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 이야기 [1편]

※ 주의 : 무서운 이야기가 포함

by 이현

※ 주의 : 아래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읽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구분선까지 이야기를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 나름대로 공포스토리 ]

출산 후 몸을 추스르고 육아를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느 괴담프로그램에 제보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면서 겪은 제법 무서운 경험들 중 하나였다. 겪으면 무서운 이야기지만, 글로 쓰자니 그냥저냥 이상한 이야기가 될 것 같기도. 아기도 남편도 잠들고, 혼자 앉아 곰곰이 그때를 떠올려 보다 나도 무서워져서 거실등을 켜고 온 참이다.

이 이야기는 출산 후 병원에서 겪었던 이야기이다. 나는 제왕절개로 수술을 했던 터라 3일은 와상환자로 지냈었다. 걷는 연습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는데, 수술 후 통증이 만만치가 않아 소변줄을 빼자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도 하루를 더 미루고 누워만 있었다. 이상한 경험은 누워 움직이지 못하던 며칠 중 이튿날부터 시작됐다.

병실은 1인실이었다. 긴 복도의 양쪽으로 늘어져있는 20여 개의 병실들 중 가장 끝에 있는 병실이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 화장실을 지나쳐 짧은 복도를 들어오면 방 앞에 커튼이 쳐져있다. 커튼을 열어야 방 내부의 침상이 보이는 구조였다. 커튼은 항상 반만 쳐두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데는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침상은 잘 보이지 않도록.

병원에 입원한 지 이튿날 밤 새벽. 누군가가 커튼을 살짝 밀고 들어와 나를 빼꼼히 보았다. 나는 잠결에 '환자 체크하러 온 간호사인가?' 생각했다. 검은 그림자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다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보호자 침대에서 잤던 남편에게 물어봤다.

"밤에 간호사가 체크하러 들어오지 않았어요?"

"글쎄. 나도 피곤해서 깊이 자느라 몰랐어요."

'간호사가 아무런 처치 없이 그냥 육안으로 확인만 하러도 들어오나?'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나도 병원에 입원해 본 건 처음이라 그러려니 지나갔다.

사흘째 밤. 까무룩 잠든 밤인지 새벽인지, 검은 그림자가 다시 들어왔다. 어제는 커튼 너머로 상체만 살짝 기울여 침상을 들여다봤는데, 이번에는 침상 발치에 서서 나를 쳐다봤다. 이상한 기분에 잠이 번뜩 깨었다. 배를 찢은 통증에 몸을 일으키진 못하고 고개만 살짝 들어 발치를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잠결에 누가 들어왔다고 착각을 했나.'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깨웠다.

"OO아. OO아!!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나는 어리둥절해서 일어났다가 헉헉대는 내 숨소리에 놀랐다.

"왜 그래요? 나 왜 깨웠어?"

"자기, 가위눌렸었나 봐요. '하지 마, 하지 마' 하고 소리를 질렀어. 괜찮아?"

정작 잠에서 깬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날 검은 그림자를 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었고, 남편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던 참이었는데, 내가 끙끙대는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깨어 나에게 달려왔다고 했다. 나는 그저 남편이 갑자기 깨워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때까진 공포감은 크게 들지 않았기에 그대로 다시 잠을 청했다.

나흘째 밤. 아무 생각 없이 까무룩 잠든 새벽. 다시 검은 그림자가 발치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을 느꼈다. 눈을 번쩍 뜨고 공포감에 몸서리쳐졌으나, 아직도 복부 통증에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바로 누워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끙끙대다 자고 있는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자기!! 자기!!! 불 좀 켜줘요!!"

남편은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냐며 달려가 불을 켜주었다. 나는 또 가위에 눌렸노라고, 너무 무섭다고, 미등을 켜고 자야겠노라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며 미등을 켜고 물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다음날 병원 원무과에 가서 병실을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다. 원무과 직원은 실례지만 병실을 옮기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우리는 변명할 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아 순순히 이야기를 했다.

