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 나병환자 하산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8)

by 유주얼

콘야, 1244년 10월 17일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지상의 이 연옥을 “거룩한 고통”이라고 부른다. 나는 림보에 끼어있는 나병환자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나를 자기네 편에 넣어주지 않는다. 엄마들은 길거리에서 나를 손가락질 하며 말 안 듣는 자식들에게 겁을 주고, 아이들은 나에게 돌을 던진다. 장인들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는 불운을 물리치기 위해 나를 문 앞에서 내쫓는다. 임신한 여자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뱃속의 아이가 혹시라도 불구로 태어날까봐 두려워하며 얼른 얼굴을 돌린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은, 그들이 치를 떨며 나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내가 훨씬 더 치가 떨리도록 그 경멸의 시선들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피부가 변하기 시작하는데 두꺼워지고 거뭇거뭇해진다. 썩은 달걀 같은 색의 크고 작은 반점들이 어깨, 무릎, 얼굴에 생겨난다. 그러면 온통 쏘아대고 타는 것 같이 아프다가 어느 순간 그 통증이 한풀 꺾이거나 무감각해지면서 그 반점들이 점점 커지고 부풀어 올라 흉측하게 전구만 해진다. 손은 짐승의 발처럼 변하고, 얼굴은 문드러져서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이 정도쯤 되면 마지막 단계로, 더이상 눈을 감을 수가 없고, 눈물과 침이 나도 모르게 줄줄 샌다. 손톱 중 여섯 개가 떨어져 나갔고 하나는 떨어지는 중이다. 이상한 건 머리카락이 아직 붙어있다는 사실인데, 그나마 행운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듣자 하니 유럽에서는 나병환자를 도시에 들어오지 못하게 성벽 바깥으로 내보낸다고 한다. 여기서는 우리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로 쓰일 수 있는 한, 도시 안에 살게 해준다. 게다가 구걸하는 것도 허용해주니 정말 다행인데, 그렇지 않다면 우린 굶어죽었을 것이다. 구걸은 우리 나병환자의 생존 수단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기도다. 신이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서가 아니라, 어떤 근거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신이 우리를 특별하게 여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으면서 또 그만큼 존중도 받고 있다. 사람들은 환자들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 나이 많은 노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역할로서 우리 나병환자들을 고용했다.

나병환자는 길거리에서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지만, 죽음과 절망이 만연한 곳에서는 황제 대접을 받는다. 기도하는 자리에 불려가게 되면 나는 머리를 숙이고 아랍어로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리면서 기도에 몰입된 척을 한다. ‘척’하는 게 나의 최선이다. 왜냐면 난 신이 내 기도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구걸 쪽이 버는 돈은 좀 덜할지라도 훨씬 더 쉽다는 게 내 결론이다. 적어도 누군가를 속이진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금요일은 라마단 기간을 빼놓고는 최고의 요일이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한 달 내내 수입이 좋다. 게다가 라마단의 마지막 날은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짠내나는 구두쇠조차도 과거와 현재에 지은 자기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앞다투어 적선하기 때문이다. 일 년 중 사람들이 거지를 외면하지 않는 단 하루뿐인 날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가장 좋은 적선 대상으로 가장 비참한 거지를 찾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마음이 넓고 자비로운지를 반드시 보여줘야만 하기 때문에, 돈을 주려고 설쳐댈 뿐 아니라 그날 하루만큼은 우리 거지들을 거의 사랑하는 지경에 이른다.

오늘은 루미가 금요일 설교를 하러 오기 때문에 특히나 벌이가 굉장한 날이 될 것이다. 신전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찼고, 안쪽에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은 앞마당에 줄지어 서 있다. 오후가 되면 거지와 소매치기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래서 나처럼 여기로 와서 모두가 군중들 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신전 입구 바로 맞은 편 단풍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공기 속에는 축축한 비 냄새와 멀리 과수원에서 불어오는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섞여 있었다. 나는 동냥 그릇을 앞에다 내려놓았다. 우리 업계 다른 거지들과 달리 나는 적선을 요청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병환자는 가련한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내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내가 얼마나 병들었고 아픈지 호소하면서 질질 짤 필요가 하나도 없다. 내 얼굴을 슬쩍 보기만 해도 백마디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호소력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내 얼굴을 드러내고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한 시간쯤 앉아있자니 동전 몇 개가 그릇 안에 떨어졌다. 다 싸구려 구리 동전들이었다. 나는 금화를 바라고 있었다. 태양과 사자와 새로 돋은 달의 상징인 금화. 알라딘 케이쿠밧이 통화법을 느슨하게 풀어준 이후에 이탈리아의 플로린 금화는 말할 것도 없고 알레포의 지방장관들, 카이로에 파티마 왕조 통치자들, 바그다드의 칼리프(이슬람 국가 지배자)가 발행한 모든 동전들이 유효하다고 선언되었다. 콘야의 통치자들이 제각기 다른 그 돈들을 다 허용했으니, 콘야의 거지들도 그것들을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나의 무릎 위에 동전들과 함께 떨어진 마른 낙엽 몇 개가 보였다. 단풍나무가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몰든 나뭇잎을 떨구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자 낙엽들이 동냥 그릇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나무가 나에게 적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이 단풍나무와 내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되어 이파리를 떨구는 나무의 모습은 나병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는 벌거벗은 나무였다. 피부, 장기들, 얼굴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날마다 내 몸의 각 부분들이 나를 버리고 간다. 게다가 나에게는 단풍나무와 달리 다시 꽃을 피울 봄이 오지 않는다. 한번 잃으면 영원히 잃게 된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 그들이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내게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전을 던져주면서 내게 눈길을 주는 찰나, 내 몸에서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즉시 시선을 돌린다. 마치 나와 눈길이 맞닿기만 해도 병이 옮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나를 보는 공포와 혐오의 눈빛은 도둑이나 살인자를 볼 때보다 더하다. 사람들은 흉악범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놈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나는 더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죽음이 파먹어 들어가기 시작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죽음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 끔찍하게도 추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뒤쪽에서 커다란 동요가 일었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신다! 그분이 오고 계신다!”

