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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15. 2023

나의 첫 메이커 신발

 





15살

그때까지 메이커 신발이라는 걸 몰랐다.

영악하기 못하고 둔한 편이라 남들이 뭘 입고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상표를 말하며 '네 것은 어디꺼야?'라는 물음을 듣고 처음으로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내 것은 동네 5일장에서 산 운동화였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메이커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늘 돈 걱정하는 엄마에게 뭘 사달라고 졸라본 적 없는 K 장녀의 첫 떼였다.

전적이 없어서 였을까.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알겠다고 항복하고 바로 신발을 사러 가자고 나섰다.

예상밖의 순조로움에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우리 동네에 번듯하게 들어선 메이커 신발 가게가 하나 있었다.

프로스펙스!

매장 위치와 인테리어도 기억한다.

한 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맞은편, 다른 가게들보다 훨씬 밝은 조명을 썼고 매장 안이 훤하게 보이는 통유리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메이커 신발 매장에 들어섰다.

매장 직원이 다가와 원하는 걸 골라보라고 했다.

5일장 신발 가게와는 다르게 운동화마다 가격이 붙어있었다.


'아 메이커 신발 비싸구나'


또렷하게 가격이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 신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내 예상을 많이 넘어선 가격이었다.

막상 비싼 가격에 움츠러들어서 고르지를 못했었다.  

쭈뼛거리고 있으니 직원이 몇 개 골라줬으나 여전히 가격이 맘에 걸렸다.

엄마도 선 듯 고르지 못하고 어색한 걸 보니 가격이 부담되는 것 같았다.


"이거"


겨우 하나 골랐다.

엄마도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기본 디자인에 프로스펙스 상표만 그려진 하얀 운동화였다.

그게 가장 저렴했다.

 



 





다음날 하필 비가 왔다.

새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는 날 장맛비가 내렸다.

그래도 첫 메이커 신발을 신고 가니 발이 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발끝에 힘주며 교실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서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으려던 참이었다.

2층집에 사는 부잣집 딸내미 짝꿍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메이커 신발 샀네. 프.로.스.펙.스 구나"


유난히 메이커 이름을 천천히 말했다.

어차피 운동화에 한글로 써 있는 것도 아니것만 그렇게 말하는 저의가 분명 무시라 여겨졌다.  

비를 맞은 새 운동화를 좀 말려서 신발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는데 창피한 마음에 얼른 넣어버렸다.


그 순간 엄마에게 참 미안했다.

정말 큰맘 먹고 사준 메이커 신발을 창피하게 느껴서


그날 집에 와서 젖은 신발에 신문을 구겨 넣어두고 다음날 헌 운동화를 신고 등교했다.

엄마가 등뒤에서 왜 그걸 신냐고 물었을 때 '어제 신발이 젖었어' 라는 핑계를 댔다.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때 내 깜냥은 딱 그 정도였다.






9살 된 딸아이에게 새 신발을 사준 일이 손에 꼽는다.

아주 어려서는 남녀 구분 없이 신어주니 3살 터울 오빠 것을 신었다.

조금 커서 색과 디자인에 호불호가 생긴 이후에는 사촌 언니 것을 물려 신었다.

외동을 풍족하게 키우는 집이라 같은 사이즈 운동화가 두어 켤레, 스니커즈와 크록스까지 종류별 온다.

모두 메이커 신발이다.

덕분에 아이는 웬만한 멀티숍 신발 매장 수준의 선택권을 보장받는다.


"오늘은 분홍색 신을까, 아니다 흰색 신어야지"


아이는 다양성으로 인해 만족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늘 헌 신발을 신기는 것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종종 새 신발을 사러 가자고 해도 아이는 늘 요지부동이다.

신발이 있는데 왜 신발을 사느냐고 단호히 거절한다.


품질도 기능도 흠 없는 신발이 충분히 있음에도 괜히 새신을 신기고 싶다.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 그 시절 엄마 마음을 더듬어본다.

딸 셋을 키우면서 울 엄마도 좋은 거 입히고, 신기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빠듯한 살림이라 늘 마을을 접어놓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70이 가까워진 엄마가 40을 넘긴 딸에게 종종 용돈을 찔러주신다.

 사 입으라고.

그때 접어놓았던 마음을 이제 펼치는 걸까.

그 마음도 모르고 나는 늘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며 뿌리치곤 했다.


섭섭하셨으려나?

다음에는 못 이기는 척 받아와서 메이커 옷 사입어야겠다. (❛ڡ❛)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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