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엄마한테 이렇게 본격적(?)으로 편지를 써보긴 처음인 것 같다. 그지?
왜 엄마한테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 졌을까. 요즘 '엄마 생각나는 드라마'가 유행이거든.('폭싹 속았수다'라고 엄마 친구들이 엄마한테 보라고 막 그랬던 그거. 근데 엄마가 귀찮다고 안 본다고 했던 그 드라마 있잖아.) 그거 유튜브로 숏츠가 엄청 뜨는데, 그것만 봐도 눈물 날 것 같아서 나도 안 보고 있단 말이지. 그 드라마 때문에 엄마 생각하는 게 또 유행인 것 같아서, 난 괜한 반감에 엄마 관련된 건 쓰기 싫었단 말이야. 근데도 자꾸 엄마 생각이 나. 그래서 내 나름의 변명인지, 아니면 내 마음 한구석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았어.
지난달 엄마 생일에 내가 진짜 짤막하게 편지 써서 줬었잖아. 그때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마음에 콕 박히긴 했어. 엄마는 감정 표현을 잘 안하는 사람이잖아. 나는 엄마 생일선물도 편지도 되게 급하게 준비해서 줬었는데. 엄마는 그게 또 감동이라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정성스레 써 줄걸. 진짜 오랜만에 쓰는 편지였는데, 그치? 편지 한통 써야지, 생각만하고 아기 키우느라 피곤하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 아빠 오는 날 오전에 급하게 몇 줄 썼었거든. 요즘 자꾸 애한테는 최선이고 엄마아빠한테는 차선인 게 자꾸 마음에 걸려. 그러고 보니 나 매년 엄마 생신 어떻게 챙겼었더라. 애 낳고 나니 작년은 까마득하고 그 전은 더 생각이 안 나. 그래도 엄마 아빠 생신이랑 어버이날은 잘 챙기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나 그래도 엄마 생일선물로 금팔찌 해준 건 쪼금 감동이었지? 아빠 공장 시작한 지 30주년이라고, 엄마 금목걸이 팔아서 아빠 감사패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나 여러모로 놀랐잖아. 일단은 요즘 금값에 아주 놀랐지. 아빠는 결혼생활 대부분 엄마한테 무뚝뚝했고 몇 년 전부터 조금 다정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 10주년인가 20주년 선물로 10돈짜리 목걸이 해준 거라며. 아빠가 그런 액세서리 선물도 할 줄 안다는 것에 놀랐잖아. 그래도 아빠가 엄마한테 고맙고 미안하긴 했었나 보다, 그치? 아무튼 엄마한텐 나름대로 의미 있는 목걸이인데 그거 팔아 감사패 만든다고 해서, 난 또 마음이 좀 그렇더라구. 엄마 목걸이 안 팔아도 될 정도로 내가 잘나서, 덥석 금 10돈 치 돈을 쑥 내밀수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 내가 첫째라 그런가, 집에 대소사 있을 때마다 내가 힘이 못되면 그게 미안하더라.(이런 말 하면 엄마 마음이 안 좋겠지만, 어차피 못 전할 편지일 것 같아 그냥 쓰기로 했어.) 그래서 목걸이든 팔찌든 내가 하나 해주고 싶었어.
생각해 보니 내가 갖고 있는 금목걸이는 다 엄마가 해준 거더라. 엄마가 하나 사주면 몇 년을 그대로 차고 지내고, 또 다른 거 사주면 그걸로 바꿔서 차고 있고 그랬었다. 내가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산지 오래됐더라.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나와 살고부터 지금까지니까. 이젠 엄마랑 같이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더 길어. 돌이켜보면 그게 되게 미안하고 슬퍼. 그래서 엄마가 준 목걸이가 항상 부적 같았어. 엄마 같았어.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다녔던 것 같아. 아무튼 나도 엄마한테 하나 해주고 싶었어. 엄마 10돈짜리 목걸이 팔아버려서 내가 다 아쉬웠어. 엄마, 근데, 어휴. 요즘 금값 너무 비싼거야. 금은방 갔는데 14k 팔찌 하나 하려니까 돈백이 그냥 넘는거야. 더 멋들어진 거 사주고 싶었는데, 적당한 거 샀어. 그것도 괜히 미안해. 그래서 짧게 편지라도 썼나 봐. 아기 낳고 엄마 생각을 엄청 많이 했어. 내 평생 중에 지난 1년 동안 엄마 생각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 근데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오히려 편지는 담백해지더라. 내 마음을 다 담자니, 그 마음을 전달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도 이제 잘 모르겠어.
