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앞서 알람을 무의식으로 끈 모양입니다.
밥을 새로 해서 유부초밥을 하려던 계획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회로를 돌리며 냉장고를 열었는데 엊그제 먹고 남겨둔 삼계탕이 까꿍 합니다.
뼈를 모두 발라서 넣어둔 그날의 나를 칭찬하며 재빨리 즉석밥을 렌즈에 돌려 닭죽으로 변신시킵니다.
손으로는 주걱을 휘젓고 입으로는 남매를 깨우며 분주히 준비해서 겨우 출근과 등교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빠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신나게 빠빠이를 날리고 뛰듯 제 차로 달려가던 그때 그놈의 차를 발견했습니다.
주차 공간이 아닌 통로에 주차된 그 차는 벽에 바짝 붙이지도 않고 자리를 잡아서 도통 나갈 각도가 나오지 않더군요.
전 운전경력 17년에 무사고 운전으로 주행도 주차도 전혀 불편을 겪지 않는 운전자입니다.
김여사라는 말이 거슬리는 여자 사람으로 제 실력 부족으로 못나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지나가던 8층 아저씨도 '이건 못 빼요. 빨리 전화하세요.'라고 조언하고 퇴장하셨습니다.
계속했습니다, 10분여를
나타나라는 08★★ 차주는 감감소식인데 직원분은 1분도 안 돼 뛰어나와주셨어요.
어찌나 고맙던지요
빠르게 차량 조회를 했는데 아파트에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라 차주 파악이 안 됩니다.
방송을 해서 차주를 찾아보겠다며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되네요.
전화 통화는 한번에 되었는데 뒷차는 배터리가 나가서 어제부터 운행을 못하고 계신다네요.
오늘 저녁은 야간자율학습 감독이 있습니다.
밤 9시에 끝나고 주말에 채점해야 하는 수행평가를 잔뜩 챙겨 와야 해서 차가 필요했습니다.
종잡지 못하고 미쳐가고 있을 때 아파트에 방송이 나갔습니다.
102동 지하 1층 주차장에 주차하신 08★★ 차량 이동 주차 해주시기 바랍니다.
급하게 운전할까 봐 걱정이 되신 직원분은 '조심조심, 살살, 안전히 출근하세요'라고 다독여주셨어요.
그렇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08★★가 멀리 못 가고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아파트 앞 신호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짝 쫓아가면 긴장하려나?
클락션이라도 눌러서 시위라도 해볼까?
나란히 차를 세워 창문 열고 항의를 해~ 말어?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바락바락 성질을 내?
출근만 했을 뿐인데 늙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스카페라떼가 놓여있었어요.
미안하다는 인사말조차 남길 줄 모르는 08★★ 차주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요?
저는 덕분에 잠시 끔찍했으나, 글감 하나를 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