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몇 번 나가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나갈 때마다 친구들을 꼭 만나는 편이다.
내가 만나는 친구들을 다 합쳐보면 스무 명이 조금 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 다 소중하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만들어 내서라도 만난다.
내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 것은 내가 만나자 불러낼 때에
단 한 명도 싫은 내색 없이 나와준다는 것이다.
그런 좋은 친구들이 있는 한국에 비교해서
미국에서 나는 친구가 몇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나는 몇 년에 걸쳐 친구들을 몇 명 만들었고,
그중에서 모두와 교류가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이 맞아 조금 더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정이란 것은 연속성을 띄는 것이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기는 참 어렵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 혹은 미국인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언제든 이동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와 남편도 이 도시를 떠날 것이기에 그때가 되면 이 도시에 남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겠지만, 그건 지금 있는 일이 아니니 일단 차치하고.
이렇게 오래 이 도시에 살게 되면서 지금껏 많은 친구들과의 이별이 있었다.
도시에 남는 사람은 나였기에, 모두에게 나는 마지막 배웅을 하는 쪽이었다.
아무래도 어른이 되어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은 도시를 떠나게 되면
같이 보낸 시간이 어떻든 간에 바로 빛이 바래지기 쉬운 터라
잠정적으로 그들과는 연락이 끊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을 위로하는 데에 더 편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그동안 쌓여온 나만의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 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면 답장이 뜸해지거나 혹은 영영 오지 않는 적이 많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도시에서의 생활이 바빠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내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상처받은 속을 달래곤 한다.
아니면 나만 모르는 친구의 연을 맺고 끊는 것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은 애초에 소심하기도 하고 타인의 행동에 예민한 편이라
혹시 거절당할까 봐 먼저 만나자는 말도 잘 못 꺼내는 사람인데,
그래도 좋은 일에는 축하해주고 싶어 용기 내 연락한 것에 답장이 오지 않으면
그동안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나 싶어 속앓이를 오래 하곤 한다.
이번 여름에도 몇몇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가졌다.
새 도시에 잘 적응은 했는지, 좋은 일이 있던데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한 나는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내지만 딱히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혹은 아주 늦게 답장이 온다.)
도시에 남은 건 나니까, 아쉬운 사람도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을 주저할 수는 없다.
언젠가 나도 미국에서 오래 지속되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저녁 읽었던 미셸 오바마의 책에서처럼 (자기만의 빛, 2023)
그녀와 그녀의 강력한 친구들의 유대처럼,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좋은 관계들이
미국에서의 내 삶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