘을 제 권력의 교두보로 삼는다.


모두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 그래도 어떻든 세상은 더 나아지는 쪽으로 진보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 방법이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고 그 방법을 내 세대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떤 정치 파워게임보다 더 위험한 건 '거리로 나온 민주주의'일지로 모른다는 것만을 겨우 눈치채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거리의 시민에게 구걸하는 정치인이다. 포퓰리스트, 그가 민주주의의 적이다. 내 투표에 남은 마지막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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