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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Aug 16. 2023

카피(Copy)의 경계와 경계

보이지 않는 선(Invisible line)

 몇 개월 전 우리나라 유명 싱어송라이터의 표절논란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진행해 오던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주최한 건축현상설계공모에서 표절을 문제로 당선작이 취소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카피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내가 속해있는 건축계의 카피 논쟁에 대해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패션계에 카피를 잡아내는 저격수 ‘다이어트 프라다(Diet Prada)’가 존재한다면 얼마 전 건축계에는 ‘버진 올지아티(Virgin Olgiati)’라고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등장해 화제이다. 이 계정은 추측건대 기존의 건축 방식을 지양하고 독자적인 건축관을 구축하여 완전히 새롭고 순수한 건축을 지향하는 내용인 ‘비참조적 건축(Non-referential Architecture)’을 저술한 스위스 건축가 ‘벨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계정에서는 국내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 오브제 등 공간에 관련하여 카피가 의심될 만한 이미지들을 비교 게시해 두었다. 단순히 이미지를 비교하여 카피의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등의 디지털 이미지 홍수 속에서 레퍼런스를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계정에 올라온 몇몇 게시물은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있다.


 건축학과에 입학해 건축을 처음 접하는 시기부터 우리는 레퍼런스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받는다. 심지어 좋은 레퍼런스를 찾아오는 게 건축설계를 잘하는 능력 같기도 하다. 하지만 레퍼런스를 좋은 이미지를 찾는 것으로 오해하는 순간 순수했던 시작과 과정을 뒤로한 채 아류작이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건축설계에 있어 카피의 경계(boundary)는 어디까지이고 어떻게 경계(alert) 해야 할 것인가.



카피의 경계(Boundary)

 카피(copy)는 말 그대로 복제이다. 즉, 설명하지 않아도 카피는 카피로 느껴진다. 레퍼런스를 찾는 목적이 왜곡되고 표현하기 애매한 '보이지 않는 선(invisible line)'을 넘으면 카피가 된다. 앞서 언급한 '버진 올지아티' 계정에서도 설명 없이 단순 이미지를 비교했을 뿐이지만 설명이 있었더라도 카피가 심히 의심스러운 작업도 있듯이 말이다.

 레퍼런스를 단순 이미지로써 받아들일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이런 경우는 보통 디자인 결정권자의 그 당시 취향과 경험에 의해 만들고자 하는 것이 대강 정해져 있기때문에 레퍼런스 이미지와 비슷한 결과물을 발현시키게 된다. 나도 저연차 실무자 당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당시 디자인 결정권자가 히든바 멀리언(창틀)과 유리면이 돌출되어 같은 면을 이루는 세련된 이미지를 들고 와서 우리 프로젝트 파사드에 입혀보자 했던 기억이 있다. 공간에 대한 내용은 정리도 못했는데 파사드부터 고려해야 하는 아주 기가찬 프로세스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 이미지는 세련된 레퍼런스임에는 분명했지만 우리 디자인에 이게 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해 물으면 왠지 사수에게 실례 같고 그 답은 실무자인 내가 찾아야 할 것만 같아 입을 꾹 닫았었다. 이럴 때 '보이지 않는 선'을 넘으면 카피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카피의 경계(Alert)

 우리 모두 천재가 아니다.(몇몇 천재는 해당 없겠다) 따라서 많은 사례로부터 지식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당연하다. 이미지를 위한 레퍼런스를 찾다보면 무의식적으로 피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이미지를 단순 카피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가져야만 한다.

 카피를 경계(alert) 하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보다 본질적인 리서치가 필요하다. 세련됨은 피상적 결과가 되기 쉽기때문에 머리와 가슴에 영감을 주는 어떤 근본적인 것을 찾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보통 건축설계에서의 카피는 투시도와 같은 이미지로 판별된다. 그렇기에 이미지가 아닌 공간에 대한 철학이나 이론을 차용하는 것은 카피를 경계(alert)하는 대단히 좋은 시도이다. 


 건축에서는 구조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에 따른 공간 형식도 대강 정해져 있다. 목조건축을 제외하면 철근 콘크리트 구조 또는 철골 구조이다. 거의 100년 전 이미 르 꼬르뷔지에가 '근대건축 5원칙(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입면,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창)'을 주창했고,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유니버설 스페이스'라는 개념으로 균질한 공간에 대해 다루었고, 루이스 칸은 서브드(served), 서번트(servant) 스페이스 개념을 만들어 합리적 공간을 계획했다. 이렇게 위대한 선대가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거장들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필로티와 가로로 긴 창을 계획하였다고 르 꼬르뷔지에를 카피했다던지, 철골구조에 유리외피의 텅 빈 공간을 만들었다고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복제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건축 본질의 범위안에서 구축에 대한 아이디어, 구조의 방식, 공간 형식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카피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종종 존경하는 작가나 감독, 작품 등에서 어떤 한 부분을 차용하는 것을 오마주라고 한다. 건축에서도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내용을 담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선을 넘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내용이 없는 차용은 결국 카피가 될 확률이 높다. 오히려 잘 만든 오마주는 원작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센스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비참조적 건축'을 지향하는 벨레리오 올지아티 조차도 '오직 신만이 완전히 새로울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항상 새로운 것을 발명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렇지만 모든 건축 프로젝트는 대지가 다르고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새로움을 베이스로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카피의 경계(boundary)를 인지하고 경계(alert)하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일상속에서 눈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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