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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Jan 09. 2024

건축주를 위한 당부의 말씀

넘기 힘든 거대한 산을 쌓지 마시라.

나는 젊은 건축사이다.

오늘은 주변 지인들의 요청으로 오전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오후에는 서울 압구정에서 미팅을 가졌다.

오늘의 두 미팅은 건축행정적 자문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업무는 보통 디자인 프로젝트보다 여러 면에서 난이도가 어렵다.

솔직히 그 어려움의 거대한 산을 건축사와 함께 넘으실 분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 산은 사용자(건축주)께서 착착 쌓으신 것을 아셔야 한다.


오늘은 그런 넘기 힘든 거대한 산을 쌓지 않으시도록

건축주를 위해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첫 째는 반드시 도면을 보관하시라. (준공도면 기준)

아무리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건물이라도 추후 용도변경, 증축, 대수선 같은 건축행위를 위해서는 반드시 도면이 필요하다.

정말 간단하게 끝날 일도 도면이 없어 진행을 어렵게 만든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세설명은 생략하겠다.

이것만 알자. 100만 원에 끝날 일을 500만 원에 해야 할지도 모른다.(아니 더 들지도,,,)

둘 째는 불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라.

건물은 한 번 지으면 최소 20~30년은 거뜬히 사용한다.

그 사이 건물에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귀찮고 돈과 시간이 조금 든다고 다들 그냥 그렇게 한다고 뭔가를 뜯고 고치고 심지어 확장까지 하신다.

용감하시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어떻게 알았는지 공무원이 나와 적발 후 행정조치(원상복구명령, 이행강제금)를 한다.

일이 벌어진 후 건축사를 찾으신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도면도 없으시다. 하하.



거대한 산을 넘으실 준비가 되셨는가.

도면도 없고 내용도 모르는 건물을 만나면 건축사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현장에 가서 최대한 실측을 해보고 소설의 부서진 조각을 맞춰본다.

이마저도 실측이 가능한 규모와 현장여건이 따라줘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구조도면도 필요하다.

구조설계사무소에서 나와 현황을 파악하고 각종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돈과 시간은 아쉽게도 자꾸만 거대해진다. 확실히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이 거대한 산을 넘을 건축주가 별로 없으시다. 안타깝다.


항상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 36년이나 된 근생건물의 건축행정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건축주께서는 그 당시 손으로 그렸던 준공도면을 너무 깨끗하게 간직하고 계셨다.

비록 디지털 파일은 아니었으나 건축, 구조, 설비도면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그 내용이 현재와도 거의 일치했다.

일주일 만에 작업부터 인허가가 모두 끝났다.

이러니 비용을 많이 청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행복했다. 건축주도 시간, 비용 다 만족하셨다.


이때 처음으로 건축주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건축주가 36년간 간직한 감동의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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