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교토후[京都府]에서 주관하는 이벤트에 다녀왔다. 도쿄에서 교토로 오기 전 이주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여러 정보 중 이주[移住]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현지 투어 이벤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토라고 하면 보통 우리가 여행으로 즐기는 교토시[京都市]를 생각하는데, 이주상담센터에서 이주를 지원하는 곳은 교토시를 제외한 교토후의 다른 지역이 주를 이룬다. 오늘 다녀온 곳은 교토의 남부지역으로 키즈강[木津川] 캠핑장이 유명한 카사기초[笠置町]와 오차[お茶]와 버섯의 산지로 유명한 미나미야마시로[南山城].
집합장소는 키즈역[木津駅],나라[奈良]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 살짝 여행 기분을 내며 창밖 풍경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키즈역에 도착했다. 참가 인원은 대략 10명 정도, 키즈역에서부터는 이주상담센터에서 준비한 미니버스를 타고 마을로 이동했다.
처음 도착한 카사기초는 일본 전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적은 곳이라고 한다. 현 인구가 1000명이라며 이주하여 1001번째 주민이 되지 않겠냐는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 말씀으로는 시집오실 때는 이 거리가 아주 번화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텅 빈 마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빈 집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이번 이벤트는 아키야방크[空き家バンク] 빈집은행이라는 시스템 소개도 있어 이키야방크에 나온 매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키야방크[空き家バンク]는 시에서 운영하는 빈집을 저렴한 가격으로 렌트해 주거나 판매를 지원해 주는 시스템으로 계약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 간의 계약이지만 시의 담당 직원이 서포트를 한다.
아키야방크에 등록된 매물을 보고 고른 후 신청서를 내면 심사가 이루어진다. 물론 입주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실제 거주 목적이지/거주 기간/관리 등)이 맞아야 하며 가격이 일반 매물에 비해 저렴한 대신 내부 수리는 빌리는 사람이 해야 한다. 카사기초에서 둘러본 집은 낡은 부분들이 꽤 눈에 띄었지만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어 수리 없이 입주도 가능해 보였다. 집 앞의 넓은 벌판은 잡초들이 무성해 살게 되면 직접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집 내부보다 외부 관리가 더 힘들어 보였다. 무엇보다 집 근처 빈 집들이 많아 보여 만약 혼자 산다면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오싹한 느낌도 들었다.
참, 이 마을은 편의점이 하나 있고 마트는 없다고 했다. 이동식 마트가 일주일에 한번 온다고 하니, 이곳은 완전한 리틀 포르스트의 세계라 보면 될 거 같다. 아, 이곳의 인구가 1000명인데 캠프장을 찾은 사람이 1000명을 넘길 때가 있다며 안내하시는 분이 웃으며 알려주셨다.
빈집을 둘러본 후에는 마을 회관 같은 곳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실제 이주한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꽤 흥미로웠다. 도시에서 이주한 지 10년 넘는 분부터 최근 이주한 젊은 분까지, 다들 너무 밝고 지역 사랑이 몽글몽글해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가자들 모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엔 실제 집의 가격이나 일에 대한 부분도 있었는데, 근처의 대도시 오사카나 미에켄[三重県]까지 1시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해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고, 작은 재능으로 마을에서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예전에 시간은행이라고 마을에서 이웃을 도와주면 시간 저금이 가능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저금된 시간만큼 이웃에게 부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고 했는데 비슷한 느낌이다. 돈으로 받기도 하지만 채소나 과일 등 돈이 아닌 것들로 지불하기도 한다고 하니 시골생활만의 묘미라면 묘미인 것 같다.
이벤트의 점심은 도시락. 이주 후 식당을 운영하는 가게에서 파는 도시락이라고 한다. 소박하고 단정한 도시락이 모두와 함께 먹으니 얼마나 꿀맛이던지.
