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 바바 자만(1)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13)
바그다드, 1242년 4월
타브리즈의 샴스가 바그다드에 도착했다는 것을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그가 우리 평범한 데르비시 집회소에 왔던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침 그날은 중요한 손님들이 와 있었다. 고위급 판관이 자기 신하들 한 무리를 거느리고 이곳을 들렀는데, 그의 방문에는 단순한 호의 뒤에 감추어진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수피즘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그 판관은 그가 자기 관할 지역의 모든 수피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집회소도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그 판관은 야심가였다. 얼굴은 넓적하고 뱃살은 늘어졌으며 짧고 뭉툭한 손가락에는 전부 값비싼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는 그만 좀 먹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감히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낼 수는 없었고 심지어 의사조차도 충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서 깊은 종교학자 가문의 출신인 그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한 번의 판결로 한 사람을 즉각 교수형에 처할 수 있는가 하면, 기결수의 범죄라도 쉽게 용서하여 그를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낼 수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모피코트와 호화로운 의상을 입고 다녔고, 어디서나 자신의 권위를 확신하는 사람의 장엄함을 갖고 행동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한껏 드러내는 권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회소의 평안을 위해서 그 영향력 있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에 살고 있어요.” 판관은 무화과를 입에 집어넣으며 이렇게 단언했다. “오늘날 바그다드는 몽골 군대를 피해서 도망쳐 온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지요. 우리가 그들에게 안전한 천국을 제공해주고 있으니까요. 이게 바로 세상의 중심 아닙니까, 안 그래요? 바바 자만?”
“당연히 이 도시는 소중하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도시란 사람과 같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지나 젊은이가 되었다가 점점 나이가 들어 결국은 죽게 되지요. 지금 현재 바그다드는 청년기의 후반에 와 있습니다. 하룬 알 라시드가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로 통치하셨던 전성기만큼 융성하진 못하지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무역과 기술, 공예와 문학의 중심으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누리고는 있습니다만, 천 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놈의 비관주의!” 판관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그릇에 손을 뻗어 대추야자를 집었다. “압바스 왕조의 통치는 승승장구하고 우리는 번영할 것이요. 물론 우리 중의 어떤 배반자들에 의해 지금의 현상 유지가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들은 스스로를 무슬림이라 부르긴 하지만, 이슬람교를 해석하는 내용을 보면 이교도들의 협박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훨씬 더 위험하거든.”
나는 입 다무는 편을 택했다. 판관이 신비주의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에게 있어 신비주의자들은 이슬람교를 개인의 주관과 소수만의 밀교(密敎)적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문제만 일으키는 골칫거리들이었다. 그는 우리 신비주의자들을 비난했는데, 우리가 샤리아(이슬람 기본법)를 경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같은 권력자들에게도 불손하다고 했다. 때때로 나는 이러다간 판관이 우리 수피들을 모두 바그다드에서 나가라고 내쫓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당신네들의 형제애는 나쁠 거 없지. 하지만 어떤 수피들은 도리를 벗어났다고 생각되지 않소?” 판관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고맙게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한 적갈색 머리의 초보 수사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향해 곧장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유랑하는 데르비시 한 명이 왔는데 꼭 나를 만나야겠다며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는 초보 수사를 시켜 그 방문자를 조용하고 쾌적한 방으로 안내해서 따뜻한 음식을 준 다음, 판관 일행이 갈 때까지 기다리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판관이 나를 곤란하게 하고 있던 터라 혹시 그 유랑하는 데르비시가 들어와서 다른 지역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이 방안의 긴장이 흐트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나는 초보수사에게 그 남자를 들여보내라고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곧고 수척한 그의 모습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콧날은 날카롭고 눈은 칠흑 같은데 어두운 색의 굵은 곱슬머리가 얼굴 앞으로 흘러 내려와 있었다. 그는 모자가 달린 긴 망토와 양털로 짠 옷을 입고 양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으며 목에는 여러 개의 구슬을 걸고 있었다. 그의 손엔 탁발하는 데르비시들이 갖고 다니는 나무 그릇이 들려있었다. 데르비시들은 남이 베푸는 자선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 빈 그릇을 들고 다녔다. 나는 그가 남의 시선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누가 자기를 부랑자 혹은 거지라고 생각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을 소개하려고 기다리며 서 있는 그를 보자마자 나는 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빛과 몸 전체에 배어있는 정제된 몸짓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쏘는 듯한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 무지한 사람에겐 그저 겸손하고 연약한 도토리처럼 보였을지 모르는 그의 눈이 나에겐 이미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떡갈나무를 품은 열매로 보였다.
