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얼 Dec 31. 2022

땅 - 샴스(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9)

여관주인은 순식간에 식당 구석으로 달려가 주정뱅이 중 한 명을 자리에서 끌어내서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남자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라 그냥 빈 자루처럼 맥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거의 들리지도 않는 신음 소리가 벌어진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다른 한 명은 일행보다는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맞서 싸우기는 했지만 그 역시 곧장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주인은 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갈비뼈를 발로 차고 손을 발로 찧고 무거운 부츠바닥으로 짓이겼다.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모두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

"그만해요!" 내가 외쳤다. "그러다 죽겠어요. 그 사람 죽일 작정이에요?"

나는 수피(Sufi)가 될 때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으며 보호할 것을 서약했었다. 이 피상적인 세계에서는 별 이유도 없이 걸핏하면 싸우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유가 있어서 싸우는 사람도 너무 많다. 하지만 수피라면 설사 이유가 있다 해도 싸워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에 의존할 수 없다. 나는 여관주인과 주정뱅이 사이에다 내 몸뚱어리를 부드러운 담요 삼아 밀어 넣으면서 둘을 떼어냈다.

"물러나 있는 게 좋을 거요, 데르비시. 안 그러면 당신도 한 방에 지옥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주인은 소리쳤지만, 그가 그렇게 하진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시중드는 두 소년이 주정뱅이들을 들어 올려 앉혔다. 한 명은 손가락이 부러졌고 다른 한 명은 코가 주저앉았는데 둘 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두려움 가득한 침묵이 식당 안을 채우고 있었다. 자기가 불러일으킨 이 공포를 자랑스러워하며 여관주인은 나를 곁눈질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모두가 똑똑히 들으라는 듯 울려 나온 그의 목소리는 넓은 창공을 유유히 나는 맹금류 포식자처럼 높고 강했다.

"이봐요, 데르비시, 항상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야. 나는 폭력을 좋아하진 않아. 다만 지금은 필요했던 거지. 신이 이 땅의 인간들을 깡그리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같은 보통 인간들은 폭력으로써 정의를 더 강하게 지키고 회복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 다음에 당신이 신을 만나거든 이렇게 말해줘. 신이 당신의 어린양을 버리면 그 양들은 그저 얌전히 도살당하기만 기다리진 않는다는 거, 양들은 늑대로 변한다는 거, 이걸 알려주라고!"

나는 문쪽으로 향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틀렸습니다."

"뭐가 틀렸다는 거야? 한 때는 내가 양이었다는 거? 아니면 늑대로 변했다는 거?"

"아뇨. 그건 맞습니다. 당신이 늑대로 변했다는 건 확실해요. 제 말은 당신이 한 행동을 '정의'라고 부른 게 틀렸다는 겁니다."

"잠깐! 그대로 가면 안 되지." 여관주인은 내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하룻밤 자고 음식도 먹었으면 그 값으로 꿈 해석은 하고 가야지."      

"더 좋은 것을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제안했다. "손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돌아서서 그를 향해 가면서 그의 불타는 눈동자 속을 깊고 강하게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불안해하며 그는 움찔했다. 그대로 내가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잡고 손바닥을 펼치자 그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응했다.  나는 그의 손금을 찬찬히 살폈다. 그의 손금은 깊게 갈라지면서 불규칙한 길을 그리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그의 기운이 몇 가지 색으로 드러났다. 녹슨 갈색과 거의 회색에 가까울 만큼 창백한 청색. 그의 영적인 에너지는 거의 텅 비어서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은 시들어 말라버린 풀처럼 더 이상 아무런 생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영적 에너지의 상실을 보상하기 위해 그는 물리적인 에너지를 한껏 키우고 있었고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뭔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희미하게, 마치 베일 뒤에 가려진 것처럼 모호하다가 점차 선명하게 내 눈앞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밤색 머리를 한 젊은 여인의 모습이다. 맨발에다 몸에는 검은색 문신, 그리고 어깨엔 수가 놓인 붉은 숄을 두르고 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군요." 이렇게 말하며 나는 이번엔 그의 왼손바닥을 펼쳤다.


여인의 가슴은 젖으로 불어 있고 배는 만삭으로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하다. 그녀는 불이 붙은 오두막에 갇혀있다. 말을 탄 병사들이 그 집을 포위하고 있다. 말들은 모두 은도금 안장을 두르고 있다. 건초와 사람의 살이 함께 타들어가며 지독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몽골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코가 낮고 넓적하며 목은 짧고 두껍다. 바위처럼 단단한 심장을 가졌다. 칭기즈칸의 강력한 군대다. 


"사랑하는 사람을 둘이나 잃었네요." 나는 고쳐서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그의 눈썹을 내린 채 시선을 발아래에 고정시키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모든 표정이 사라져 돌로 만든 조각처럼 변했다. 그 순간 몇 년을 뛰어넘어 갑자기 늙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얘기가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불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연기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닙니다. 천정에서 나무 널빤지가 떨어지면서 머리에 맞았어요. 그 즉시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아내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거라고 짐작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고통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이마를 찡그렸고 오직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압박감에 고개를 숙였다.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그걸?"

나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당신은 아내에게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어요. 당신은 아직도 꿈속에서 그녀가 묻힌 구덩이 속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봐요. 하지만 그건 당신의 의식이 당신 자신과 게임을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당신 아내와 아이는 둘 다 잘 있어요. 영원을 향해 여행하며 한 점의 빛으로 자유로워요. 이게 진실입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매우 신중하게 말했다. "당신은 다시 신의 어린양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아직도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이 말을 듣더니 여관주인은 마치 뜨거운 냄비에 덴 것처럼 화들짝 손을 빼내었다. "난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데르비시." 그가 말했다. "오늘 하룻밤만 더 머물게 해 주지. 하지만 반드시 내일 아침 일찍 떠나. 다시는 당신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었다. 진실을 말해주면 사람들은 나를 미워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더욱더 미워한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땅 - 샴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