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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Nov 14. 2022

올해 마지막 LSAT을 준비하며 쓰는 넋두리

6개월이 흐른 수험 일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볼까 하다가 글로 정리해보고자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살면서 많은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돌아 돌아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 늦은 서른 중순에 찾은 꿈이어서 그런 걸까? 마음이야 언제든 변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이 간절함도 찰나의 것이 될지 아니면 소중하게 품은 귀한 씨앗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다.


나 스스로는 마음이 대체로 평안하다 생각했는데, 예민한 몸뚱이는 이 거대한 스트레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표출하고 있다. 가장 만만한 두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애드빌과 타이레놀로 그때그때 당기는 대로 먹는다. 게다가 핼러윈이 지나면서부터 수능 한파가 북미대륙에까지 당도했는지 기온이 심하게 내려가 수족냉증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몸이 차가워지면 안 그래도 굳어버린 라운드 숄더가 말도 못 하게 심하게 딱딱해지며 아파오는데, 이것이 머리까지 이어져 상반신이 마비가 온 듯 아파온다. 안구에 고통을 수반한 충혈이 계속된지는 아마도 3달째인데, 특히 송곳으로 오른쪽 안구를 찌르는듯한 느낌의 통증이 있다. 열심히 검색해서 사온 안약들을 달고 살지만, 역시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처방받은 게 아니어서일까? 안구 통증은 만성이 되어가려고 한다. 이전까지 남편이 물려준 삼성 노트북을 쓰다가 부랴부랴 조금이나마 눈에 좋을까 하고 동생이 준 레티나 맥북으로 모의고사 연습 환경도 바꿔보았다.


와중에 여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받으면 도지는 질염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그동안에 꾸준히 질 유산균 먹고 관리했다고 했으나 그걸로도 막지는 못했다. 하루에 유산균을 2알로 바꾸고 비타민 C도 추가하고, AZO라는 약도 추천받아 하루에 세 알씩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AZO를 먹은 지 일주일이 되자 혈변이 나오고 배에 통증이 엄청났다. 뒤늦게 약봉투에 적힌 깨알 같은 복용방법을 자세히 읽어보는데 이렇게 오래 세 알을 복용하면 안 됐었나 보다. 질염도 다 안 나았는데 그전에 복통 때문에 복용을 중단했다. 결국 방법을 바꾸어 모니스탯으로 가기로 했다. 그동안 계속 치료에 전념해서였는지, 아니면 워낙에 약이 효과가 좋아서인지, 덕분에 모니스탯을 쓰니 확실히 증상이 개선됐다.


자, 이제 질병 리스트의 마지막이다. 만성이 되어 나와 거의 영원히 함께할 기세인 역류성 식도염. 20대 후반 회사 다니면서 개인적인 일로 스트레스가 최대치였을 때 나를 찾아와 그 후로 잊을만하면 찾아와 나를 세게 괴롭힌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나는 이 때문에 다시금 눈물을 삼키며 커피를 끊었는데, 수험생에게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건 정말 고문이다. 나름 꾀를 내어 레드불을 마시면 어떨까 하고 호기롭게 시도해봤으나, 커피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졸음을 쫓아야 하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식도와 위의 눈치를 좀 본 다음에 괜찮아 보이는 날에는 아주 연하게 탄 오트밀 라테를 마시거나, 혹은 얼음을 가득 채워 희석시킨 레드불을 마셨다. 그마저도 아닌 날에는 녹차를 타 마시거나 혹은 제로 콜라를 마셨는데 물론 졸음을 쫓아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돌고 돌아 구매한 게 학교 다닐 때 몇 번 사 먹은 카페인 초콜릿이다. 작은 지우개 사이즈인데 먹으면 커피 반 잔의 카페인이 들어있다. 마시는 것보다 씹어 삼키는 게 왜인지 나에게는 더 부담이 적어 요즘에는 이렇게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웃긴 건 이렇게 낮에 신체와의 사투를 벌였으면 밤에는 잠이라도 푹 자면 좋으련만, 오히려 자려고 누우면 온 몸의 근육들은 몸살 걸린 듯 아파오고, 더 나아가 머리로는 시험 문제들을 생각하느라 그 스위치가 꺼지지 않아 오히려 잠에 쉽게 못 들어 뜬눈으로 새벽을 보낼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또 약의 기운을 빌린다. 미국에서는 멜라토닌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나는 자기 전에 멜라토닌 젤리를 먹고 겨우 잠에 든다.


자, 그렇다면 거진 6개월의 수험 기간에서 얼마나 성과를 냈을까? 이러한 신체적 고통을 매일 느끼며 공부를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나의 성적은 아주 미약하다. 다 쓴 공책과 펜들이 늘어나고, 인쇄된 레터지는 점차 쌓여가지만, 공부는 역시 계단식 수직상승인지, 아직 한 칸도 못 올라간 내 초라한 모의 성적표들은 참담하다.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어느 날은 점수가 어제보다 잘 나와 뿌듯했던 날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평소 실력 이란 단어를 쓰고 싶다면 그 점수가 일관되게 며칠은 나와줘야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쩌다가 시험을 잘 본 날이 있다면, 그다음 날은 또 자괴감에 베갯잇을 눈물로 적셔야 했던 순간들이 훨씬 많다.


단지 문제를 틀렸을 뿐인데, 그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근본 태생부터 거슬러 올라가 "왜 난 미국인이 아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야?"부터 시작되는 밑도 끝도 없는 유아적이고 단순한 자기부정을 한참 해대고 나서 또 어느 정도 현자 타임을 갖게 되면 다시 이성을 찾고 틀린 문제를 들여다본다. 알 것도 같다가 모를 것도 같다가, 오늘은 알았지만 내일이 되면 잊어버릴 그런 공부들을 하고 또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워야 겨우 조금 쉬는 시간을 갖는 나날들이 계속 이어진다.


며칠 뒤 시험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 시험에서만큼은 냉정하고 계획적인 사람인 나는 이미 플랜 A, B, 그리고 C까지 다 만들어 두었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미래의 여러 계획들의 우선순위가 계속해서 뒤바뀌고, 그러다가 마음이 정말 힘들어질 때에는 아주 밑바닥에 있는, 절대 꺼내보고 싶지 않은 계획들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는다. 공부는 기세싸움이고, 이제 나는 상승하는 바람을 탔다고. 좋은 기운이 불어와 나를 좋은 곳에 데려가 줄 것이라고. 지금껏 복권 당첨이 안됐던 이유는 그 행운을 꼭꼭 모아다가 필요한 날 필요하게 쓰려고 그랬던 거라고. 공부했던 순간들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자신감을 좀 더 가져도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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