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욕망

부부사랑만큼 좋은 건 없는데....

by 동천 김병철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잡다한 생활용품을 담고 있던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안전사고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지금 안전사고 위험이 가장 많이 노출된 건축 현장으로 가기 위해 아내가 챙겨준 이부자리를 비롯하여 외출복 운동복 속옷 운동화 구두 등을 하나둘씩 가방에 넣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 나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고 쓴웃음을 지어본다. 우리 애들은 내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자식들은 나이 들어 쓸데없는데 간다고 난리다. 누가 보더라도 ‘이제는 푹 쉬면서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며 아내랑 즐기는 삶을 살아가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건축 현장에 일하러 집을 나선다는 건 가만히 생각해 봐도 왠지 씁쓸하다. 먹고살기 위해 그런 건 아니지만 행여 날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내 처지를 가엽게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엔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다소 걱정도 되는 건 사실이다. 다만 허리가 아픈 아내를 두고 간다는 게 미안할 뿐이다.

내가 건축 현장에 가기로 한 건 전적으로 친구의 부탁 때문이다. 전기공사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면서 퇴직 후 필요한 일을 수시로 도와주는 과정에서 전기 관련 일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최근에 아파트신축 전기공사를 따오는 데 있어서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뜻에서 사장인 친구의 부탁을 함부로 뿌리칠 수가 없었다. 사장은 여러 공사 현장을 관리하기 때문에 무척 바쁘니까 이번에 따온 공사는 사장을 대리하여 내가 현장 사무실에서 인력과 자재관리를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전무이사로 정식 채용하여 월급도 서운치 않게 지급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준단다. 돈 문제라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하겠지만 나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러나 최근 아내가 한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퇴직 후 얼마간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 형편에 작년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여 지역 건강보험료가 너무 많이 올라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매월 연금을 받아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내는 월 40만 원 가까이 들어가는 건강보험료가 아까운가 보다. 그렇다. 친구 회사에 재취업하여 최소한 건강보험료가 직장으로 바뀌면 아내의 부담은 덜 수 있다는 생각과 나이 들어도 할 일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람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고 말았다.

