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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07. 2023

16년 탄 차를 보내며 또다시 마주한 속물근성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에게 아들이 수줍게 손인사를 건넨다. 

난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 아이보다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아들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 태권도 같이 다녀. 형제가 다 우리 태권도야. 근데 엄마 벤츠는 좋은 차야? " (아들 갸우뚱)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이스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아들이 말을 이어갔다. 

"쟤가 '우리 차는 벤츠다~' 하고 자랑했거든. 많이 좋은 차야?"

 

"좋지, 비싼 차가 좋은 차라면 좋은 차지. 좋은 차니깐 비싸게 파는 걸까? 그럼 좋은 차가 맞나?"


횡설수설하는 사이에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한 대가 올라왔다. 

우리 아파트는 극 서민의 아파트라서 외제차가 몇 대 없다. 

아마도 그 아이네 차가 맞을 거다. 

고급 세단과 걸맞은 까만색이었다. 


'저 차가 그 친구네 차 인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내 차에 올랐다. 

2008년식 16년 된 준중형 세라토.






아침마다 지하주차장에 가면 내 차에는 항시 이런 명함들이 꽂혀있었다. 옆에 차는 없던데




쎄라 ! 

내 차 애칭이다. 

차종이 세라토 라서 앞글자 따서 붙인 단순한 이름이지만 십수 년간 아침마다 불렀던 이름이다.

안녕 세라야 잘 잤어?


1,250만 원에 구입해서 20대, 30대, 40대를 함께 했다. 

16년을 탔으니 내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차와 이을 수 있다.  


희 (喜) 10년 연애하고 결혼하는 우리 커플을 위해 하객 400명이 함께한 내 생에 최고의 축제, 결혼식. 그날 쎄라는 웨딩카가 되어주었다. 좋은 날 고르다 보니 5월의 신부가 되었는데 당시 기간제 교사 n개월차였던 남편이 학기 중 휴가 내는 것을 꺼려해서 신혼여행을 방학을 미뤘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었다. 허니문을 가지도 않았는데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고 신혼여행을 빡쎈 배낭여행으로 계획했던 우리는 일정이 임신초에 위험하겠다 싶어서 눈물을 흘리며 위약금까지 내고 취소했었다. 대신 아이 낳고 10년 후 가자고 했었고 현재 12년가 차다) 대신 주말을 이용해 웨딩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한껏 멋을 낸 쎄라는 유난히 신나게 달렸더랬다.  


노(怒) 3년 정도 되었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남편이 지금 내 아들 나이쯤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혼자 힘으로 남매를 키우셨다. 본인 자녀를 키우는 동안에는 살기 바빠 자라는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손자손녀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는 말씀을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 어머님은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하시는 분이다. 지랄 맞은 며느리가 까탈스럽게 굴어도 '네가 맞는 거겠지' 하며 맞춰주신다. 허나 며느리만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억하심정들이 쌓인다. 집에서는 풀 수 없으니 차키만 챙겨서 나와버린다. 그래봤자 멀리 가지도 못하고 가까운 한강에 가서 강바람에 화를 실어 보내고 온다. 그것만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벼워져있었다.  


애(哀)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라 생각했다. 딸 셋을 위해 희생하고 내어주면 살았던 울 엄마. 그녀가 그녀의 엄마를 보내주던 날 목놓아 엄마를 외치며 울던 모습을 보고서야 당신도 누군가의 딸이었었구나 생각하고 뒤늦게 미안했다. 납골당에 할머니를 모셔놓고 다 같이 탔던 장례버스에서 내 차로 옮겨 타고나서 맥이 풀렸는지 엄마는 깊게 잠이 들어버렸다. 자신의 엄마를 보낸 허전함 때문인지, 슬픔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 인지, 며칠을 이어진 장례식으로 인한 피로 때문인지 그날 차 뒷자리에 기대 잠든 엄마는 평소보다 더 작아 보였다. 그날 처음으로 내 차가 작아서 앉는 자리가 불편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락(樂) 차를 운전하며 듣는 음악은 내게 꽤 큰 즐거움이었다. 처음 차를 구입했을 때 차에 USB를 꽂아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신기해들 하셨다. 그 당시 USB는 용량도 적어서 음악이 20개 남짓 들어갔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같은 음악이 반복되곤 했다. 덕분에 지금은 특정 음악을 들으면 그 노래 들으면서 여행했던 그 동네가 떠오른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들으면 11월의 영월이, 이효리의 '미스코리아'를 들으면 뜨거운 여름 군산 생각나는 식이다. 쎄라는 나의 음악과, 내 여행의 즐거움이 새겨져 있다. 




 


차가 노후되고 20만 km를 넘기면서 결정을 해야 했다. 

원래 차는 10만 km 주기로 브레이크 패드, 미션오일, 점화 코일, 점화플러그 등등 많은 것들을 교체해야 한다. 목돈이 든다. 워낙 연식이 있는 차, 차값도 얼마 안 되는데 큰돈을 써서 고쳐서 더 탈 것인지, 이 참에 차를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내 출퇴근은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이것도 20~30분에 한 대씩 다니는 전철 시간이 딱딱 들어맞을 때 얘기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는 자차로는 20분이 소요된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집 과의 거리가 아이들 걸음으로 20분도 더 걸리는지라 이른 시간에라도 남매를 등교 시켜놓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차는 필요했다. 

차를 바꾸기로 결정이 났다. 

16년 된 쎄라를 보낼 때가 되었다. 



수출차로 쎄라를 보내주던 날 마지막 동네 한 바퀴 중 
무너진 안개등이 애잔하던 쎄라의 마지막 날 

   

쎄라를 폐차하는 건 마음이 아파서, 수출차 업체로 보냈습니다. 




 


환승연애가 이런 마음인가 보다. 

사뭇 애틋하던 쎄라에 대한 애정은 이틀 후 탁송되어 온 새로운 차에게 고스란히 옮겨갔다. 

중고차였지만 상처 하나 없이 고작 3만 km 탄 차는 새 차처럼 좋았다. 

그리고 왠지 으쓱했다. 

준중형차가 중형차가 되고, 딱 봐도 오래된 고물차가 깨끗하게 멀쩡한 차가 되니 어깨가 좀 펴졌달까

종종 백화점에서 삐까뻔쩍한 차들 사이에 16년 된 쎄라가 껴있으면 괜히 초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우쭐까지는 아니지만 당당한 마음이 들었다. 


경기도에 산다고 말하기 싫어서 움츠려 들었던 속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정말 속물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마음과 마주할 때마다 껄끄러운 것으로 보아 내 속에 양심과 충동은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자기들의 평생을 같이 한 쎄라를 보낼 때 눈물을 보이던 남매는 새 차에 라투(쎄라 두 번째라서 쎄라two, 성 떼고 라투)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전보다 좋아진 다양한 기능을 누린다. 

좋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일 거다. 

내 맘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같은 것이라고 포장하고 싶다. 

차가 좀 커지고, 고물차가 제법 새차 같아져서 좋은거라고. 

겉치레에만 치중하고, 물질을 우선하는 속된 마음은 모른 척 외면하고 싶다.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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