"가위에 자꾸 눌리고 이상한 것이 보여요. 그 병실에 있기가 무서워요."

"아, 그러셨어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남은 병실이 조금 더 비싼 S급 병실밖에 없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A급 중에서도 가장 좋은 병실을 드렸었어요. 그래도 옮기시는 것에 동의하세요?"

병실에 대한 건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당장 다른 병실로 가고 싶었다. 우리는 바로 병실을 이동하고 싶노라 전달하고 한 시간 후 짐을 싸서 다른 병실로 갔다. 옮긴 병실에서는 한 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몇 천년을 이어온 인류. 거기에는 당연하게도 종의 번식, 출산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으므로. 많은 여성들이 겪어온 보편적인 경험이었고 나만의 겪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기에. 나의 출산 스토리를 늘어놓자니 너무 지루할 듯한 기우가 먼저 들었다. 그래서 스토리 중 스페셜하고도 흥미진진할만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보았다. 이제부터는 지리한 이야기들을 풀어보겠으나, 찬찬히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산은 예정일보다도 더 늦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제왕절개를 할 생각이면 수술 날짜를 미리 잡자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일정이 있으시니, 수술이 가능한 날짜들을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주셨다. 나는 태어나서 어디 뼈가 한번 부러진 적도, 살이 째진 적도 없었다. 큰 일로 병원 신세를 져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수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묵직하고 부담감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동그라미 쳐진 캘린더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며, 다음 진료 때 수술 날짜를 말씀드리겠노라 했다.

나는 천주교, 남편은 무교이지만 한국에 뿌리 깊은 무속신앙을 무시하지 못하고 용한 사주 명리학자를 찾아가 출산일을 택일하기로 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은 엄한 데 가서 사주를 보거나 가벼운 타로점만 보아도 주일에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나일론 신자이지만(매우 반성합니다) 나라고 대단히 사주를 믿는 건 아니었다. 그저 종종 친구들을 따라 심심풀이로 신년운세를 보러 가는 정도였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사주를 보러 가면 상담사들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묻고 책을 뒤적여 여덟 자를 종이에 적은 후 풀이를 해 준다. 사주는 통계학이라더니 다들 나에 대해 풀어내는 사주팔자의 내용이 항상 비슷했었다. 그래서 출산일을 택일을 해 두고 싶었다. 내 아이도 언젠가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사주를 보러 갈지도 모르는데, 살다가 무언가 잘 풀리지 않으면 운세 어플이라도 뒤져볼지도 모르는데.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말들이 이왕이면 좋은 얘기들로만 가득했으면 싶어서였다. 그래서 길하다는 날을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받아왔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아가는 자기가 원할 때 자궁을 박차고 세상 빛이 궁금하노라 신호를 한다. 받아온 날짜보다 3주나 일찍 출산을 했더랬다.


이사를 한 지 5일 만에 출산을 했다.

우리 부부는 내가 미혼일 때 살던, 작은 18평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큰방 하나, 작은 방 하나, 작은 거실 겸 부엌이 있는 공간. 여자 혼자 살기에는 차고 넘치는 곳이었지만, 성인 두 명이 살기에는 조금 버거웠고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곳이었다. 출산 예정일인 12월 말을 감안하여 12월 초에 이사를 목표로 집을 알아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빠듯한 계획이었으나, 그때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최대한 빨리 날짜를 잡은 게 그 정도였다.

우리는 30평대의 아파트 중 여건에 맞는 전셋집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래도 짧은 기간 동안 열 군데 정도는 둘러보지 않았나 싶다. 겨울은 부동산도 비수기인지, 욕심껏 신축아파트를 대여섯 채 알아와서 보여주던 부동산 여사장님도 계셨다. 남편이 퇴근한 저녁시간, 만삭인 배를 위로 올려 잡고 찬공기를 가르며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열심히 오갔었다. 이 근방의 신축 아파트들은 묘하게 천장이 낮은 느낌에다 팬트리가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어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계약할 집이 없다고 통보했을 때, 그 살갑던 여사장님이 휑하니 남편의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이 아직도 조금 맘에 남아있다. 허허. 우리는 결국 오래된 구축 아파트이지만 앞 뒤 전망이 탁 트여, 몸을 벌떡 일으켜 허리만 펴도 숨통이 트이는 그런 아파트를 찾아냈다.