그런데 공사 현장은 서울이 아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서 설렘도 있지만,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그래도 아내는 무조건 내 의견에 따르겠단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온 후 가끔 볼일을 보러 고향 방문한 것 이외 장기 체류한 적이 없는 고향은 늘 마음속 깊은 곳에 아쉬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아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짐을 챙기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던 아내의 마음도 착잡한가 보다. 젊을 때도 못 해 본 주말부부를 늙어서 하다니 실감이 나지 않겠지. 아내는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다. 난 겉으로 태연한 척했으나 마음은 몹시 떨고 있다. 그동안 아내랑 둘이서 살아온 생활 패턴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면 어떻게 적응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짐을 다 꾸리고 나니 KTX 광명역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 사장 친구가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큰 가방을 들고 친구 승용차에 올라탄 나를 아내는 가벼운 미소로 배웅한다. 친구는 할 일이 많아 바쁘다면서 광명역에 내려주고 홀연히 사라지자 나 혼자 벤치에 앉아 열차 번호와 승차 위치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제 나 혼자구나!’라고 생각하니 이상야릇한 생각이 든다. 아내랑 아들딸 손주들도 있는데 왜 혼자라는 생각이 들까? 기차에 몸을 싣자 일순간 피로감이 몰려온다. 차창에 기대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겨울 채비하는 오색찬란한 단풍향연이 별세계로 변해가는데도 내 마음은 가을을 느끼기가 무겁기만 하다. 깜박 잠든 후 눈을 떠보니 어느새 고향 역이다. 고향이지만 고향 같지 않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중압감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버린다. 마중 나온 현장소장의 안내로 미리 준비해 놓은 원룸에 짐을 풀고 김치찌개로 저녁을 때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방 곳곳이 먼지로 엉망이라 약 1시간에 걸쳐 청소하고 샤워한 후 이부자리를 폈다. 춥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일러 스위치를 올려도 난방이 안 된다. 현장소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숙소 청소나 가스관 연결 등 숙소 정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모양이다. 불씨가 없는 방에서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잠을 청해도 아내가 없는 새로운 환경 적응이 힘들어서인지, 추워서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 4시경 일어나 근처 공원에서 아침 운동으로 똑같은 일상을 시작했다. 6시가 되어 현장소장 승용차로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건축 현장으로 갔다. 현장은 어둑어둑하지만 이미 노동자들로 문전성시다. 현장 식당에서 노동자들 틈새에 끼어 앉아 아침 식사하면서 주위를 둘러봐도 한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중국 조선족이나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로 북새통이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현장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5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는 책상과 PC 등 사무용 집기들이 제법 잘 갖춰져 있다. 인력이나 자재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괜히 친구 부탁을 성급하게 승낙해 버린 자신이 조금은 미웠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재취업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주말부부가 될 것이라고 이미 말해 버렸는걸.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고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앞이 캄캄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현장소장이, 전기공사는 골조팀이 벽체와 슬라브를 어느 정도 완성해 나갈 때 그 뒤를 이어 배관과 입선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매일 인력투입현황이나 자재관리 등을 하고 내일 예정 사항을 포함하여 서울 본사에 업무보고를 하고 나면 오후 5시쯤 일과가 끝난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저녁 8시가 훨씬 넘는다. 고향 친구들이 한잔하자는 성화에도 다음 날 새벽 일어나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모른 척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내랑 안부 전화를 마치고, 늘 함께 있던 아내도 없는 빈자리에 이부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인다. 틈만 나면 아들딸은 전화나 문자를 통해 힘들면 지금이라도 당장 올라오라고 한다. 이런 나날이 매일 반복되면서 뭔가 보람을 찾고자 해도 그럴듯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건축 현장 일상이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다. 평소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조금은 호기심도 있었지만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주일 만에 아내가 좋아하는 단감을 한 봉지 들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간다는 설렘이 어린아이처럼 좋다. 반갑게 맞아준 아내랑 깊은 포옹을 하고 아내 얼굴을 쳐다보니 그새 많이도 변했다. 척추관협착증이 있는 아내 허리는 거짓말 좀 보태어 거의 90도 가까이 굽혀져 있고, 아내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잠겨있다. 아내는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은 하지만 그간 많이 힘들었나 보다.

2박 3일을 아내랑 보내고 월요일 아침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맴돈다. 평생 함께 지내오다 아파트에 혼자 있을 아내 모습이 나를 괴롭혀온다. 앞으로 아내랑 떨어져 살면 아내는 물론 나의 일상도 많이 일그러질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엄습해 온다. 내가 괜히 객기(客氣)를 부렸다는 후회까지 몰려온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일이니까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실 내가 친구 부탁을 승낙할 때 돈에 별로 흥미가 없다고 했지만, 실은 적지 않은 욕심을 품고 있었다. 지역 건강보험료 운운했지만 사실, 열심히 일하여 얼마간 돈을 모으면 경제적 부담 없이 아내랑 둘이서 크루즈 세계여행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게 속셈이었으니까. 내가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에 맥이 빠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게 너무 조급했다. 있으나 없으나 아내랑 둘이서 오순도순 사는 것이 참 행복일 거라는 생각이 북받쳐온다.

현장 일을 끝내고 열흘째 되던 저녁, 고심하던 끝에 친구에게 전화하여 다짜고짜 나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순간적인 판단이 잘못되었고, 신중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원래대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하는 내 일상을 찾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깜짝 놀라더니 자초지종을 듣고서 고맙게도 날 이해해 준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하여 내일 상경하겠다고 했더니 무조건 대환영이란다. 애들도 좋단다.

다음날 고향 친구들이랑 낮술을 한잔하고 KTX에 몸을 실으니 저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재취업하여 보험료를 아끼고, 크루즈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허리 아픈 아내를 내팽개친 놈. 덜커덩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가 계속 나를 조롱한다. 그 나이에 건축 현장에 간다고? 쥐구멍을 찾고 싶다.

이렇게 헛된 욕심은 ‘열흘 천하’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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