“우리 집회소에 잘 오셨습니다, 데르비시.” 나는 이렇게 말하며 내 맞은편 방석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좌중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은 데르비시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판관에게 멈추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서로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 각각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나는 데르비시에게 따뜻한 염소젖과 절인 무화과, 속을 채운 대추야자를 권했지만 그는 정중하게 모두 사양했다.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을 타브리즈의 샴스라고 소개하며,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두루 다니며 신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데르비시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찾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스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대답했다. “그럼요. 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판관은 서슴없이 이죽거리며 끼어들었다. “나는 당신네들 데르비시가 왜 그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신이 항상 당신과 함께였다면, 뭣 때문에 그동안 내내 세상을 뒤지고 다닌 겁니까?”
타브리즈의 샴스는 깊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떨구고 잠시 침묵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고요하고 목소리는 침착했다. “왜냐하면 신을 찾는다고 해서 다 찾을 수는 없지만, 찾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장난이군.” 판관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가 평생 같은 곳에 머물러 살면 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려는 거요? 그건 말이 안 되지요.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떠돌아다닐 필요는 없으니까요!”
곧바로 웃음소리가 물결쳤다. 상관에게 아첨하는 것이 몸에 밴 신하들이 판관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려는 그 웃음소리는 높고 불안하며 신경질적이었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판관과 데르비시를 만나게 한 것은 분명 좋은 생각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아마도 제 뜻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생을 거기에서만 산 사람이라고 해서 신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신을 찾을 수 있지요.” 데르비시는 인정 했다. “어디로도 여행하지 않고 바깥세상이라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말입니다.”
“그럼 그렇지!” 판관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미소는 다음에 이어지는 데르비시의 말을 들으며 서서히 사라졌다.
“다만 제 얘기는, 판관님, 모피와 실크를 몸에 두르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채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바로 당신과 같은 사람은 신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침묵이 방안을 잠식하고 모든 소리와 한숨은 먼지 속에 흡수되어 버렸다. 뭔가 더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사실 내가 아는 한, 방금 일어난 일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란 있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의 혀는 데르비시답지 않게 너무 날카롭군.” 판관이 말했다.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온 세상이 저의 멱살을 잡고 입을 다물게 해도 저는 말합니다.”
판사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곧 어깨를 으쓱하며 무시해 버렸다. “그런 식이라면,” 그가 말했다. “당신은 아무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군요. 왜냐면 우린 지금 우리 도시의 훌륭함에 대해 얘기하던 참이었거든. 당신은 많은 곳을 가봤을 거 아닙니까? 어때요? 바그다드보다 더 매력적인 곳이 또 있던가요?”
샴스는 그의 시선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부드럽게 옮기며 설명했다. “바그다드가 대단한 도시임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상의 아름다움은 어떠한 것도 영원하지는 않지요. 도시란 영적인 기반 위에 세워집니다. 거대한 거울과 같아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비치지요. 만일 사람들의 마음이 혼탁해지고 믿음을 잃게 되면 도시의 매력도 따라서 사라지게 됩니다.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언제든 그런 일은 일어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타브리즈의 샴스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다정하게 눈을 깜박여 보이느라 잠시 자신의 사색으로부터 벗어났다. 순간 나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 같은 것을 느꼈다. 과연 그는 자기 이름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샴스 ‘Shams’는 아랍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그는 불덩이처럼 내부에서 타오르는 힘으로 생기와 활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말 그래도 샴스 “태양”이었다.
하지만 판관의 생각은 달랐다. “당신네 수피들은 모든 일을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어요. 철학자나 시인들처럼 말이지요. 왜 그렇게 긴 말들이 필요합니까? 인간이란 단순한 것을 필요로 하는 단순한 피조물이에요. 사람들의 필요를 살피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도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샤리아(Sharia)와 같은 완벽한 법을 적용해야 하는 거지요.”
“샤리아는 촛불과 같습니다.” 타브리즈의 샴스가 말했다. “우리에게 정말 유용한 빛을 주지요. 하지만 촛불의 역할은 우리가 어둠 속에서 어딘가를 향해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잊어버린 채 촛불만 바라보고 집중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판관은 얼굴을 찡그린 채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샤리아에 의거해 판결을 내리고 사람들을 처벌하는 직업을 지닌 사람과 샤리아의 중요성에 대해 토론한다는 건 위험한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샴스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아무래도 샴스를 이 방 안에서 내보내야 할 것 같아서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순간, 그가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 있습니다.”