계약한 지 2주 뒤, 월요일에 이사를 했다. 만삭이라 배는 남산만하게 불러 한발 한발 뒤뚱이며, 여기저기에서 "사모님, 이건 어디에 둘까요?"라는 말들을 따라다니면서 헉헉댔다. 한국말이 조금 어눌한 조선족으로 보이는, 게다가 숫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삿짐을 옮기던 키 큰 형님이 가만히 이삿짐 박스를 단단하게 접어 거실 한가운데에 놓고 그 위에 합판을 깔아주었다.

"힘들어 보이는데, 여기 좀 앉아계세요."

이삿짐을 옮기느라 바쁜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따뜻한 배려라니. 합판 위에 가만히 앉아 분주한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정말 혼자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5-6년을 기거하며 페인트칠도 직접 하고, 도배 벽지도 고심하여 방 하나는 짙은 초록색으로 만들었던 내 아지트였다. 작은 아파트에 작은 냉장고며 에어컨 등을 오밀조밀 옮겨가며 배치하고, 티비는 일부러 들이지 않고 책장을 거실 벽면 가득 채웠으며, 작은 전구들이 가득한 조명도 열심히 달아 매일이 반짝이던 집이었다. 꽤나 정이 들었었다. 그 추억이 많은 아지트를 떠나는 것, 자유롭던 솔로 생활을 청산한 것에 대한 실감과 묘한 아쉬움. 반면에 30평대의 더 큰 집으로 이사한다는 기쁨, 나의 남편과 가정이 생긴 것에 대한 든든함 등 다양한 감정들이 스쳤다.

만삭 임산부의 이런저런 요청을 이삿짐센터 용역아저씨들과 이모님은 가만히 다 들어주며, '손 두 번 안 가게 지금 다 얘기해요. 배가 이렇게 불러서 나중에 다시 정리하려면 힘들어요.' 하셨다. 배려의 말씀이 머쓱하여 고개가 저절로 떨어지며 '감사합니다.' 했다.

살뜰한 이삿짐센터 직원분들 덕분에 나름대로 이삿짐이 정리가 되었으나, 공간에 맞는 후정리와 배치, 그리고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아기 용품을 준비하는 일은 끝이 없었다. 아기와 이 집에 함께 살기까지 3주의 시간이 겨우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고민은 깊고 실행은 늦었고, 실행하면서도 다시 고민했다. 아기용품이 정리된 엑셀 파일을 몇 개의 블로그에서 공유받았다. 그것들과 블로그 후기 등을 꼼꼼히 읽고 정말 필요한 제품인지도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다시 정리를 했다. 아기용품이 종류별로 엑셀 시트(sheet)만 대여섯 개였다. 이사도 했으니 이제 찬찬히 하나씩 구매해 나가야지 했다.

목요일에 커다란 책장 3개가 이케아에서 도착했다. 설치비 몇 만 원을 아끼자고 조립되지 않은 가구를 덜렁 주문했더랬다. 혼자 살 때도 이런저런 가구들을 혼자 조립해 본 경험이 많았던지라, 남편과 둘이서 책장 몇 개 조립도 못할까 싶었다. 회식 후 귀가가 늦었던 남편과 새벽 한 시까지 둘이 끙끙대며 무거운 책장 3개를 완성하여 서재에 들여놓으며 처참히 후회했다. 조립비 3만 원은 절대 비싼 것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3만원 더 주고 조립서비스도 요청을 할 것을. 그날 밤은 그대로 피곤함에 뻗어 잠들었다.


