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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19. 2023

렌즈 못 뺐다고 엄마 능력까지 운운해야 하나?





딸아이의 비명이 안과를 점령해 버렸다.

뽁뽁이가 흰자를 건드렸으니 얼마나 아팠겠냐며 검안사가 핀잔을 줬다.

설마 일부러 아이 흰 눈동자를 건드렸겠는가, 긴장돼서 머뭇거리다 그리 된 것이다.  


렌즈는커녕 안경조차 써본 적이 없는데 근시인 딸아이가 드림렌즈를 하게 되면서 갑자기 렌즈를 넣고 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날은 처음으로 렌즈를 받아 평소 관리하는 방법, 넣고 빼는 방법을 안내받고 실습도 겸해보는 날이었다.

왼쪽은 설명대로 검안사가 시범을 보이고 오른쪽은 배운 대로 엄마인 내가 실습을 해야한다.

바들바들 떨면서 어렵게 렌즈 삽입은 겨우 성공했다.  

이제 일명 뽁뽁이를 이용해서 렌즈를 빼야 한다.

뽁뽁이는 공기압을 이용해서 렌즈를 빨판에 붙여 빼내는 작은 석션이다.

한 손으로는 눈꺼풀을 아래위로 최대한 벌어지도록 잡고, 반대손으로 쪼매난 뽁뽁이의 공기압을 조절해서 빨판에 렌즈를 붙여 빼내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너무 갑자기 닿으면 아플 것 같아서 계속 망설여졌다.

게다가 처음 쥐어보는 뽁뽁이를 살짝 놓으면서 공기압을 조절해야 하는데 손에 익지 않으니 몇 번 실패했다.

그 사이 아이가 지쳐서 집중을 놓치며 눈동자가 움직였고 하필 그 순간에 이번엔 제대로 하자 싶어서 좀 더 힘주어 시도하다가 뽁뽁이가 흰자를 닿은 것이다.


"아악"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가 겁먹으면 아이는 더 못해요. 엄마가 이런 것도 못하는 안되죠"

 

미안해서 아이를 안고 싹싹 빌고 있는데 딱 봐도 결혼도 안 했을 것 같은 젊은 검안사는 뽁뽁이로 렌즈를 못 뺐다고는 이유로 엄마 능력을 운운했다.


에휴,

겁이 많아서 엄마 능력을 평가 절하 당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큰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났을 무렵 시댁과 수영장이 있는 펜션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제법 길이가 긴 미끄럼틀이 수영장 물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은 키가 작은 내 가슴팍 정도 되는 깊이였다.

어린 손주에게 뭐든 경험시켜주고 싶던 시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대리 만족이라도 하려는 건지 어머님은 날더러 아이를 안고 미끄럼을 타보라고 성화를 했다.

무서워서 싫다고 거절을 했음에도 엄마가 뭐 이런 것이 무섭냐며 가볍게 내 감정을 모성애로 뭉개버리셨다.


그렇게 등 떠밀려 아이를 안고 미끄럼틀 위에 앉았다.

최대한 속도를 줄여 내려가서 물 위에 미끄러지듯 닿으면 재빨리 중심을 잡고 아이를 들어 올리면 되겠다며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니 될 것도 같았다.  

허나 고작 돌쟁이지만 과체중이었던 아들이 무게를 무시한 탓인지, 마찰 없이 잘 내려가라고 친절하게 물이 분사되는 미끄럼틀 탓인지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면서 겁을 먹었고 물에 철퍼덕 닿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면서 아이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아이는 꼬르륵 가라앉았다.

순간 정신차리고 다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팔을 휘져어 물속에서 아이를 안고 물밖으로 나왔다.

5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물 밖에 나와 가뿐 숨을 토해내다가 순간 마주한 시어머니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저 살겠다고 새끼를 놓아버린 엄마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불구덩이도 뛰어들 수 있어야 할 엄마가 무섭다는 핑계로 아이를 물속에 놓아버렸다는 것이 죄스러워서다.

정말 엄마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수없이 자책했었다.  


 




겁도 많은데 낯가림도 심해서 놀이터에서도 엄마 능력을 의심받을 일이 생긴다.  

 

아이들 유아기 시절, 놀이터에서 놀아주다가 낯선 아이들과 엄마 무리가 다가오면 집에 가고 싶었다.

아이가 또래랑 놀고 싶어 쭈뼛거리면 다른 엄마들은 쉽게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먼저 다가간다.

'몇 살이에요~'를 시작으로 말트기 전법을 시도하며 쉽게 대화를 물꼬를 트는 것이다.

하지만 낯가림이 많은 나에게는 먼저 다가가는 것도, 반대로 다가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전에 집에 가버리는 편을 택한다.

이럴 때마다 친정 엄마는 '애엄마가 뭐 그런 것도 못하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엄마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다.

낳은 순간 갑자기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엄마 사람이 된 이후로 원래 나에게 없는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덕분에 무한한 사랑과 내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붓고 있음에도 늘 부족한 엄마가 되버린다.


아이 렌즈하나 단박에 빼주지 못했을 때 그랬고,

낯설음을 극복못하고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한 놀이터에서도 그랬다.  

 

엄마니깐 아이를 위해 만능이 되길 바라는 상황과 마주할 때 마다, 사실 나는 버겁다.

  





병원에서 소동 이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조심스러워서 며칠은 더 아이를 고생시켰다.

그리고 열흘이 좀 지났다.

이제는 환상의 콤비가 되어 '하나, 둘, 셋'을 외치기 전에 이미 렌즈를 안착시킬 수 있다.

아이를 울렸던 뽁뽁이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져서 인공눈물 넣고 깜박이고 하나, 둘, 셋 전에 끝이다.  

아이 낳고 엄마가 된 이후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거기에 하드렌즈 넣고 빼는 기술을 하나 더 습득했다.  


엄마 사람의 업그레이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엄마 사람에게 렌즈 기술을 탑재시켜 준 애증의 드림렌즈와 그의 친구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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