과연 루미가 오고 있었다. 황금 잎사귀와 섬세한 진주로 수를 놓아 장식한 호박빛의 정교한 카프탄을 입고서 우유처럼 하얀 말 위에 올라타 꼿꼿하고 충만하고 지혜롭고 고귀한 모습으로 길게 늘어선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카리스마와 자신감이 후광처럼 빛나는 루미의 모습은 학자라기보다는 위대한 통치자―바람과 불과 물과 땅의 지배자—처럼 보였다. 심지어 하얀 말도 자기 등에 태운 존재의 위대함을 알고 있다는 듯 바르고 굳건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릇에 있던 동전들을 주머니 속으로 옮겨 넣은 다음 얼굴이 반쯤 드러나도록 천을 머리 위로 감아 올리고는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자리를 찾기는커녕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병환자의 딱 하나 좋은 점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언제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병환자 옆에 앉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루미의 음성이 긴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 힘차게 올라가며 울려퍼졌다. “우주의 광대함을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작고 의미 없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나의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한계 속에서 나는 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때때로 만나게 되는 질문입니다. 오늘 저는 설교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려 합니다.”

루미의 두 아들은 맨 앞줄에 앉아있었다. 준수한 외모의 첫째 아들, 술탄 왈라드는 모두가 말하듯이 세상을 떠난 자기 엄마를 닮았고, 둘째 아들 알라딘은 호기심 가득한 비밀스러운 눈과 생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아들 모두 자기 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아담의 자손들은 산과 하늘도 짊어지지 못할 위대한 지식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래서 쿠란에 이렇게 씌어있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늘과 땅과 산들에게 세상을 다스려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두려워하며 거절하였다. 오직 인간만이 그 임무를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 영예로운 자리를 맡은 우리 인간은 신의 뜻을 이루는 일에 어떠한 타협도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교육받은 사람만 낼 수 있는 독특한 모음의 발성으로 루미는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은 저 높은 하늘 위 보좌에 앉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주 가까이 계신다고. 그리고 우리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고통을 통해서라고.

“여러분은 항상 손을 쥐었다 폈다 하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손은 마비된 상태일 겁니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현존(現存)은 매순간 일어나는 그 수축과 확장 속에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새의 날갯짓처럼 서로 협응하면서 균형을 이룹니다.”

나는 처음엔 루미의 그 이야기가 좋았다. 기쁨과 슬픔이 새의 양 날개처럼 서로 의지한다고 생각하니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곧바로 어떤 원통함이 내 목구멍을 치받쳐 올라왔다. 루미가 고통에 대해 뭘 알지? 저명한 인사의 아들이자 부유하고 지체높은 가문의 상속자로서, 삶은 그에게 마냥 아름답기만 했는데? 물론 그의 첫 번째 아내가 죽긴 했지만, 그는 진짜 불행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나 최고의 학자들에게 교육받고 항상 사랑받고 칭찬받고 존경받으며 살아온 그가 감히 고통에 대해 설교를 해?

이 세상에 루미와 나의 처지보다 더 큰 간극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 가슴은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 신은 어째서 이렇게 불공평한가? 신은 나한테는 가난과 질병과 비참함을 주고, 루미에게는 부와 성공과 지혜를 줬다. 그의 고결한 명성과 빛나는 품위는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이 도시의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내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혐오감이 들까봐 내 얼굴을 가릴 때, 루미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귀한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그가 만일 내 처지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루미는 자기처럼 완벽하고 특별한 사람도 넘어지고 추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단 하루라도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내가 받은 이 삶을 루미가 받았다면 그래도 그는 지금처럼 위대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나의 억울함은 점점 더 치밀어 올랐고,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를 향해 가졌을 존경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통함과 분노로 나는 벌떡 일어서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모두가 들어오고 싶어 안달인 자리를 비워두고 떠나는 나를 군중 속 몇몇 사람이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너무나도 오랫만에 번역을 올립니다. 작년 내내 저의 주된 일인 연극작업이 바빠서 번역을 전혀 진행하지 못했네요. 올해는 좀 더 부지런하게 틈틈이 하겠습니다.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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