새벽 3시, 생리통 같은 은근하고 묘한 복통에 살짝 잠에서 깨었다. 초산이었던지라 그게 진통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사하느라 며칠 무리해서 배가 당기나보다 했다. 그전에도 자궁이 커지느라 배가 당기는 느낌이 자주 있었고, 뱃속 아기의 발길질에 복통은 조금씩 있었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침 7시, 진통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걸 느끼고 가진통과 진진통에 대해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했다. 출산예정일은 3주나 남았었으므로 가진통에 무게를 두고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했다. 아침 8시, 출근하는 남편에게 혹시나 출산을 할 수도 있으니 염두에 두고 있으라 일렀다. 그러면서도 택일하여 받아 둔 출산일이 아까워 진통을 참아보려 애썼으나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실제로 이 날 출근을 해서 오늘 아기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일찍 집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회사에 말해두었다고 한다. 오전 9시, 계속되는 복통에 진진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출산을 대비하여 음식과 물을 먹지 않기로 했다. 자연분만은 여전히 자신이 없었고, 수술을 하려면 최소한 6시간 이상은 금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후 한 시까지 혼자 침대에서 이리저리 배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통증은 더 잦아졌고 강해졌다. 한시에 청소 여사님이 오셔서 3시간 동안 청소를 다 하실 때까지도 이불속에서 계속 뒹굴어가며 열심히 고통을 참았다. 청소 여사님이 매우 살가운 분이어서 항상 서로 웃으며 안부를 묻고 수다도 떨곤 했는데, 그날따라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게 왜 이리 짜증이 나던지. 은근히 짜증이 비쳤던 것도 같아 아직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남아있다. 오후 4시, 진통이 더 잦아졌다. 진통주기 체크 어플로 통증이 오는 간격을 체크했다. 5분 주기로 진통이 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그 와중에도 수술을 하면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샤워를 하고 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살면서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힘든걸 잘 참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었다. 그런데 출산 진통을 이렇게나 열심히 참다니. 진통에 배를 부여잡고 잠깐 서있다가, 진통이 잦아들면 열심히 씻었다가 다시 배를 부여잡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매우 대견하다 생각했다. 샤워를 마치고 점점 심해지는 진통에 이것저것 챙길 여유가 없어 간단하게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 택시를 불렀다. 오후 4시 반,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남편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쳤으나 일단 택시를 타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진통이 너무 심해 택시를 불렀노라고, 어차피 주차하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나 먼저 병원에 가있겠다고. 나는 배가 아파 당장 수술실로 가겠으니 병원으로 운전해서 따라오라고. 집에서 병원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혼자 택시에 내려 꾸역꾸역 수술실 앞까지 올라갔으나 진통이 매우 심해진 상태였다. 수술실 앞에서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이런저런 원무과 접수를 끝낸 후 대기실 앞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수술대기실로 들어가자 커튼을 벽으로 두고 몇 명의 산모가 누워있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모든 옷을 탈의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기다리라고 했다. 그동안에도 진통이 계속됐다. 내가 겪은 진통의 느낌은 심한 생리통 같은 느낌에 자궁이 수축 이완되며 생기는 배를 쥐어짜는 듯한 복통이었다. 나는 배가 아파 좌로 우로 뒹굴고 있는데 옆에 누운 다른 산모가 태연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묻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 전 이런저런 처치가 무서운데 많이 아프냐는 질문이었다. 보아하니 그쪽도 제왕절개 날짜를 잡아두고 온 모양이었다. 진통에 뒹굴며 그 산모가 어찌나 부럽던지. 그 낭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간호사는 내진 후 자궁문이 1~2센티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열린 문틈의 크기와 진통은 비례하는 건지 배는 점점 더 아파왔다. 수술실에는 언제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일분일초라도 빨리 마취주사를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반복되는 진통을 꾸역꾸역 참아내는 동안, 시간이 가는 듯도 안 가는 듯도 했다. 간호사가 와서 팔에 링거 바늘을 꽂고 소변줄을 꽂고 이런저런 사전 처치를 마친 후에도 한참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저녁 6시가 되었고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드디어!!!

