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감사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났다
로스쿨 입시 준비를 할 때 나는 막연하게 남편은 미국의 한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고, 나는 같은 대학이나 혹은 그 지역의 다른 학교 로스쿨로 진학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내 생각을 듣던 남편은 이 넓은 미국에서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거라며 장거리 부부가 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남편의 말대로 실제로 선배들을 보면 장거리부부가 굉장히 많다. 그동안은 서로의 커리어를 위해 잠시 따로 지내는 선배 부부들을 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그게 정말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시간은 흘러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남편의 프로포절 디펜스가 끝나고 잡마켓에 뛰어들 때 나도 로스쿨 지원을 해야 했는데, 역시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남편의 논문 일정이 늦어지게 되면서 일단 내가 먼저 지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전역에 원서를 뿌리면서 동시에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남편 과의 채용 공고 또한 계속 들여다봤다.
겨울에 남편이 프로포절 디펜스를 마치고 그래도 이제 얼추 비슷하게 지원 시기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도교수님은 잡마켓에 나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으셨고 추가의 라이팅을 요구하셨다.
남편이 계속 논문을 써 내려가는 동안, 나의 입시 결과 또한 하나둘씩 날아들었다.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이사할 도시들 또한 좁혀져 갔다.
우리는 이제 우선순위를 바꾸어 남편이 취업하는 도시가 아닌, 내가 다닐 학교의 도시로 이사를 계획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도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마지막 학기는 리모트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로스쿨 입시가 끝나고 우리는 미국의 한 도시로 이사를 확정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남편은 ABD 상태가 되어 가을학기부터 잡마켓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내가 다닐 로스쿨이 있는 대학에 남편의 과에서 사람을 뽑는 공고가 올라왔다. 비록 테뉴어트랙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지도교수님께 상의드리니 적극적으로 지원을 밀어주셨다. 남편은 레쥬메와 커버레터, 추천서 등을 준비하며 지원에 박차를 가했다. 남편의 첫 잡마켓 지원이기도 하고, 특히나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원서를 제출했다.
얼마 뒤 너무 감사하게도 서류가 통과되어 남편이 면접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남편이 면접 준비를 할 동안 여러 가지 서포트를 했다. 너무 소중한 기회라서 꼭 이 자리에 합격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간이 기간인지라 나 혼자 이삿짐을 다 쌀 수밖에 없어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면접 준비를 할 때 방해가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드디어 면접날이 다가왔다. 면접은 줌으로 할 예정이라 나는 그 시간 동안 강아지와 집을 나가 있을 요량이었는데, 남편은 그냥 같이 집에 있어달라고 했다. 남편이 안방에서 열심히 면접을 보는 동안, 강아지와 나는 거실에서 숨죽여 그 시간을 견뎠다. 작은 소리라도 날까 봐 거의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면접을 마치고 남편이 안방 문을 나섰다. 남편의 표정은 밝았다.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질문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잘 대답한 것 같다고 했다. 잡마켓 첫 면접이기도 하고, 따로 목 인터뷰를 해본 것도 아니기에 긴장도 많이 했을 텐데, 밝은 남편의 표정을 보곤 안심이 됐다.
그로부터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면접관께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2-3주가량 소요될 거라고 하셨기에 2주 정도까지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남편도 면접을 잘 봤다고 했기에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었다.
3주가 넘어갈 때부터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챗지피티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는데 기대를 점차 내려놓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때쯤 팔로우업 이메일을 보냈는데, 행정 처리 때문에 채용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이 이메일이 긍정의 메시지인지 아니면 완곡한 거절인지 알 수 없기에 나는 점차 마음을 내려놓는 쪽을 택했다.
첫 술에 어찌 배부르랴 하며 가끔씩 시무룩해 보이는 남편을 위로했다. 이번 채용 건은 잊고 플랜 B 대로 졸업 논문 마무리를 하며 가을 잡마켓을 준비해 보자고 그를 독려했다.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를 마치고 어수선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지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집을 나섰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신규 카드를 발급받기로 하고, 남편은 한인 마트에 미리 가서 장을 보고 있기로 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처리를 끝나고 부리나케 뛰어 마트로 향했다. 따로 전화를 걸어 남편을 만나기보다는 몰래 찾아가 놀라게 해 줄 심산으로 남편을 찾아다녔다.
고기 코너에 서있는 남편을 보고 달려가 씨익 웃었다. 나를 발견한 남편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평소 잘 울지 않는 남편이 내가 그렇게 반가워 눈물까지 흘리다니 “내가 그렇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도 잠시, 남편은 나에게 다가와 방금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채용이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남편을 얼싸안고 오열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날 우리는 마트를 돌아다니며 줄기차게 울고 웃었다. 평소에 구경만 했던 모둠회랑 족발세트도 장바구니에 척척 담았다.
우리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다니.. 몇 번이나 믿기지 않아 남편에게 되물었다. 남편에게 온 채용 확정 이메일을 큰 소리로 읽어보았다. 진짜다. 날아갈 듯이 기쁘고 또 기뻤다. 7년을 꽉 채운 박사과정 기간 동안 수고한 남편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싶어 그 후로도 시도 때도 없이 울컥 눈물이 났다. 앞으로 새로운 도시에서 펼쳐질 날들이 한껏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