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닥터
다음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남편 박사과정의 종지부를 찍는 파이널 디펜스가 아침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문제는 그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이라는 것이다. 파이널 디펜스를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하필 직전날 저녁수업까지 소화를 하고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스케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저녁밥을 지어 놓고 남편을 하나라도 더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9시 반이 넘어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다른 걸 할 새도 없이 발표준비모드로 다시 들어갔다. 일이 많아서 마지막날까지도 준비를 채 마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수업까지 했으니 체력이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해서 너무너무 힘들어했다.
나는 새벽 두 시 넘어서까지 남편 곁을 지키다가 도저히 너무 졸려서 미안하다고 하고 조금이라도 잠을 청했다. 자기 전부터 머리가 아팠는데 꿈도 어디서 그런 악몽을 생각해 낸 건지 최악의 꿈을 꿨고, 심지어 꿈에서도 머리가 아파서 깼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남편은 한숨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웠는데,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나는 얼른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에너지 드링크랑 육포를 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뭘 먹으면 기운을 차릴까 싶어 밥도 차려 주고 과일도 깎아 줬는데 남편은 하나도 입에 대지 못했다.
디펜스는 집에서 줌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집 앞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빵과 커피를 시켰다. 걱정에 밥도 잘 안 넘어갔다. 유튜브라도 보려고 켰는데 가수 이소라 언니가 유튜브를 시작해서 그걸 좀 보려다가 주책맞게 아침부터 눈물이 나려고 해서 황급히 폰을 내려놓고 그냥 멍을 때렸다.
과제라도 하려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공용공간에 자리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걱정에 괜히 챗지피티만 붙잡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의외로 위로를 잘해줬다. 그 말에 반쯤 안심이 되었고, 남편에게 건네줄 꽃을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꽃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노란색 꽃 위주로 이것저것 보다가 노란 장미 다발을 샀다. 구글에 꽃말을 치니 노란 장미는 우정, 행복, 기쁨, 새로운 시작과 같은 밝고 긍정적인 의미를 주로 가지며, 완벽한 성취라는 꽃말도 있어 응원의 선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선물로 주기에 딱 알맞은 꽃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아파트에 도착해 공용공간에서 마음을 다스렸다. 설령 결과가 생각과 다를지라도, 다시 하면 되니까 괜찮을 거라고 맘을 달랬다.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남편이 어디냐며 연락이 왔다. 공용 공간에 있다 하니 좀 지나 남편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결과는 만장일치 패스였다고. 그동안의 세월이 확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장미를 건네며 그냥 펑펑 울어버렸다. 이렇게 박사과정의 마지막 관문인 파이널 디펜스가 끝났다. 정말 이제 남편은 닥터가 된 것이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