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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소리 나는 구두가 필요하다.

복직 전일

by 행복해지리






9년째 신는 플랫슈즈 밑창이 벌어져 구입한 매장에 as를 맡기러 갔다.

거금 23만 원이나 들여서 산 브랜드 구두니 as를 실컷 받을 수 있어서 좋다.

해마다 방문해서 벌어진 밑창과 얕은 굽을 수선 하곤 했는데 그동안 다른 구두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목적한 바에만 집중하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as 받을 구두는 내밀지도 않고 바로 진열대로 시선이 꽂혔다.

갑자기 또각또각 소리 나는 구두를 신고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을 핑계로 시작한 1년 간의 육아 휴직이 끝나가고 있었고, 새로 발령받은 낯선 곳으로 출근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225mm는 매장에 없을 때가 많은데 이날은 신어볼 수 있었다.







바로 결제했다.

나에 대한 소비에 인식한 편인데 그날은 남다른 단력을 보였다.

또각또각 소리 나는 구두가 필요했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서 내 긴장감을 감추고 싶었다.


새로 발령받은 낯선 학교,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 이름조차 모르는 동료 선생님들까지.

MBTI 가 I로 시작하는 내게 이런 환경은 부담 그 자체다.

앞서 학교에서 휴직을 포함해 9년을 근무했던 터라 익숙함을 넘어 권태스러울 지경이었는데 간만에 경험하는 낯설음은 설움이 되기도 했다.


공식 복직은 3월 1일이지만 새 학기 준비와 연수일정으로 이미 여러 번 출근을 했었다.

한 번은 오전 연수를 받고 오후 일정까지 잠시 짬이 생겨 차 트렁크에 두었던 개인짐을 챙겨 왔었다.

후다닥 책상 정리를 하고 오후 협의회를 마치고 퇴근하려고 하니 트렁크가 아~ 하고 턱 빠지게 입을 벌리고 있는게 아닌가.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없어질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민망했다.

아는 사람 없는 곳이라 먼저 퇴근하면서 알려줄 이가 하나도 없구나 싶어 시리 서러웠다.

익숙한 곳이었다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트러플 소심이에게는 별게 다 서러울 포인트가 된다.


오후 내내 민망했을 내차



개학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있으니 더욱 긴장한 티를 내지 않고 프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불편한 교복을 입고 낯선 고등학교에 들어선 아이들,

대입이라는 인생의 큰 산 앞에서 막막한 아이들에게 든든히 기댈 수 있는 담임이 되려면 내 긴장감은 감춰야 한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교실로 향할 것이다.

작은 키는 굽으로 커버하고 낯선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한 심리는 또각또각 소리가 덮어줄 거다.


산야가 봄단풍으로 물들 때쯤 돼야 조금씩 긴장된 마음이 해제될 다.

아마도 우리반 아이들도 티내지 않지만 1학년 8반에 소속감을 느끼고 교실에 들어설 때 편해 지려면 비슷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 적응을 앞당기려면 내 역할이 중요하다.

32명 아이들이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황금돼지띠 아이들이라 다른 학년보다 인원이 많단다.) 1학년 8반 교실에서 1년 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내 학급경영 목표다.

그러기 위해 또각또각 경쾌한 구두소리가 필요하다.

또각또각 리듬에 맞춰 분주히 교실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살펴야하니깐.





이렇게 응원이 필요한 순간 남매와 함께 부르는 주문과 같은 노래가 있다.

가사가 은근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노래다.


♪의외의 띵곡을 소개한다. 가사에 집중하시길!

포켓몬스터 1기 오프닝 모험의 시작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걱정 따윈 없어 (없어)

내 친구랑 함께니깐

처음 시작은 어색할지도 몰라~ (몰라~ 내 친구 피카츄)

날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어

누구라도 얕보다간 큰일 나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함께 있어

약할 때나 강할 때나 피카츄가 함께 있어

너와 나 함께 라면 우린 최고야


언제 언제까지나 진실한 마음으로

언제 언제까지나 하나가 되어

언제 언제까지나 최고가 되는

언제 언제까지나 그날을 위해

피카츄

피카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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