애를 낳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 난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몰랐어. 그냥 평범한 엄마라고 생각했어. 근데 결혼하고 한서방이 자꾸 우리 엄마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그래. 그러고 보니 나 엄마랑 한번 싸운 적도 없는 것 같아. 내가 엄마한테 화내는 건 일방적이고, 엄마는 나한테 항상 미안하다 그랬잖아. 난 엄마가 진짜 다 잘못하고 뭘 몰라서 나한테 미안하다 말하는 줄 알았어. 근데 내가 딸을 낳아 키워보니, 내 딸한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매일 생각하다 보니, 이제 엄마를 조금 알 것 같아. 내가 세상살이 힘들어 휘청이는 거 엄마한테 다 분풀이할 때마다, 딸이 힘든 그거 다 어떻게 해줄지 몰라서 마냥 미안했다는 거. 엄마 나한테 맨날 그러잖아. 엄마가 못나서 미안하다고. 나 평생을 세상 제일 만만한 게 엄마라고 엄마한테 다 쏟아붓고 살았는데, 그거 생각하니 이제야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단 말도 안 나와. 엄마는 어떻게 나한테 평생을 힘들단 소리 한번 안 하고 살았어? 엄마는 어쩜 그렇게 짜증 한번, 화 한번 내지 않고 그렇게 우리 키웠었을까. 엄만 항상 혼자 집어삼켰던 것 같아. 힘든 것도 기쁜 것도. 누구한테든 말하면, 힘든 건 누워 침 뱉기일까 봐, 기쁜 건 남들에게 괜히 시샘받을까 봐. 힘들어도 안 힘든 척, 기뻐도 적당히. 엄마, 난 힘든 건 엉엉 울고, 기쁜 건 자지러지게 웃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그러고 있는 것 같아.
사실은 나, 엄마 응급실 갔었단 이야기 듣고 엉엉 울고 싶었잖아. 그러게 엄마가 그 날 저녁에 식은땀 흘릴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했어. 엄마는 항상 강철 같은 사람이니까. 한 번도 우리 가족이 엄마 걱정해 본 적 없으니까. 그렇게 불안해서 밤에 응급실 찾아갈 정도면 나한테도 이야기해 주지 그랬어. 오죽하면 아빠도 손을 벌벌 떨었다며. 나도 다음날 되어서야 엄마 아팠다는 이야기 듣고 무서워서 엉엉 울고 싶었어. 근데 눈앞에 2살짜리 아기도 있고, 환갑 넘은 부모님도 있고, 내 나이도 있고. 눈물이 안 나오더라. 엄마가 아팠다는 것에 대한 슬픔도 무너짐도 티를 내지 못하겠더라. 이 말을 전하면 엄마는 내가 대견하다 할까 안쓰럽다 할까. 아마도 엄마는 대견해하고 아빠는 내심 안쓰러워하겠지. 엄마는 현실적이고 아빠는 감성적이니까. 쓰다 보니 별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지네.
엄마, 여행은 잘하고 있어? 한서방이 그러더라. 일주일 동안 손녀 봐주고, 남편이 벌여놓은 텃밭에서 하루 일해주고. 그러고 다음날 비행기 탔을 때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분 좋겠냐고. 진짜 그럴 것 같아. 그리고 그랬을 엄마 생각하면 나도 기분이 좋아. 난 엄마가 이렇게 여행 좋아하고 외향적인 사람인 줄 몰랐잖아. 나 서른에 불쑥 어학연수 가겠다고 일 년 동안 해외로 나갔을 때, 내가 누구 닮아 그랬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딱 엄마 닮아 그런 거였네. 난 엄마 여행 다니는 거 너무 좋아. 여행 많이 다녀봐서 60대 초반 아줌마들끼리만 여행 다니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 엄마 친구들께도 너무 감사해. 아빠가 평생을 일하는 거 힘들다고 벅차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 여행도 한번 제대로 못 가봤잖아. 그리고 그게 민망해서인지 아빠는 지금도 여행 한 번 안 따라가려고 하고. 엄마도 괜히 아빠 눈치 보여 콧바람도 못 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씩씩한 아줌마이자 할머니라서 내가 다 기뻐.
편지를 쓰다 보면 그간 못다한 평생의 거창한 말들이 다 쏟아져 나올 것 같았는데, 막상 써보니 그렇지도 않네. 민망하다. 오늘은 괜히 엄마 생각이 났어. 엄마가 여행 가고 나니 어쩐지 한국에 남아있는 우리 가족이 세상에 덜렁 셋만 남은 기분이었어.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아빠도 생각나고 , 이제 막 자취하러 나간 동생도 생각나고. 며칠 되지도 않는 여행인데, 이상하게 엄마 빈자리가 커서 괜히 우리 가족 단톡방에도 말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래. 엄마도 신경 쓰여 괜히 단톡방에 더 얘기하는 거지? 다 알아.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한다고 엄마한테 말을 못 한 게 후회스러운데도, 이제 와서 엄마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쑥스럽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하려나 싶으면서도 입이 잘 안 떨어져.
자주 갈게. 아기 데리고도 자주 갈게. 또 쓸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