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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Aug 07. 2022

미국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서른 넘어 외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공부

미국 이민에 관한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가 있다.


이민 처음 올 때 공항에 누가 데리러 나오느냐 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이 결정된다.


음식점 하는 분이 데리러 오시면 따라서 음식 장사를 하고,

택시 하시는 분이 데리러 오시면 따라서 택시 기사가 된다.


그 유머는 대강 이런 뜻이다.


내가 이곳에서 패러리걸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 유머와 비슷한 계기에서 시작됐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커리어 발전에 관련된 대학 부설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에서는 1:1 멘토를 소개해주는데, 나의 멘토 제인은 은퇴한 지 얼마 안 되신 변호사였다.

그녀와 한 주에 몇 번씩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 제인은 나에게 제안했다. 로스쿨에 가지 않겠냐고.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받아 둔 석사가 있던 터라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박사 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석사를 하면서 느꼈지만 나는 연구하는 것에 소질이 부족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소질이 좀 부족해도 어떤 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는 연구가 하고 싶지 않았다. 티칭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에게 그녀는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나의 학사, 석사 전공은 법학이 아니다. (물론 법학이었어도 그건 한국법이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로스쿨 진학에 관해 공부하는 것은 나 스스로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집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미국 변호사 협회 (American Bar Association)가 인가한 패러리걸 과정에 입학했다.


사실 패러리걸 과정을 다니면서도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전공을 괜히 선택했다며 마음 졸이고 후회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을 압축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열심히, 그리고 잘했다. 

패러리걸 학생이었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 나는 몇 달 후 졸업을 앞두고 있다.


미국 온 지 이제 만으로 4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인 LSAT을 집중적으로 공부한지는 약 3개월 정도 되었다.

앞으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이 이야기가 한 사람의 도전에 관한 것이라는 점만 언급할 수 있다.


이 선택이 부디 쭉 좋은 길로 이어져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매일 밤 방황하며 눈물 흘리다 자는 날들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와 준다면 좋겠다.


Photo by Tingey Injury Law Fir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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