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금요일마다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굣길을 재촉했다.
“엄마, 오늘은 어디 가?”
코로나에 잠식당했던 시절, 그래도 그리 팍팍하지 않게 기억되는건 이렇게 좋은 자연을 잘 즐겼던 덕분인것 같다. 사람들 피해서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 그동안 몰랐던 곳에 가보자 했던 게 다 추억으로 쌓였다.
마스크 끼고 간식도 다 집에서 챙겨서 보냉백에 담아 중간중간 차 안에서 우리끼리 먹었다. 지금이야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자리 차지하고 앉아 음식 먹는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코로나 시국에선 무엇하나 마음 편한 일이 없었다.
1. 마장호수
파주는 정말 넓다. 같은 파주라고 해도 마장호수까지는 우리집에선 거의 한시간은 걸린다. 고양시와 길 하나 사이에 둔 파주 최남단에 살고 있으니 파주 어딜가나 대체로 멀다. 물론 파주 최남단이라고 해도 서울보다 개성이 가깝고 한강 건너는 북녘 땅이다. 파주가 민통선 인근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라 헌혈도 맘대로 못하는 지역이라는 걸 이사와서 처음 알았다. 아이 학교 가정통신문을 보고.
2. 임진각
꽤 자주 가는 임진각이지만 아직도 못가본 곳이 많은 드넓은 곳.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는 연못도 있고 망향의 메시지가 가득한 리본들도 있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도 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무궁화 동산도 있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파주평야도 장관이다.
3. 화석정
시원하게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화석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동네 이름이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파평 윤씨의 고장이기도 해서 윤씨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본 곳. 발치 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아주 일품이다. 저 멀리 북한 땅이 보인다. 정말 더운 여름날에 갔는데 깜짝 놀랄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더워 죽겠는 날씨에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어린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끼고 있네!
4. 장산전망대
전부터 아이가 가고 싶어한 곳은 장단콩마을이다. 이곳은 민통선 안에 있어서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화를 해보니 코로나 때문인지 거주민 외 민간인 출입 자체를 통제한다고 해서 급히 찾아본 곳이 바로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장산전망대였다. 차박이나 노지캠핑 좀 하는 사람들은 많이들 안다는 곳. 네비를 켜고 갔는데 시골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기계는 도착했다고 하는데 길은 없고 그곳 주민분이 손글씨로 쓰신듯한 팻말엔 '여기 전망대 아니고 길도 없으니까 후진해서 돌아나가라'고. 전화기를 보니 웬일로 인터넷까지 끊겨서 순간 애들 데리고 월북한 줄 알았다!
어찌저찌 조금 큰 길로 나와서 다시 검색을 해서 주차장 비스무리한 곳에 차를 대고 한 300m쯤 평탄하고 한적한 산길을 걸어들어갔다. 너무 한적해서 멧돼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산길.
곳곳에 위장막 뒤집어 쓴 군사시설 몇 개를 지나서 뭐가 나오긴 하는걸까 하는 찰나에 짜잔! 발 밑에 촤라락 펼쳐지는 임진강 풍경이란! 안개가 없으면 건너편에 대성동 태극기랑 북한 인공기, 개성공단까지 보인다고 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지금어디게?? 했더니 하도 북한땅 보이는 데를 찾아다녀서 누가 보면 실향민인 줄 알겠다고 농담한다. 그러네 정말? 한참 깔깔 웃었다.
5. 보광사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 온 산 하나를 품을 정도로 꽤 크고 산책 삼아 오르내리기 좋은 위치에 있다. 여름엔 절 초입의 계곡에서 물놀이 하기 좋다고 하니 다음 여름을 기약해 보기로.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복수를 위해 혜정이의 예비 시어머니를 만나던 그 사찰.
6. 오산리기도원
파주가 북쪽이긴 한게 서울에서 벚꽃 다 질 때쯤 여긴 그제야 벚꽃 피크다. 파주에 이사온 후로 봄마다 벚꽃을 보러 가는 곳. 꽃구경에 웬 기도원이냐 하겠지만, 여긴 종교를 떠나 그저 벚꽃만 감상하기에도 충분히 좋다. 어느해 봄이었나 제주에서 벚꽃을 보고 경주에 가서 또 벚꽃을 보고, 서울에서 벚꽃을 본 다음 마지막으로 파주에서 벚꽃을 즐겼다. 파주에선 4월 중순 쯤 벚꽃이 피크였으니까 제주와는 대략 보름 정도 차이 났던 것 같다. 매해 봄 우리 식구의 벚꽃 구경 명소.
7. 오두산 통일전망대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헤이리 가기 전에 왼편으로 높은 산위에 태극기가 휘날리는게 보인다. 여기가 바로 오두산.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합쳐져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이다. 강 건너 건물들 보이는 곳이 북한땅. 이 물길이 남북 경계선이다.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자유로 표지판에 평양, 개성 적혀있는 게 신기했는데 북한이 정말 가깝긴 가깝다. 돈 내고 전망대 들어가봤던 아이 말론 강 건너 이북 땅 식당 간판도 보인다고 한다.
한겨울이면 강이 꽁꽁 얼고 유빙이 떠다녀 흡사 아이슬란드의 요쿨살론과도 같다고, 조금 억지스럽지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한 생각이 든다.
8. 법원읍 해바라기마을
집집마다 거리마다 꽃을 예쁘게 가꾸시는 주민분들이 직접 해바라기 밭을 일구셨다고 한다. 지나치게 넓지 않아서 아이들 데리고 꽃구경 하기 딱 좋았다. 파주는 어딜가나 군부대가 많아서 대체 내가 지금 어딨나 싶을 때가 많은데 여기도 군부대 하나 딱 지나서 코너 도니 갑자기 해바라기 세상이!
참고로 법원 읍내에 오랜 맛집이 꽤 많다. 특히 짬뽕과 탕수육이 맛있는 북경반점과 시장 골목 안에 옛날식으로 통닭 튀겨내는 삼성통닭…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호불호 없을 만한 노포들.
9. 파주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 전투에서 전사한 영국군들을 추모하고자 건립된 기념비. 설마리 전투는 1951년 4월 22일~25일 파주 적성면 감악산 부근 임진강 하류에서 벌어진 전투다.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중공군이 임진강 지역을 공격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영국군이 필사의 방어로 버텨준 덕분에 후에 유엔군이 수도 서울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