침상에 누운채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남편이 서 있었다. 통증이 지속되는 중에도 혹시나 남편이 걱정할까 봐, 또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님에게까지 말이 전달이 될까 싶어 웃으며 "나 다녀올게!" 인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진통이 시작된 지 15시간 만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고부터는 더욱 강해진 진통 탓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척추 마취를 해야 하니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보라고 했다. 부른 배 때문에 허리가 더 말리지 않았다. "더, 더 무릎을 당기고 몸을 말아보세요." 하는 재촉에 나는 뱃속에 있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제일 두려움에 떨었던 척추 마취는 오히려 아무 느낌이 없었다. '또 한 고비 잘 넘겼구나.' 생각하며 수술대에 올랐다. 매주 보던 산부인과 선생님이 들어와 좀 어떠냐고 물으시며 하반신에 감각이 있는지를 체크했다. 마취 덕에 진통의 통증은 사라졌고 그때부턴 그저 수술실이 너무 추웠다. 간호사가 "좀 주무시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수면마취제 투여해 드릴게요." 하셔서 "네."대답하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너무 떨려 잠에서 깨었다. 상반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뻗은 양팔까지 달달 진동이 있었다. 잠결에 "아직 수술 중인가요? 너무 추워요." 하니 간호사가 아직 수술 중이라며 수면제를 한번 더 투약해 주었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호사가 아기가 나왔다며 나를 깨웠다. 아기가 세차게 울었던가, 그저 놀라 흐엥흐엥 하는 소리만 내고 있었던가. 간호사는 내 왼쪽에 아기를 들어 잠깐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가, 나오느라 고생했구나.' 작고도 작은 내 아기가 내 시선을 잠깐 스치고 다시 간호사 품으로 들어갔다.

"이제 수술 마무리 단계예요. 주무시는 게 편하니 수면제 넣어드릴게요."

그렇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수술 끝났으니 회복실로 옮겨드릴게요." 하는 말에 잠에서 깨었다. 수술이 끝나고도 몸의 냉기가 가시질 않아 덜덜 떨어댔다. 간호사는 내 이불속으로 온풍기 바람을 넣어주었다. 십여분이 지나자 몸의 떨림도 겨우 조금씩 멈추었다.

아기는 저녁 7시 50분쯤 아빠를 만났다고 한다. 간호사가 아기가 건강하게 잘 태어났음을 아빠에게 확인시켜 주고 아빠와 같이 사진을 찍어준 다음 곧장 후처치를 하러 아기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아기가 나오고도 나는 한참을 더 수술실에 있었다고 한다. 아기가 나왔으니 금방 마무리될 거라고 했는데 걱정이 될 만큼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000님이 수술 후 회복 중입니다'라는 문자를 받은 것이 밤 9시 30분이라고 했으니 수술실에 3시간은 넘게 꼬박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기를 낳으러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남편에게 듣고, 그 길로 아기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옷가지와 이불, 손수건 등을 바리바리 챙겨 집을 나서셨다.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은 올라오시는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리셨다. 소식을 듣고 바로 채비하여 오셨다는데도,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는 밤 10시 반이었다. 코로나는 진작에 한풀 꺾였지만, 병원에서는 아직 그 이유로 면회가 안된다고 했다. 부모님이 가져오신 아기짐은 남편이 받아두고, 남편이 나 대신 인사를 드렸다. 아기도 산모도 건강하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나는 남편이 걸어준 영상통화로만 부모님과 인사를 했다. 나는 한 번도 어디가 아프다 힘들다 징징대본 적이 없는 우리 집 장녀였다. 영상통화로 비치는 부모님과 동생 얼굴에 걱정이 스칠까, 수술 후 겨우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마음 아프고 죄송스럽게도, 멀리서 올라오신 우리 부모님은 딸 얼굴도 보지 못하시고 다시 고향 집으로 내려가셨다. 나는 이런저런 약기운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가 통증에 깨어 패인부스터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부모님이 다시 집에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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