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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Dec 25. 2022

킬러(1)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6)

킬러      


알렉산드리아, 1252년 11월      

우물 속 어두운 물아래, 그는 죽어있다. 아직도 그의 의연하고 형형한 눈빛이 하늘에 불길하게 떠 있는 두 개의 검은 별처럼 내가 어딜 가든 따라온다. 충분히 멀리 떠나왔기를 바라며 나는 알렉산드리아로 왔다. 나는 그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랐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채 눈알이 튀어나오고 칼에 찔린 사람의 작별 인사처럼 얼마 남지 않은 헐떡거림으로 목구멍이 닫히기 전, 그가 쏟아냈던 비명, 덫에 걸린 늑대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울려대는 그 메아리가 제발 멈춰주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죽일 때, 그 사람의 무엇인가는 반드시 나에게 남는다. 호흡, 냄새, 혹은 어떤 몸짓. 나는 그것을 “희생자의 저주”라고 부른다. 그 무엇인가는 내 몸에 들러붙고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심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내 안에 살게 된다. 나는 내가 죽인 모든 사람들의 흔적을 지니고 다닌다. 물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살갗에 그들의 실재가 찰싹 달라붙어 무겁게 늘어져 있음을 느끼면서, 보이지 않는 목걸이처럼 그들을 목에 걸고 다닌다. 그 느낌은 분명 불쾌하지만 그런 짐을 지고 사는 삶에 길들여졌고 그게 바로 내 직업임을 받아들였다. 내가 아는 한,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로, 모든 살인자들에게는 살해당한 자들의 숨결이 깃든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괜찮았었다. 그런데 왜 이 마지막 일을 해치운 다음부터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걸까?          


이번 일은 처음부터 모든 게 이상했다. 우선 일을 찾게 된 경위부터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일을 찾은 게 아니라 그 일이 나를 찾아왔던 걸까? 1248년 이른 봄, 나는 코니아에 있는 한 유곽의 기둥서방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유곽의 주인은 사납고 무서운 양성애자로 악명이 높았다. 나는 그 여자를 도와 매춘부들을 관리하고 말썽 부리는 손님들을 얌전히 시키는 일을 했다.  

나는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신을 찾아가겠다며 유곽을 도망친 한 창녀를 뒤쫓고 있던 날이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팠는데, 왜냐면 그녀를 잡으면 다시는 남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그 예쁜 얼굴을 뭉개놓으려고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거의 잡았을 때였는데, 내 문지방에 수상한 편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읽는 걸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를 찾아가 학생 한 명에게 편지를 대신 읽어달라고 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고 다만 “소수의 참된 신앙인들”이라고만 적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당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믿을만한 정보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아사신(중동 최초의 무장 테러 조직)의 멤버였다는 것과, 하산 사바흐(아사신의 수장)가 죽은 뒤 지도부가 투옥되면서 조직이 위태로워졌다는 것, 그래서 당신은 박해를 피해 코니아로 도망쳐 위장하고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편지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나의 역할이 매우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쓰여있었다. 보수는 만족할 만큼 충분할 것이라고도 했다. 관심이 있다면 해가 진 뒤 저녁에 유명한 선술집으로 오라고 했다. 일단 가면 창가에 가장 가까운 자리로 가서 문을 등지고 앉아 머리를 숙인 다음 눈을 내리깔고 바닥에 고정시키고 있으라고 했다. 나를 고용할 사람 혹은 사람들이 곧 올 것이고 내가 알아야 할 모든 사항을 전달해줄 것이라 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나 떠날 때, 그리고 대화하는 도중에도 절대로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상한 편지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살인 청부 고객들의 별별 요구를 다뤄본 사람이었다. 수년 동안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나를 킬러로 고용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자기 이름을 비밀로 하고 싶어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죽이고 싶은 사람과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 의지도 더 강했다. 하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내 임무는 죽이는 것이다. 나더러 그 사람을 죽여달라는 이유가 뭔지 캐물을 필요는 없다. 몇 년 전 알라무트(아사신의 본거지인 요새)를 떠나온 이후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뭘 물어본단 말인가?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행동으로 누굴 죽이려고 한 적이 없었다고 해서 살인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 능력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겐 살인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단지 우연의 문제다. 때때로 사소한 몸짓 하나가 엄청난 분노의 불길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의적인 오해,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생긴 말다툼, 혹은 단순히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음으로 인해서 평소에는 선량하고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파괴적인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기도 한다. 누구나 살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을 마비시킨 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이게 바로 내가 속한 세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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