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탄생

인천 <신신예식장>

by HeyHej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시인 <부부>



결혼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결혼을 앞두고 우연히 이 시를 접했다. 결혼 생활이란 두 사람이 긴 상을 맞잡고 문지방을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 살아보니 정말로 그렇다.

길다면 길고 아직 짧다면 짧은 나의 결혼 생활, 올해로 13년째. 그래도 10년은 지났으니 초보의 때는 벗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13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름의 굴곡도 있었다. 20년, 30년,... 50년이라면 어떨까?


어떻게 50년을 같이 살 수가 있지? 결혼 50년이면 당연히 호호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에나 서로에게 너그럽고 인자할 것만 같다. 그런데, 엄마 아빠를 보니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경로 우대를 받을 만큼 적지 않은 연세이시긴 하지만 아직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고 또 무엇보다 매번 같은 일에 투닥투닥하시는 걸 보면. 음. 시간이 흘러도 관계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그저 계속 그대로인 것만 같다.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너무 많으니까 오빠가 선을 보기만 하면 상대 쪽에서 그냥 퇴짜를 놓는 거야. 하긴 동생이 일곱인데 누가 시집오려고 하겠니? 하나라도 빨리 결혼하라는 말에 그냥 선 보고 시집간 거야.”


엄마는 왜 결혼을 했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아니... 아빠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냐고 물은 건데.


“그땐 그냥 집에서 가라고 하면 가는 거지 뭐. 그래서 생각한 건데, 나는 정말 착했던 것 같아. 집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니까. 이만하면 착하지 않니?”


결혼과 연애 문화가 지금 같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엄마는 정말로 엄마의 엄마와 아빠가 하란대로 시집을 갔다. 어릴 적에 ‘시집간다’는 말이 뭔지를 잘 몰랐던 엄마는 한 집에 사는 할머니와 엄마가 ‘시집을 갔다가 온 사람들’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이미 시집을 와서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 시집을 가면 그렇게 남의 집 사람이 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줄은 몰랐단다.


엄마는 아폴로 눈병을 한 번 크게 앓고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안경을 껴서인지 선자리에서 연이 닿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시엔 안경을 낀다는 것도 신체적 결함의 하나라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여자’가 안경이라니. 특히 어르신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선 자리에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의 직장 선배가 중매를 섰단다. 선배의 아내 분이 이천 출신인데 고향 마을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집 딸이 마침 인천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도 엇비슷하고 가까이 살고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며. 그게 엄마였다. 선은 곧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사자뿐 아니라 집안 어른이 반드시 같이 나가야 했다. 그래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함께 나갔는데, 그때 아빠는 시골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럼 아빠는 누구랑 나갔을까?


“응, 아빠는 그 선배 장모님이랑 나갔어.”


“엥? 내 부모도 아니고, 선배 부모도 아니고, 장모님?? 원래 알던 사이야?“


”알긴 뭘 알아, 그날 처음 뵈었지.“


세상에. 생판 모르는 어르신과 함께하는 선 자리라니. 지금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얘기다.




1976년 10월 31일.

인천에서 그 당시 가장 세련되어 인기 있었다는 <신신예식장>에서 아빠와 엄마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신랑 측 신부 측 친구들과 자유공원에 가서 결혼식 뒤풀이를 했다. 손바닥만 한 단칸방을 신혼집으로 얻어 겨우 시작한 결혼 생활에 그래도 제일 핫했던 결혼식장을 골랐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뭐랄까, 귀엽달까.

스물네 살의 아가씨와 스물여섯 살의 청년.


손에 쥔 거라곤 서로의 손뿐이던, 아직 어리고 젊던 두 사람은 이내 첫아기를 품에 안고 내 집을 마련하고 둘째도 낳고 학교를 보내고 또 졸업시키고, 30년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자식을 결혼시키고 손주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피를 나눈 부모 형제 지간도 아닌 남남끼리 이렇게 한 지붕 아래 오래 살 수 있다니. 결혼을 하고 보니 새삼 신기한 일이다. 자식이야 당연히 내가 배 아파 낳았으니 한 몸 같이 느껴지지만, 배우자는 다르다. 피를 나눈 어떤 식구보다도 인생을 가장 오래 함께 살게 될 사람이라니. 어쩌면 배우자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정해진 운명의 사람인 걸까. 흔히 말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끈 같은 게 연결 돼 있어서 언젠가는 실타래를 타고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인 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시진핑도 오고 트럼프도 오고 뭐, 우리나라 대통령도 오고. 아주 세계적인 행사다 그냥.”


올해 10월 31일엔 APEC 정상회담 때문에 세계의 유력 인사들이 경주를 찾는다. 심지어 우리 집은 행사장에서 멀지 않은 곳. 결혼기념일 클래스가 상상초월이다!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고 송도유원지나 자유공원에서 피로연을 겸한 뒤풀이를 하는게 70년대 인천 지역의 결혼식 루틴이었다고 한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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