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말, 130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 중국의 만주, 사할린 등 해외로 강제로 끌려갔다. 그 가운데 가장 참혹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 ‘남양군도'. 남양군도는 괌, 사이판, 티니안, 마셜제도, 팔라우 등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일대의 섬들을 가리킨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4년부터 일본이 점령하던 지역이다. 1941년에는 5,800여 명이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로 보내졌다. 정부 차원의 공식 확인에 의한 숫자니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1942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8월까지는 더 많은 사람이 강제 동원 됐을 것으로 추정만 될 뿐 정확한 수치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해외 농업 이민의 감언이설에 강제성이 더해져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청년들이 송출(送出) 됐다. 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실어 보낸 건 식민지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척식회사(동양척식회사, 남양척식회사 등)였다. 전쟁이 절정에 치달으면서 남양군도가 일제와 미군의 격전장이 되었다. 일제는 전쟁 기지와 비행장건설 현장이나 광산, 사탕수수 농장에 조선인 노동력을 동원하고 이들을 착취했다.
남양군도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60% 정도는 전쟁 중에 배고픔과 학대, 가학적인 노동 등으로 사망했고 일부는 포로로 미군 측에 넘겨졌다. 일부는 귀환하지 못하고 현지에 남기도 했는데 이 영향으로 북마리아나 제도 티니안 섬 주민의 약 40% 정도가 조선인의 핏줄이라고 한다.
충남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살던 한 청년이 지금의 사이판쯤으로 추정되는 낯선 섬나라에 가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갓 태어난 아들과 처, 부모, 형제를 고향집에 남겨두고 온 터였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살아서 고향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청년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나무판자를 덧대 겨우 만든 엉성한 조각배에 몸을 실었다. 평생을 보고 자란 곳이 바다였지만 잔잔한 서해 앞바다와 거친 태평양의 망망대해는 천지차이였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바다에서 얼마를 떠돌았을까 구사일생 미군 함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조선인 포로가 되어 이번엔 하와이로 끌려갔다.
몇몇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하와이의 조선인포로들은 페인트로 'POW(Prisoner of War, 전쟁포로)'라고 적힌 카키색 군복을 입었다.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비교적 불편함 없이 의식주를 제공받고 간단한 노동을 하며 임금을 받았다고 하니 비록 포로 신분이지만 남양군도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역만리 바다를 거슬러 청년은 고향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모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양군도로 끌려간 이 중에 성하게 돌아온 경우도 별로 없을뿐더러 실제로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뼛가루까지 받아와 묫자리 만들어 장례까지 치르고 난 후였으니 귀신이 살아 돌아왔나 생각했을 법도 하다.
제대로 인력 관리도 안되고 시신 수습도 엉터리로 이뤄진 데다가 청년은 행방불명되어 미군 손에 들어갔는지 알 길 없던 일본인들이 그리 엉망으로 처리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몇 번을 들었지만 전설 같기만 한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극적으로 귀환을 했지만 강제 노역의 후유증으로 내내 병석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 엄마가 아빠를 만나 결혼하기도 전이니 엄마도 시아버지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셈이다. 생전의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아마도 ‘새마을정신’이 인간의 형상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아빠인데 아빠의 이 '허면 된다('하면 된다'의 충청도 버전이랄까)' 정신은 이미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였던 것이다. 현실에 결코 안주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태평양 망망대해에 띄운 나무판자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 젊은 아내 그리고 재롱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아들의 존재. 그리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니었을까.
손주라면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딸인 나에게도 이렇게까지 다정하셨을까 싶은 ‘손주바보’ 할아버지인 아빠를 보면, 나의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을까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