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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Nov 29. 2022

시험을 마치고 펑펑 울었다

수능 망치고서도 당일날은 안 울었는데

시험을 마친 지 약 2주가 지났다. 사실 시험을 마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멘털과 육체를 분리해서 꼭 해야 할 일들만 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놓고 며칠을 지냈다. 이제야 주섬주섬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시험은 각자 온라인으로 치르는 시험이라 요건에 맞는 시험 시간과 장소를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가 최상의 컨디션을 낼 수 있는 시간대라고 판단이 든 시간대를 골랐고, 운 좋게도 원하는 시간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차마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체력과, 감독관의 운이었다.


지난번 첫 시험에서 무난하게 감독관과 소통이 잘 되었던지라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만 떠돌던 프록터 괴담이 설마 내 얘기가 될 줄은 당연히 상상도 하지 않았다. (혹여나 재수 없을까 봐 이런 상상은 안 하는 편 ㅠㅠ) 이미 끝난 마당에 짧게 요약하자면 노트북 연결 문제가 가장 컸었고, 시험 도중에도 프록터 문제가 꾸준히 있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시간보다 굉장히 많이 지체된 시간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와중 다행히도 화장실은 갈 수 있었지만, 이미 식사를 한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버려서 에너지가 굉장히 고갈된 상태에서 시험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노트북 문제로 시간이 지체되고 그것 때문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음을 좀처럼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는데, 와중에 프록터의 간섭도 몇 차례 있었다. 중간 브레이크 때에도 시간이 계속 지체돼서 나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지체될 줄 모르고 히터도 꺼버려서 방 안은 냉골이 되어갔다.


문제도 어렵고 와중에 감독관은 말 걸고, 비축한 체력이 점점 떨어지자 마지막 세션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걸 끝까지 풀어내야 로스쿨에 갈 수 있다는 중압감과 동시에, 시간은 계속 흐르고 문제는 몇 번을 읽어도 눈에 안 들어오고, 그러면서도 계속 힘에 부치니까 차라리 끝나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어떻게 흘러갔나 모르는 시간 속에서 겨우 시험은 끝났고, 방을 나오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는데 복잡한 감정과 나에 대한 자책 때문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점 한 끼 먹고 치른 시험이 저녁시간을 훌쩍 넘어 끝났는데, 분하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에 계속 눈물이 났다. 보다 못한 남편이 나가서 같이 음식을 픽업하러 갔다 오자고 제안했는데, 차 안에서도, 식당 앞에서도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같이 정보를 나눴던 그룹 챗 방에서 시험을 마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룹의 사람들은 힘든 과정들을 같이 겪어온 사람들인지라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점수가 잘 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었다.


시험이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나는 그동안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열정이 넘치던 모습은 온 데 가고 정말 말 그대로 번 아웃 상태가 되었다. 가족들은 침울해하는 날 보고 내년에 다시 하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 었다. 원래도 내년, 내 후년 두 사이클을 준비할 것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시험에서 큰 아쉬움을 남기고 나니 생각만으로도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오늘에서야 이 글을 쓰는 것도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한 목적이다. 결과가 아쉽다는 것은 내가 더 공부할 게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공부를 하면 그 간격을 더 메울 수 있으니 괜찮다. 또한, 주변에 나의 도전을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람이 운대를 잘못 만나면 주변의 만류나 환경적인 제약 때문에 도전하고 싶어도 못 할 상황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 점에서 복을 받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책망과 아쉬움도 결국 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관문 중 하나일 것이다. 점수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경험이 나에게는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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