“무슨 규칙?” 판관은 미심쩍게 물었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자기가 받아들이는 정도의 깊이에 맞추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성스러운 쿠란(Qur’an)을 이해한다. 4가지 단계의 통찰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피상적인 의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바티니’―쿠란의 속뜻을 아는 차원이다. 세 번째는 속뜻의 속뜻, 즉 더 깊이 안에 숨겨진 뜻을 깨닫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그 의미가 너무 깊어서 깨달아도 언어로 풀이될 수 없고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로 둘 수밖에 없는 경지이다.”
샴스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학자들은 샤리아의 피상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수피들은 속뜻을 알지요. 성자는 속뜻의 속뜻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의 의미는 오직 예언자, 그리고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에게만 보입니다.”
“당신 지금, 샤리아 법학자보다 평범한 수피가 쿠란의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요?” 판관이 손가락으로 그릇을 톡톡 치면서 물었다.
데르비시는 미세하게 비웃는 듯한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심하시오, 친구.” 판관이 말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최악의 신성모독이오.”
판관은 협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데르비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최악의 신성모독’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겁니까?” 그는 이렇게 묻고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야기를 하나 해드려도 될까요?”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하루는 모세가 자기가 소유한 땅의 언덕을 걷고 있다가 한 양치기를 보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하늘 향해 벌려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모세는 기뻤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기도를 듣게 되자 경악하고 말았다.
“오, 나의 사랑스런 하느님, 나는 당신이 알고 계신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말만 하십시오. 당신의 이름으로 내 집에 있는 양들 중에 가장 살찐 놈을 잡아달라 하시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겁니다. 고기를 구워 갖고 그 기름진 꼬리를 밥 위에 올려드시면 정말 맛있으실 겁니다.”
모세는 양치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런 다음에 당신의 발을 씻겨드리고, 귀도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몸에 있는 이도 다 잡아드릴게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시겠지요, 하느님.”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모세는 호통을 치며 양치기의 기도를 끊었다. “그만하시오! 이 무식한 사람 같으니!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요? 하느님이 밥을 드신다고? 발을 씻어? 이런 걸 지금 기도라고 하는 거요? 이건 최악의 신성모독이오.”
양치기는 얼이 빠지고 창피해져서 몇 번이나 사죄를 하며 이제부턴 점잖은 사람들이 하듯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모세는 몇 개의 기도문을 가르쳐주고는 매우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밤, 모세에게 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느님이었다.
“오, 모세,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째서 그 가엾은 양치기를 꾸짖었느냐? 그가 나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가 비록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말을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정말 진실했다. 그의 마음은 순수하고 그의 의도는 선했다. 그는 나를 굉장히 기쁘게 해 주었다. 그가 한 말이 너의 귀엔 신성모독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달콤한 신성모독이었다.”
모세는 즉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는 다시 양치기를 만나기 위해 그 언덕으로 갔다. 양치기는 기도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어제 모세에게 지도받은 방법대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올바른 기도법이라고 그가 이해한 바에 따라 전에 가졌던 열정과 흥분은 전혀 없이 띄엄띄엄 웅얼거리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나 후회가 된 모세는 양치기의 등을 두드리고는 말했다. “형제여, 내가 틀렸습니다. 부디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원래 하던 대로 기도를 드리세요. 그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훨씬 더 귀한 것입니다.”
의외의 말을 듣고 양치기는 놀랐지만 마음 깊이 안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전에 하던 방식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가르쳐준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과 소통하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의 순진한 신심은 칭찬받고 인정받았으나 그는 이제 그 ‘달콤한 신성모독’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니 아시겠지요? 다른 사람이 신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샴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자기만의 기도가 있습니다. 신은 우리의 언어를 받으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보십니다. 의식과 예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없고, 다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나는 판관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고 침착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그 속에는 상당한 분노가 숨어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교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까다로운 상황을 감지했다. 만일 그가 샴의 이야기에 발끈하여 대응하게 되면 그 오만방자함을 처벌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어쨌든 일은 더 심각해져서 한낱 데르비시가 감히 고위급 판관에게 맞섰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판이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화낼 일 따위는 없는 척 그냥 넘어가게 둘 수밖에 없었다.
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핏빛처럼 붉은 색조가 여러 겹으로 펼쳐진 석양의 하늘에는 어두운 잿빛 구름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잠시 후, 판관은 중요한 업무를 봐야 한다면서 몸을 일으켰다. 나에게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고 샴에게는 차가운 눈초리를 던진 후에,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신하들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판관께선 당신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군요.” 모두 떠난 후에 내가 말했다.
타브리즈의 샴스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 지었다. “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엔 익숙합니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이 데르비시 집회소의 소장을 맡아왔지만 이런 사람이 오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얘기 좀 해주시오, 데르비시.” 나는 말했다. “바그다드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나는 그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동시에 이상하게도 그 대답이 두려워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