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여름여행
처음 타는 SRT는
여행 기분을 한껏 올려주었다.
짧은 일정에 귀한 여름 여행인만큼
이 시간을 알차게 쓰자며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몇 번이고 하고 싶은 일들을 체크했다.
부산에 도착한 우리가 호텔에 짐을 맡기고
곧바로 달려간 곳은 바로 국제시장.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
추억의 식당으로 향했다.
늘 한결같은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시골 할머니 집에라도 온 것처럼
얼마나 반갑던지.
더운 여름날의 점심시간,
한적한 식당은 오히려 쾌적해서
천천히 식사를 즐기며
추억을 곱씹기에 더없이 좋았다.
다음은 고양이 지킴이가 있는 팥빙수 골목.
일정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추억을 돋게 하는 파란 팥빙수 기계 앞에서
부드러운 미소로 손짓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발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한여름의 한가운데인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신비스러운 골목,
우리는 옛날 팥빙수를 주문했고
할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팥빙수를 만드셨다.
이곳에서 24년간 장사를 해 오셨다는 할머니는
팥빙수를 먹는 동안 이러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골목에서 함께 장사하셨던 분들은 다 떠나시고
지금은 할머니 가게가 가장 오래된 곳이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옛 추억을 찾아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이 아직까지 많다고.
우리는 팥빙수의 맛보다
팥빙수를 만드는 과정과
정겨운 부산 사투리로 들려주는
할머니의 오래된 이야기가 좋아
한참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골목길을 걷는 것도
변함없는 풍경도
모든 것들이 즐거운 오후,
살짝 들뜬 마음으로 부산 타워로 향했지만
가는 길에 우리는 또 다른 샛길을 만났다.
이곳은 부산 근현대역사 역사관.
도서관으로 꾸며진 별관엔
부산에 관련된 도서들이 가득이라
잠시 쉬어가며 책을 보기 좋았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오는 바로 옆에 본관이 있었다)
본관에서는 1970년부터 1990년대의
생생한 부산을 담은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또 예정에 없던
사진전에 푹 빠져 1차 일정은
그곳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한 다음
2차 일정에 들어갔다.
2차 일정의 시작은 충무김밥.
추억의 충무김밥 집은
가게의 겉모습은 그대로였으나
아쉽게도 기억 속의 그 맛은 아니었다.
(결국 아쉬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생을 위해
나는 부산에서의 마지막 한 끼를
충무김밥으로 양보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원했던 건 밤바다 하나라
나머지 스케줄은 온전히 동생에게 맡기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로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꼭 가고 싶다던 고갈비집부터.
그렇다고 맛집을 찾아간 것은 아니고
고갈비 골목을 찾아 문이 연 곳이 있으면
한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골목에서
유일하게 문이 열려있던
[남마담]이라는 가게를 발견했다.
2층 방으로 올라가도 되냐고 물으니
2층은 너무 더워 술을 마실 수 없다고 하셨다.
대신 구경은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릴감 넘치는 급경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천장이 아주 낮은 2층 방에는
4인용 테이블이 3개 놓여있었다.
커다란 창문이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의 방 창문과 비슷하다며
얼마나 신나하던지.
거기에 세월이 느껴지는
타일 테이블에도 벽의 낙서에도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는 2층 구경을 마친 후
1층에 자리를 잡았다.
(1층에는 2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2층은 더워서 앉아 있을 수 없다길래
1층은 시원한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더위마저도
레트로 감각의 일부라 생각하니
것도 나름 운치 있고 괜찮았다.
술은 부산에서만 판매한다는 대선 소주를 골랐다.
소주 잔도 부산 감성 가득.
이곳의 메뉴는 딱 2개,
고갈비와 계란말이.
우리는 고갈비를 주문했고
고갈비는 가게 바깥쪽 길가에 굽는 곳이 있었는데
것도 아주 재미났다.
가게 안쪽에도 작은 주방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는 계란말이를 만든 것 같다.
이곳의 고갈비는 다른 말로 고등어구이?
고갈비는 밥 한공 뚝딱할 만큼
아주 적당히 알맞게 잘 구워져 나왔다.
얼핏 보기엔 매울 것 같은 양념장은
의외로 맵지 않았으며 묘한 깔끔함으로
고등어구이의 맛을 한층 더 살려 주었다.
사실 술이고 고갈비고 그런 것보다
분위기 그 자체가 좋았고
주인아주머니의 정겨움이 좋았다.
아마도 이 골목의 찐 모습은
어둠이 뒤덮은 후가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느낌을
살짝 맛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