이 마을은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기는 다리가 있다. 사진에서 중간을 가로지른 가늘고 긴 선처럼 보이는 게 그 다리인데, 보통 일 년에 5번 정도는 물에 잠긴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10번 잠겼다고) 저 다리 너머에도 몇몇 가구가 모여있는데 오늘 그곳에 사시는 분이 걸어서 오셨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비가 많이 오면 모두들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비가 와 다리가 잠기는 날은 다리에 물이 자작자작할 때까지 버스가 다닌다고 하셨다. 대신 물이 빠지는 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고립이지만 익숙한 생활 고립이라 무섭거나 그러진 않다 하셨다. 신기했다. 맞은편에 앉으신 역사를 좋아하신다는 분 이야기로는 오사카성을 지을 때 이곳 나무들을 다 베어 키즈강을 이용해 오사카로 다 보냈다고 한다. 그때 이쪽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산이 되었고 그것이 이 지역 침수의 원인이라고 한다. 모두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신기해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푹 빠져있다 보니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다시 이동 시간이 되었다. 이번엔 미나미야마시로.
이곳에서는 오래되고 거대한 아키야방크의 매물을 접했다. 멋진 2층 집이었는데 10명은 살아도 될 만큼 엄청 컸고, 집 안에 아직 남아있는 물건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본검부터 유리상자에 든 전통 인형, 벽에 걸린 사진, 레트로풍의 그릇장, 박제된 새, 피아노까지. 여기서도 혼자 사는 상상을 잠시 했는데 섬뜩했다.
아키야방크의 매물도 타이밍이라며 집과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일반 매물들은 부동산을 찾는 것보다 먼저 이곳 사람들과 가까워진 다음 소개를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팁도 주셨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시골 삶에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건 인간관계. 또 하나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이곳은 매장이 아직 이루어지고 있어 이곳에 사는 이유가 사후 화장이 아닌 흙에 묻히고 싶어서라는 분도 계신다고 한다.
다음은 또 장소를 이동해 소소한 교류회가 있었다. 미나미야마시로는 센차[煎茶]가 유명하지만 요즘은 워낙 맛차 붐이라 맛차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간식으로 맛차다이후쿠와 센차를 내어주셨다.
이주하신 분들이 굉장히 에너지가 넘친다는 미나미야마시로에는 재미난 작은 모임들도 많고 교류가 아주 활발했다. 처음 갔던 가시키초보다는 교토에서 멀지만 전철역이 두 개 있어 교통은 조금 더 편리해 보였고 인구도 더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이곳에서 큰 도시로 나가는 건 교토보다는 나라[奈良]나 미에켄[三重県]이 더 친근했다. 지역은 교토후[京都府]지만 생활권은 오히려 나라나 미에켄. 교토로 출퇴근하는 사람 이야기가 없는 게 신기하다.
여담 하나, 요즘 일본에 곰이 많이 나오는 문제로 이곳은 어떠냐고 누군가 여쭤보니 곰 같은 것을 본 거는 같지만 확실히 곰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사슴이 많은데 사슴 엉덩이가 곰으로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며 웃으셨다. 이쪽도 나라처럼 사슴이 많은데 나라 공원의 사슴은 신의 사슴이지만 이쪽 사슴은 그냥 사슴이라며 또 웃으셨다. 우리도 같이 웃었다.
웃다 보니 어느새 이벤트도 마지막에 다다랐다. 마지막 코스는 지역 상품을 판매하는 직판장 쇼핑. 이것은 오차와 버섯이 유명한 곳이니까, 나도 얼른 에코백에 담았다. 귀여운 당근은 더불어.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당근은 효고산[兵庫産]이었다는)
10시에 시작한 투어는 4시에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운 좋게 쾌속을 탈 수 있었다. 궁금한 시골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이주가 아니더라도 마을 이벤트에 또 놀러 오라고 불러주신 따뜻한 마음들을 곱씹으며 아라시야마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감사하게 느껴지는 역 앞 편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