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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Dec 26. 2022

킬러(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7)

나는 남들이 시키는 더러운 일을 했다. 신조차도 자신이 아즈라엘(Azrael)을 죽음의 대천사로 임명해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도록 했을 때, 그 성스러운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인간들이 아무리 죽음의 천사를 두려워하고 욕하고 미워할지언정, 천사의 손은 깨끗하게 남아 있고 그의 이름이 불명예로 더럽혀지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불공평하다. 하지만 언제는 이 세상이 공정했던 적이 있었나?      


어둠이 내리자 나는 그 선술집으로 갔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벌써 창가 자리를 차지한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를 깨워 다른 자리로 좀 가달라고 말해볼까도 싶었지만, 술주정뱅이들이 무슨 난동을 부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관심을 끄는 짓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할 수 없이 창문 쪽을 향한 옆자리에 앉았다.

멀지 않아 두 사람이 도착했다. 그들은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내 양옆에 각각 앉았다. 나 역시 그들의 얼굴을 볼 필요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주 젊다는 것과 자기들이 하려는 짓을 하기엔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신을 굉장히 추천하더군.” 둘 중 하나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럽다기보다는 초조하게 들렸다. “최고라고 들었어.”

그가 말하는 방식이 웃겼지만 난 웃음을 참았다. 그들이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그건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충분히 두려운 존재라면 적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대답했다. “맞아. 나는 최고야.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자칼’이라고 부르지. 어떤 어려운 일을 맡겨도 고객을 절대 실망시킨 적이 없거든.”

“잘 됐군.” 상대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번 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말이야.”

다른 한 사람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놈은 스스로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어. 그가 여기에 온 이후로 분란만 일으키고 다녔지. 몇 번이나 경고를 해줬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 그리고는 망나니짓을 오히려 더하고 다닌 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 건 그놈이야.”      

항상 그랬다. 모든 살인 교사자들은 거래 성사 전에 상황설명을 할 때마다, 마치 내가 그 행위의 정당성을 승인해주면 자신들이 저지를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기라도 한다는 듯 한껏 변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고,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군데?” 내가 물었다.

“그놈은 이슬람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이교도야. 신을 모독하고 불경을 저지르는 오만방자한 놈이지. 자격도 없는 게 저 혼자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는 데르비시!”

마지막 단어를 듣자마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껏 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부류의 사람을 다 죽였지만, 성직자, 데르비시를 죽여본 적은 없었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신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신의 분노를 나에게 끌어오고 싶지 않았다.

“안 됐지만 거절해야 될 거 같아. 나는 성직자를 죽이고 싶진 않아. 다른 사람 찾아봐.”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내 팔을 붙들고 간청했다. “잠깐, 잠깐만요. 당신 수고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수를 줄게요. 당신이 받는 값의 두 배를 주면 될까요?”

“그럼 세 배도 가능해?” 나는 그들이 그렇게까지 값을 올릴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잠시 망설이더니 두 사람 다 동의했다. 불안해하면서도 나는 다시 앉았다. 그 정도 액수면 내가 빚을 내지 않고도 신부를 데려와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었다. 성직자건 뭐가 됐건 죽일만한 가치가 있는 금액이었다.  

그것이 내가 살면서 저지른 가장 끔찍한 실수였다는 것을, 그 선택 때문에 나의 남은 평생동안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때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 데르비시를 죽이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 될 줄, 그리고 마침내 그를 죽이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의 칼 같은 시선이 내가 어디에 있든지 따라다니게 될 줄 그때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게 4년 전이다. 내가 그에게 칼을 꽂고 우물에 던져 넣은 다음 저 아래서 들려오는 첨벙 소리를 기다렸지만 고요하기만 할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그날, 그의 몸뚱어리가 물속에 처박힌 게 아니라 하늘로 솟구친 게 아닌가 싶었던 그날, 그날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잘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떤 물이든 몇 초 이상 물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조여와 토하고 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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