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살이의 시작

경기도 파주시

by HeyHej

자, 이제 TV를 켜볼까?


매일 오전 11시, '오늘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숫자' 브리핑이 속보로 나오는 시각이다.


두 자리, 세 자리를 가뿐히 넘기더니 어느새부턴가 눈덩이처럼 불어 가는 숫자에 무감각해졌다. 2020년 봄 즈음이었다. 매일 그 시각 우리는 식탁에 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하거나 한참 집안 이곳저곳을 어질러가며 놀았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리고 또 누군가는 우는 아이를 달래고 돌아서면 코 앞에 다가오는 끼니에 맞춰 음식을 만들고 어질러진 집안을 치웠다. 마지막 누군가는 바로 '나'.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없었다.


작은 아이는 갓 돌을 넘긴 아기였다. 얼굴에 맞는 마스크를 찾기도 힘들어 아예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 감금됐다. 큰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며칠 등원 하나 싶더니 기약 없는 '가정보육'의 굴레에 빠져들고 말았다. 남편은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재택근무도 허락되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홀로 말 안 통하는 어린아이들을 끼고 있으려니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코로나에 걸리는 게 낫겠다'는 주책맞은 생각을 내내 하며 지냈다.


처음 맞닥뜨리는 팬데믹의 공포도 무서웠지만 손바닥만 한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이 불쌍했다. 쓰레기 버리러 잠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비닐장갑에 마스크, 손소독제까지 꼼꼼히 뿌리고 행여 누군가 마주칠세라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파트를 떠나자!


1.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 -> 서울을 벗어날 것

2. 코로나에 걸려 집 안에 갇히는 경우를 대비해서 마당이 있는 집으로 가야겠다 -> 마당이 있는 주택이어야 할 것


아파트 살이를 접어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크게 이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결심이 설 때까지 숙고하지만 일단 마음이 굳으면 결정은 빠르다. 남편을 설득해서 서울의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집을 보러 다니기도 어렵고 매물도 구하기 힘들었지만 사람의 인연처럼 집도 연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타이밍에 맞게 마침맞은 집이 구해졌다.


2021년 2월 마지막 주,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극적으로 이사를 마쳤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그렇게 살게 됐다, 파주라는 곳에. 계획처럼 작은 마당이 딸린 주택에서.


다만, 파주라는 선택지는 여러 후보지 중에 가장 후순위였다. 남편의 출퇴근 동선을 고려해서 부천, 일산 등은 고려 대상이었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파주는 '서울보다 북한이 더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자유로 진출입로가 가까이 있고 이 동네는 파주 중에서는 가장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 안심은 되었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이 마음은 또 뭐람?!


주위에 아는 이라곤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서 막막한 생활이 시작됐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에 가려고 해도 네비를 켜지 않고는 어디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지만 별 수 있나, 적응해야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은 건 큰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도 동네도 학교도 친구도 선생님도 모두 '처음' 투성이.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아이라 한꺼번에 너무 큰 변화를 준 것이 한편으론 미안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은 아닌가 반성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 변화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나는 믿고 또 믿었다.


다행히 아이 학교는 규모가 작아서 집합 제한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다녔을 아파트 단지의 학교는 거의 등교를 못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이는 마스크를 끼고 개인 칸막이 쳐진 급식실에서 밥을 먹으며 내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생수가 적어서인지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도 코로나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고, 가끔 개연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친구가 있어서 등교가 하루 이틀 중지된 적은 있었다.


이사 오던 즈음 뒷마당에 핀 매화


낯선 곳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창밖으로 자연스레 보이던 눈앞에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대신 텅 빈 하늘이 펼쳐졌다. 밤낮으로 들려오던 사람들 소리 대신 새와 풀벌레 소리가 가득 찼다. 아파트에 살 땐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익숙했는데 이사를 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쪽으로 해가 떠서 저쪽으로 지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풍경이 오히려 새로웠다. 새로운 환경에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가 싶었지만 그건 마치 장기여행자의 마음가짐과도 같았다. 날마다 에어비엔비에서 눈 뜨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뜨내기의 하루하루.


그래, 기왕 낯선 곳에 사는 김에 우리 진짜 여행처럼 살아보자. 시간이 날 때마다 파주 구석구석 여행해 보는 거야! 지금 아니면 우리가 언제 또 파주 곳곳을 누벼보겠어??


그렇게 우리의 '금요드라이브'가 시작됐다. 거의 매주 금요일, 큰 아이 학교가 끝나면 주말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 뒷자리에 아이들을 태우고 근교 드라이브를 다녔다. 날 좋고 별일 없으면 떠나는, 우리들의 '금요드라이브'.


어떤 날은 마장호수에, 어떤 날은 헤이리에, 어떤 날은 문산 유채꽃밭에, 또 어떤 날은 임진각에. 그렇게 곳곳을 쏘다녔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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